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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정영희의 판도라]로맨티스트 예찬

모든 죄는 남의 것을 탐내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흔히 현실보다는 이상을 동경하는 사람을 로맨티스트라고 한다. ‘언제, 어디서나, 누구라도, 사랑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 이건 내가 내린 로맨티스트의 정의다. 

  99세의 김형석 교수가 86세의 노여교수를 만났을 때처럼 말이다. 두 분은 젊은 시절 스쳐지나가는 인연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마주쳐 차 한 잔을 하게 되었다. 노여교수는 수줍은 표정으로 ‘방년’ 86세라고 나이를 밝혔다는 것이다. ‘방년’이란 스무 살을 전후한 꽃다운 나이의 여성에게 붙이는 말이다. 

  김형석 교수는 집에 돌아와 설레는 마음으로 ‘100세 일기’라는 칼럼에 그 노여교수와의 만남을 썼다. 그 노여교수가 젊은 날의 자신을 기억하고 있다는 걸 은근히 자랑스러워하면서 말이다. 그 여노교수가 ‘방년 86세’라고 말한 것도 얼마나 귀여운가. 그 칼럼을 보고 나는 며칠이고 기분이 좋았다. 가슴에 꽃을 안았다가 뗐을 때처럼 오래도록 향기가 코끝을 맴 돌았다. 그는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오래된, 다시 말해 최고(最古)의 로맨티스트다.

  도대체 언제 적 ‘김형석 교수’란 말인가. 이십 대 초반에 그의 수필집 ‘영원과 사랑의 대화’을 읽고 그의 팬이 되었다. 그런데 그는 아직도 현역이다. 아흔 아홉 살이 된 그는 60세부터 75세까지가 인생의 황금기라고 했다. 아아, 그렇다면 나는 아직 인생의 황금기에 한 발짝을 들어놓지도 못하지 않았는가. 

  그는 무엇이든 배우고, 독서를 하고, 취미활동을 하고, 절대 놀지 말라고 했다. 여기에 하나 더 보태라고 한다면, ‘로맨티스트’가 되라고 말하고 싶다. 빈부의 차별 없이, 학벌의 차별 없이, 인종의 차별 없이, 종교의 차별 없이, 관습이나 국적의 차별 없이 인간을 사랑하는 박애정신이 밑바탕에 깔려 있는 로맨티스트 말이다. 

  바람둥이와 로맨티스트는 다르다. 일부 공통되는 부분이 좀 있긴 하지만 바람둥이는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할 수 있고, 차별 없이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박애주의자는 아니다. 그러나 로맨티스트는 다른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든다. 로맨티스트가 되려면 영혼에 투자를 좀 해야 한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 ‘이 나이에 뭘 배워?’, ‘이 나이에 뭘 고쳐? 생긴 대로 살다 죽을래’, 라는 말이다. 생긴 대로는 외모를 말하는 게 아니다. 삐딱하거나 고약한 성품을 말한다. 그런 마인드는 남을 다치게 하거나 불편하게 한다. 인간은 죽을 때까지 배우고, 성찰하고, 반성하고, 고쳐나가며 영혼이 성숙해지도록 노력해야 ‘지적’으로 아름답게 늙는다. 그렇지 않으면 김형석 교수가 말한 60세부터의 전성기는 ‘짐승의 시간’이 되고 만다.  

  지적이라 함은 인문학적 지식이 기본이다. 그럼 도대체 ‘인문학적 지식’이라는 게 뭐란 말인가? 

  인문학이란 인간이 만들어 나가는 문화와 가치관을 말한다. 문화와 가치관은 시대마다 달라진다. 상상력과 창조력과 통찰력이 있는 자만이 한 시대의 문화와 가치를 이끌어 간다.  *그런 자들은 끝임 없이 ‘왜'라고 질문하는 자들이며, 집단에 종속되거나, 안주하거나, 한쪽을 선택하거나, 선택을 강요하지 않는 ‘경계에 서 있는 자’들이며, 홀로 고독과 불안과 두려움을 견디며 걸어가는 용감한 자들이다. 그런 자만이 세상의 리더가 될 수 있다. 한쪽을 선택하는 순간 질문은 멈추게 되고 그대의 삶도 거기까지. *최진석 교수의 강의 중 

  상상력과 창조력과 통찰력은 비단 예술가들에게만 해당 되는 게 아니다. 과학자에게도, 기업가에게도, 의학자에게도, 정치가에게도, 법률가에게도, 교육자에게도 필요하다. 결국 인문학이란 ‘신(神)’이 아니라, ‘인간’이 중요한 인본주의로, 인간 개개인의 인권이 점점 더 소중한 가치로 나아가는 흐름이다. 이 흐름에 합류하려면 우선 기본기가 있어야 한다.  

  첫째, 인간을 가엾게 여기는 휴머니스트라야 한다. 인간뿐 아니라 동물이나 식물이나 생명가진 모든 것을 긍휼(矜恤)히 여길 줄 알아야 한다. 희생할 줄 모르고 자기 몸만 긍휼히 여기는 사람도 많다. 긍휼이라는 단어는 신이 인간에게 할 수 있고, 인간이 만물에게 할 수 있는 단어다. 친구에게 쓸 말은 아니다. 교만한 자는 주의해야 한다.

  둘째, 누구에게든 무례하지 않아야 한다. 무례는 예의가 없음을 말하는데 그건 오만에서 나온다. 한진그룹 자매들의 무례는 국민의 공분을 사지 않았는가. ‘오만의 끝은 몰락’이라는 서양 속담이 있다. 이 속담의 기원은 ‘휴브리스(Hubris)’란 개념인데, 사전적 의미는 오만이지만 성품이나 행동에 앞서 삶에 대한 태도를 가리킨다. 영국의 문명비평가인 토인비가 역사해석학 용어로 사용하면서 유명해진 말이다. 다시 말해 신의 영역까지 침범하려는 오만을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유래된 용어다. 하여, 휴브리스가 어떤 한계를 넘어서면 반드시 벌을 받게 되어 있다. 그러니 절대 무례하게 굴지 말아야 한다. 자신이 무례하게 구는지 모르는 사람도 많다. 만만한 사람은 은근히 깔보고, 이득을 볼 사람이나 불특정 다수에게는 착한 척 비굴한 눈웃음을 짓는 가식적인 인간도 여기에 해당 된다.  

  셋째, 자신을 성찰할 줄 알아야 한다. 사람들은 자신을 반성하는 걸 끔찍하게 싫어한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을 똑바로 응시해야하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어린 날 ‘독후감’ 보다 ‘반성문’이 훨씬 쓰기 어려웠다. 그러나 자신을 성찰 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있다. 그건 책을 보는 거다. 독서야 말로 홀로, 이 우주와 맞서 오롯이 자신을 성찰 할 수 있는 시간이다. 아, 그러니까 결국 독서는 고독과 고통의 시간인 셈이다. 그러니 사람들이 절대 책을 읽지 않는다. 이해한다. 그래도 지적이고 싶으면 고독과 고통의 시간을 조금만 감수해 보시라. 어느 순간 독서의 즐거움을 알 게 될 것이다. 

  넷째,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비판적인 눈을 가져야 한다. 이것 또한 독서량이 아니면 절대 길러질 수 없다. 제발 좀 자기계발서 같은 책 말고, 시간의 검증을 거친 고전을 사보시라. 자기계발서는 꽃잎에 맺힌 이슬 같은 거다. 영롱해 보여도 금세 휘발되고 만다. 그러나 고전은 뿌리 깊은 나무가 온 힘을 다해 땅의 수액을 빨라 당겨 취한 정령(精靈)이다.

  책을 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인문학적 소양을 쌓기 위한 손쉬운 방법을 가르쳐준 것뿐이다. 늘 생명가진 것들에 대해 연민이 가득하고, 모든 죄는 남의 것을 탐내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나의 어머니는 가르쳤다. 이렇게 책을 보지 않아도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도 세상에는 많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추가하라면 ‘언제, 어디서나, 누구라도, 사랑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비로소 인문학적 지식이 충만한 로맨티스트인 것이다. 이글을 잘못 이해한 난봉꾼들은 조심해야한다. 미투(Me too:나도 당했다)는 계속된다.

  남의 사랑을 질투하거나 손가락질 하지 말고 스스로 로맨티스트가 되길 노력하는 건 어떨까. 그러면 세상은 훨씬 로맨틱해 질 텐데. 어때요, 당신은 로맨티스트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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