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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정영희의 판도라]조각가 피그말리온의 사랑

아프로디테가 감동한 사랑

  자려고 막 침대에 누웠을 때 휴대전화가 울렸다. 습관적으로 벽시계를 본다. 12시 반이다. 이 시간에 전화할 사람은 없다. 순간 불길하다. 비보(悲報)는 언제나 한 밤중과 새벽을 틈나 알려지는 속성이 있다.


  목소리는 근사하다. 바리톤과 테너의 중간 쯤 된다. 그러나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나는 안다. 오랜 상담을 하다보면 ‘여보세요’ 한마디만 들어도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교육수준은 어느 정도인지, 교양이 있는지, 품위를 가장하는 위선적인 인간인지 알 수 있다. ‘여보세요’, 라고 할 때의 억양과 높낮이와 조급한 빠르기로 보아 이 근사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양아치’다.


  ‘양아치’는 좋게 말해 품행이 천박하고 못된 짓을 일삼는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고, 한마디로 말하면 남의 등을 쳐서 먹고사는 사람을 말한다. 내용인즉, CCTV로 확인한 결과 지하주차장의 자신의 차를 민 사람이 나란 걸 알아냈고, 그 민 차에 흠집이 났다는 것이다. 내 오피스텔 건물은 주차 공간이 모자란 탓에, 중간 주차를 할 경우, 기아를 중립에 놓고 사이드브레이크를 풀어두고 주차를 한다. 다른 차들이 나갈 때 밀수 있도록 해 두는 것이다.


  오늘 저녁 퇴근할 때 검은 색 기아차 ‘로체’를 밀은 기억이 났지만, 그 차가 어딘가에 흠집이 날 리가 없었다. 어딘가에 흠집이 날 만큼 세게 미는 바보가 어디 있겠는가. 지하 2층 노래방에서 내어 놓은 서랍장에 흠집이 났다고 했다. 나는 일단 알았으니까, 내일 다시 전화하시라고 정중하게 말했다. 처음의 기세가 다소 수그러들며 전화를 끊었다.  


  다음 날 점심 약속이 있어 식당에 있는데 전화가 왔다. 나는 두시 반에 1004호에 있을테니 올라오시라고 했다. 그런데 내가 지하에 주차를 하고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는 두시 삼십오 분이었다. 내가 내 사무실로 오라고한 건 나대로 계산이 있어서였다. 보통 ‘양아치’나 ‘건달’들은 단순한 면이 있다. 그리고 그들은 책을 무서워한다는 걸 안다. 우리가 ‘폭력의 세계’를 무서워하듯 그들은 ‘지적인 세계’를 무서워한다. 언제나 예외는 있지만 말이다.


  두시 오십분에 내가 전화를 했다. 그는 올라왔는데 문이 잠겨 있었다고 했다. 나는 그럼 차가 있는 지하 주차장에서 보자고 했다. 이번엔 내가 먼저 내려갔다. 어제 내가 민 그 차를 아무리 둘러보아도 흠집이라고는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야구 모자를 눌러 쓴 중키의 남자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다가왔다. 낮은 코가 오른쪽으로 휘어져 있어 인생이 평탄치 않음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십삼 년 동안 이 오피스텔을 오가며 본 바로, 그의 행색은 노래방에 여자를 대주는 ‘보도방’을 하는 사람이 틀림없었다. 내가 저 차죠?, 하고 묻자 남자는 ‘자차보험’으로 처리해도 삼십만 원은 든다고 했다. 


  - 네에, 보험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흠집이 어디에 났지요? 아무리 봐도 보이지 않는데요. 

  남자는 흠집이 난 곳을 가리켰다. 손으로 쓱쓱 문지르면 없어질 정도였다. 

  - 이정도로 도색을 한다면 국가적 낭비 아닐까요? 

  내가 말했다. 


  사실 남자는 나를 보는 순간부터 기가 죽어 있었다. (내가 너무 근엄해 보였나?) 그 때 지하 삼층 기계실에 근무하는 아저씨가 올라왔다. 남자는 그 아저씨를 보자마자 욕설을 섞어가며 소리소리 고함을 질렀다. 이야기의 내용은 어제 밤 아저씨가 당직이었고, CCTV를 확인한 후, 내 전화번호를 가르쳐달라고 하며 이미 한바탕 난리를 친 것 같았다. 기계실 아저씨는 밤 열두시가 넘은 시간에는 입주자의 전화번호를 가르쳐 줄 수 없다. 내일 관리소장에게 물어 보라고 했고, 남자는 죽일 듯이 다그쳐 결국 내 전화번호를 알아내어 내게 전화한 것이다. 


  남자는 내게 돈 삼십만 원을 뜯어낼 수 없게 되자, 그 화풀이를 기계실 아저씨에게 온갖 욕설을 섞어가며 했다. 한 참을 듣고 있다가 나는 기계실 아저씨에게 가시라고 했다. 


  - 조금 전 제 사무실에 올라오셨으면 제가 뭐하는지 아시지요?

  난 오피스텔 문에 내 명함을 붙여 두었다. 그걸 안 봤을 리 없다. 남자는 우물쭈물했다. 내 명함에는 두 개의 직업이 존재한다. 소설가이면서 역학연구원 원장이다. 


  - 가시지요. 사주 봐 드릴테니... 

  - 아닙니다. 다음에 가겠습니다.

  남자는 꽁지를 뺐다. 

  - 다음이란 없습니다. 지금 가세요. 

  나는 남자를 데리고 오피스텔로 올라왔다.  


  오피스텔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남자는 순한 양이 되어 있었다. 작지만 유명한 화가들의 판화작품과 책으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그는 금붕어처럼 낮게 숨을 쉬었다. 물을 한 잔 주자 두 손으로 받아 마시고 얌전히 소파에 앉아 내가 사주를 다 풀 때까지 기다렸다.

  51세 병오(丙午)년, 말띠 남자. 사주팔자, 네 기둥의 여덟 글자 중 화(火)가 다섯 개나 되니 성격이 불같은 것이다. 이런 사주는 구성이 나쁘고 대운의 흐름이 나쁘면 순간 칼부림을 일으킬 수 있어 조폭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주 구성이 좋고 대운의 흐름이 좋으면 불의를 보고 못 참으니, 검판사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나름 록을 먹는 사주이기도 하고 ‘학당귀인(예체능 포함해서 학자적 기질)’이 말년에 앉아 있어 나쁘지 않았다. 이런 귀인이 있으니까 그나마 내게 ‘막가파’처럼 굴지는 않았다고 본다. 마누라 덕은 없어도 여자 덕은 있고 자식운도 나쁘지 않았다. 나는 내가 가진 모든 노하우를 다 동원해서 이 사람의 사주를 좋게 해석했다. 


  - 사주가 나쁘지 않습니다. 운이 안 들어와서 그렇지. 이런 사주는 운이 좋으면 검판사하고, 운이 나쁘면 조폭하는 사주입니다. 검판사들도 교도소 담벼락을 걷는 사주들이 많습니다. 운이 좋으면 검판사하고, 운이 나쁘면 감방 가는 거죠. 어릴 때 공부 안하고 겁나게 놀았겠는데요? 


  - 네에... 

  - 32살부터 운이 바뀌었습니다. 

  - 32살부터 7년간 감방이 있었습니다. 

  - 감방에 안 갔으면 칼 맞았겠는데요. 

  - 네에, 밖에 있었으면 그랬겠지요. 

  - 마누라 덕은 없어도 여자 덕은 있습니다. 

  - 여자 덕 없는데요. 

  - 여자장사해서 먹고 살면 여자 덕 있는 거 아닙니까? 

  - 네에... 그건 그렇네요. 

  - 예체능포함해서 학자적 기질이 좋은데 뭐 잘하세요? 

  - 운동은 다 잘 합니다. 당구도 잘 치고요. 

  - 이 학당귀인은 축구선수 박지성도 있는 아주 좋은 사주입니다. 어릴 때 운만 좋았으면 검판사 아니라, 박지성도 안 부러웠을 사주입니다. 자식 운 괜찮은데 자식 있습니까? 

  - 병원에서 데리고 온 일곱 살짜리 친딸이 있습니다. 

  - 아, 그 딸이 보석입니다. 정말 잘 키우세요. 자식이 너무 좋습니다. 말년도 아주 좋습니다. 종교 있나요? 

  - 감방에서 잠시 교회 나갔습니다. 

  - 절에 가세요. 이 사주는 불이 너무 많아 절에 가면 좋습니다. 절에 가면 화 기운이 빠져서 건강해지고 성격도 순화 됩니다. 딸 데리고 초하루와 보름만 가셔도 되고 매주말에 가셔도 됩니다. 딸을 위해 이 약속 꼭 지키세요. 

  - 네에... 딸하고 매주 남한산성에 있는 절에 가겠습니다. 

  - 올해 내년 또 관재구설수 있으니 조심하셔야 합니다. 

  - 네에, 안 그래도 자꾸 나를 걸려는 놈들이 있습니다.  

  - 딸을 위해 바르게 살려고 노력하셔야 합니다.

  - 네에... 알겠습니다.  

  남자는 구십 도로 절을 하고 갔다. 


  그 뒤 남자를 두어 번 지하 주차장에서 마주치는 일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나를 피해 계단으로 올라가버리곤 했다. 아마 그 남자는 이제 착하게 살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 남자가 나를 만나기 전처럼 뻔뻔하다면 나를 피할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그 남자가 자신의 삶이 부끄럽다고 조금이라도 인지 할 수 있었기를 빈다.  


  그 남자를 생각할 때마다 나는 조각가 ‘피그말리온’을 떠올린다.


  조각가 피그말리온은 아름다운 여인상을 조각하고, 여인상을 갈라테이아(Galatea)라 이름 지었다. 세상의 어떤 살아 있는 여자보다도 더 아름다운 갈라테이아를 피그말리온은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다. 여신 아프로디테는 피그말리온의 사랑에 감동하여 갈라테이아에게 생명을 불어 넣어 준다. 간절히 원하고 기대하면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얘기다. 


  우리가 타인을 대할 때 보여주는 긍정적인 태도는 상대방에게 큰 영향을 준다. 이런 것을 우리는 ‘피그말리온 효과’라고 부른다. 반대로 부정적인 태도로 상대를 대하는 것을 ‘낙인 효과’라고 한다. 


  당신은 어떤 태도로 사람을 대하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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