brunch

『피로사회』 –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치유되는 시간

문학과 철학의 밤 산책 – 한그루의 밤 ep.20

by lala

안녕하세요, 한 그루의 밤, 라라입니다.

피곤하다는 말을 자주 하게 되는 요즘입니다. 그런데 이 피로는 단지 육체적 과로 때문만은 아닙니다. 도리어 몸은 가만히 있는데, 머릿속은 끊임없이 달리고 있고, 감정은 지치고, 마음은 텅 비어가는 그 감각. 우리는 왜 이렇게까지 피로해진 걸까요?


한병철의 『피로사회』는 이 질문에 대한 철학적 해석을 던집니다. 그는 현대사회를 ‘긍정성의 사회’라 부릅니다. 억압의 사회가 아닌, 과잉 동기의 사회. 금지하거나 억누르는 대신, 계속해서 “할 수 있다”, “하면 된다”는 메시지를 주입하는 사회. 이 사회는 더 이상 외부의 타자나 억압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가혹해진 인간을 만들어냅니다. 우리는 착취당하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를 착취하는 주체가 되어버렸습니다.


“나는 할 수 있다”고 말하며 무한한 가능성과 성취를 요구받는 인간은, 결국 자기 안의 한계를 인식하지 못한 채 무너집니다. 자아는 과로사하고, 정신은 번아웃 상태에 이르죠. 한병철은 이 과정을 ‘성과사회’의 병리로 분석합니다. 이 사회에서 피로는 실패의 증거가 아니라, 노력의 결과로 미화됩니다. 하지만 실상 그것은 자신을 소비해버리는 자기 파괴에 가깝습니다.


『피로사회』가 탁월한 지점은, 이 피로를 개인의 무능력이나 나약함으로 보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그것은 구조의 문제입니다. 스스로를 열심히 밀어붙이도록 만들어진 시스템, 그 속에서 오히려 멈추는 법을 잊어버린 존재의 슬픔을 짚어냅니다.

또한 그는 현대인의 우울증과 불면증, 무기력증 등을 단순한 심리학적 증상이 아닌, 존재론적 피로의 증상으로 진단합니다. 인간은 더 이상 “할 수 있음”에 매몰된 나머지,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을 상실하고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한병철은 “비활성의 시간”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만 회복되는 시간. 목적 없이 존재하는 시간. 존재가 존재할 수 있도록 허락된 공간.

우리는 여유라는 말을 종종 나태함과 착각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회복은 멈춤에서 시작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그 안에서 자신과 조우하는 시간. 그것이 우리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치유입니다.


한병철은 이렇게 말합니다. “피로사회는 긍정의 과잉으로 인해 병든다.” 그는 묻습니다. 당신은 지금, 진짜 ‘원해서’ 살고 있습니까?

우리는 정말 원해서 이토록 바쁘고, 이토록 피곤한 걸까요? 아니면 끊임없는 성취와 비교의 시스템에 길들여져, 쉬는 것조차 불안하게 느끼고 있는 걸까요?


『피로사회』는 우리에게 하나의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더 이상 생산성을 기준으로 존재의 가치를 판단하지 않아도 된다는 가능성.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더 충만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

오늘 하루는 멈춰도 괜찮습니다.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성과도, 목표도, 경쟁도 내려놓고, 그저 존재하는 시간을 살아보는 것.

피로사회에 맞서기 위해, 우리는 비로소 멈춤을 선택해야 합니다.


� 매일 밤, 문학과 철학의 한 그루.

라라의 문장이 당신의 밤에 조용히 닿았다면, 그 마음을 전해주실 수 있나요?

� 후원 계좌: 국민 048402 04 207069 박한솔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나는 왜 나를 지키지 못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