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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정영희의 판도라]관심환자

올바르게 화를 내는 것은 화를 참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관심병사(關心兵士)란 군 생활 적응이 힘들거나 심리적으로 문제가 있어 특별 관리하는 병사를 말한다. (2015년 2월 16일부터는 도움병사, 배려병사로 명칭 바뀜)

  관심환자(關心患者)를 여기에 대입하면, 병원생활 적응이 힘들거니 심리적으로 문제가 있어 특별 관리하는 환자 쯤 되겠다. 나는 관심환자였다. 암 수술한 지 2년이 되었다. 항암치료나 방사선치료는 하지 않았지만, 항암 약은 5년간 먹어야 한다. 이 항암 약의 부작용이 만만찮다. 부종과 근육통과 관절통이 난폭한 말벌 떼처럼 달려든다. 우리 몸의 뼈의 갯수는 206개다. 206개의 뼈 마디마디가 다 아프다.

  매일 아침 그레고르 잠자(카프카의 ‘변신’ 주인공) 같다. 머리만 살아 있고, 몸은 굳어 있어 내 몸이 벌레로 변했는지 살펴본다. 다행이 벌레로 변하진 않았다. 몸을 천천히 움직여 본다. 마치 미이라가 붕대를 풀고 관에서 시나브로 깨어나는 듯하다. 뜨거운 모닝커피를 마시면 비로소 정신이 돌아온다. 정신이 돌아오니 통증은 더욱 명료해진다.

  암은 검사 받다 죽는다. 무슨 검사를 그렇게 많이 하는지. 피를 하도 많이 빼가서 빈혈이 왔다. 빈혈약도 처방해줬다. 약을 먹을수록 도리어 아픈 약이 항암약이다. 암세포를 잡기 위해 멀쩡한 세포들을 죽이는 느낌이다. 암도 생존하려면 숙주인 나를 살려두어야 하리라. 숙주인 내가 죽으면 저도 죽을테니 말이다.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두껍아 두껍아 물 길어 오너라 너희 집 지어 줄게/두껍아 두껍아 너의 집에 불났다 쇠고랑 가지고 뚤레뚤레 오너라


  전래동요다. 아이들이 모래성을 쌓으며 주로 부르곤 했다. 두꺼비는 재복의 상징으로 두꺼비에게 기도를 하는 주술적 의미가 있는 동요다. 두껍아 두껍아 헌 젖 줄게 새 젖 다오. 두꺼비에게 헌 젖을 주고 새 젖을 받았으니 앞으로 잘 살 일만 남았으리라 여기기로 한다. 한 쪽 유방을 도려내고 보형물을 넣었다. 성형수술을 한 셈이다. 유방외과와 성형와과를 오갔다.

  이주일 후면 경미한 암 투병 2년차로 다시 대학병원에 검사를 받으러 가야 한다. 온 몸의 뼈가 덜거덕거리는 채로 그나마 잠시 잊고 살다가 검사 날이 다가오면 마음에까지 통증이 번짐을 느낀다. 죽는 거는 무섭지 않다. 암이 재발되어 긴병으로 자식에게 폐를 끼칠까 두렵다.

  몸이 아프게 되면 사람들은 나약해진다. 삶의 의미와 희망을 찾는 일이 글쟁이의 의무라고 외쳐대지만, 정작 삶의 의미와 희망의 끈을 잡기가 쉽지 않다. 지금 현재는 돌도 아직 안된 ‘박달나무 단’자와 ‘우아할 아’자를 쓰는, 미소가 매력적인 손녀 ‘단아’가 스무 살이 될 때까지는 살고 싶다. 내게 이야기꾼 할아버지의 추억이 있듯, 단아에게도 할머니의 추억을 남겨주고 싶다. 이 정도면 삶의 의미와 희망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그러나 사는데 꼭 의미와 희망이 있어야만 하는 건 아니다. 그냥 피었으니, 피어있다 지면 된다. 머리로야 천만 번도 더 깨달은 말이다. 삶의 덧없음을 아는데 60년 쯤 걸렸다. 그 덧없음을 붙들고 이제부터는 황혼의 빛이 어둠에 고통 없이 스며들듯, 삶이 죽음에 고통 없이 스며들기를 바란다.

  몸과 마음은 황혼인데, 이놈의 ‘성질’은 아직도 푸르르다. 내가 가장 못 참는 게 ‘무례함’인 것 같다. 무례함이란 예의가 없다는 말이다. 내 평생의 화두는 화를 잘 다스리는 거다. 모든 종교의 수행은 화를 다스리는 것이긴 하다.

  전갈이 전갈의 특성이 있듯 사람마다 타고난 천성이 있기 마련이다. 무례함이나 불의를 보고 저럴 수도 있지 뭐, 하고 눈길을 돌릴 수 없는 천성이니, 남이 보면 화를 잘 내는 기질이라 여길 것이다.

  그 날도 그랬다.

  수술 전날 입원해서 또 피검사를 받고 저녁은 금식이었다. 다음 날 오전 7시 30분에 수술을 한다. 그 몇 주 전에 이미 2박3일 입원을 해서 유방외과와 성형외과를 오가며 온갖 검사를 다 받았다. 내 몸에서 장기를 떼 낸 건 맹장뿐이다. 이번엔 젖을 하나 떼 낸다. 아들 하나만 낳아 먹이고 길렀으니, 젖의 기능은 다한 셈이다. 기능을 다한 젖 하나를 떼 내면 좀 착해 질려나. 그 때도 누군가 내게 ‘맹장을 떼 내면 사람이 좀 순해 진다’ 고 했다. 40년 전에도 고약했었나 보다.

  60여년을 하루처럼 살았다. 삶의 파도가 아무리 나를 높이 말아 올려 잔인하게 내동댕이  쳐도 난 악착같이 그 섬을 향해 갔다. 환쟁이에서 시작해 글쟁이의 삶을 살았다. 가끔 남의 전시회를 볼 때면 속에서 불씨가 살아나곤 하지만 그뿐. 이 생에서는 글쟁이로 살다 갈 것이다. 언제나 내게 다가오는 인연에 몰입하곤 했으니, 원도 한도 없다. 우주의 지수화풍(地水火風)으로부터 왔다가, 우주의 지수화풍으로 흩어지는 거다. 감정이 마비된 듯 무감각했다. 두려움도 슬픔도 아쉬움도 미련도 후회도 느껴지지 않았다.

  - 막달레나야, 두려워하지 마라. 나다. 내가 너와 함께 있다.

  음악선생을 하다 퇴직한 오랜 벗이 보낸 메시지다. 밤 10시. 병원침대에 누워 그 문자를 보는 순간 눈물이 터졌다. 그렇구나. 하느님을 잊고 있었구나. 펄렁한 입원복 소매가 다 젖도록 울었다. 나를 위해 기도하는 이들이 있다는 게 감사했다. 외국에 살아, 옆에서 나를 간호할 수 없어 죽을 만큼 미안해하는 절친도 있으니 이만하면 잘 살은 삶이다.

  새벽 두 시 쯤, 깜빡 잠들려고 하는데 간호사가 흔들어 깨운다. 새벽 4시다. 그때부터 팔에 주렁주렁 주사바늘을 꼽기 시작했다. 신참 간호사인 듯하다. 정맥을 제대로 찾지 못해 여러 번 내 손등과 팔에 생체 실험을 하듯 주사 바늘을 찔러댔다. 피가 많이 흐르고 멍이 들었다. 신참 간호사는 미안해서 쩔쩔맸다. 결국 고참 간호사가 와서 한 번에 링거주사를 꽂았다. 내 피 속으로 천천히 차가운 수액이 똑똑 떨어져 들어갔다.

  다시 깜빡 잠이 들려 하자, 남자간호사가 와서 침대 채 나를 데리고 3층 수술실 앞으로 갔다. 7시였다. 수술 시간은 7시 30분이다. 수술실 앞에는 그 시간에 수술 받을 환자들이 침대에 누운 채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왁자지껄 했다. 침대에 누운 환자들은 두려움에 떨고 있고, 간호사와 인턴과 전공의들은 시시껄렁한 얘기를 주고받으며 웃었다. 그들에게 죽음은 완벽한 남의 일이다.

  - 전신마취 하실 거예요? 척추마취 하실 거예요?

  내게 묻는 말인지 알아차리는데 몇 초의 시간이 걸렸다. 가운을 입은 젊은 의사와 간호사가 A4 용지를 들고 내게 무슨 마취를 할 것인지 사인을 하란다.  

  - 이걸 제게 지금 물으면 어떡해요? 담당교수님이 알아서 하셔야죠. 전신마취와 척추마취의 차이를 설명해 주세요. 그러면 제가 사인할게요.

  가운을 입은 젊은 의사는 A4 용지를 내 손에서 잡아채어가더니, 전신마취로 하세요, 하고 자신이 체크를 하고 가버렸다.

  수술실로 들어갔다. 십여 명의 남녀간호사들이 잡담을 주고받으며 자신들이 할 일을 하고 있었다. 이동식 침대에서 수술대 위로 옮겨졌다. 천정에 거대한 형광등이 보였다.

  - 야, 너 이리와 봐!

  죽음의 회랑에 한발을 걸쳐놓고도, 무례함은 참을 수 없다. 조금 전 내 손에서 무례하게 A4 용지를 잡아채간 그 젊은 의사를 불렀다. 수술실은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젊은 의사가 두 손을 모은 채 내 앞에 왔다.

  - 너 뭐야?

  - 마취과 레지 2년 차인데요.

  - 의사의 소명이 뭔지 알아요? 의사는 환자에게 최선을 다해 친절하게 설명하는 게 소명이에요. 사람을 살리는게 소명이 아니고요. 사람을 살리는건 하늘이 알아서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돈 버는 백정에 불과해요.

  그 뒤로 뭐라고뭐라고 더 잘난 척을 했다. 젊은 의사는 고개도 숙이지 않고 눈을 똑바로 뜬 채 말로만 죄송합니다, 라고 말했다.

  - 그렇게 영혼 없는 사과를 하면 안 돼요.

  - 죄송합니다. 자 숨을 들이 쉬세요, 뱉으세요. 숨을 들이 쉬세요, 뱉으세요.

  난 그 젊은 마취과 전공의에 의해 잠시 이 세상에서 발을 뺐다.

  눈을 뜨니 오후 2시였다. 수간호사가 내 이동식 침대 옆에 붙어서 입원실까지 에스코트를 했다. 그 때부터 나는 관심환자가 되었다.

  잠시 후, 마취과 전공의가 입원실로 올라와서 정식으로 사과를 했다. 나는 아직 마취에서 덜 깨어났고 코에 산소를 꽂고 있었다. 난 다 용서해 준다는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뒤부터는 각과의 전공의가 미리 전신마취를 할 건지 척추마취를 할 건지, 수술환자에게 사인을 받으러 입원실로 올라왔다.

  이주일 후면 또 검사를 받으러 간다. 그 때 그 전공의는 이제 전문의가 되어 어느 하늘 아래 수술실에서 매일 환자를 마취시키고 있을 것이다. 어린 의사에게 너무 심했나싶어 오래도록 반성하고 반성했다. 그 마취과 전공의가 환자에게 친절한 의사가 되어 있다면 내 푸르른 ‘성질’이 조금은 면죄부를 받지 않을까 싶다.

  ‘올바르게 화를 내는 것은 화를 참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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