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펙트데이즈가 모여 퍼펙트 라이프가 된다
리뷰를 쓰고 싶은 영화를 만나면 갑자기 신이 난다. 고요한 호수에 살랑 바람이 불듯 마음에 파장이 일어난다. 비로소, 유일하게, 그리하여 세상과 소통하는 느낌이 든다.
난 왜 ‘퍼펙트 데이즈’를 ‘퍼펙트 라이프’로 기억했을까. 저 영화를 영화관에서 보고 온 선배가 강추를 한 지가 일 년은 되었지 싶다. 그러다 드디어 거실 일열 일번에 앉아 봤다.
퍼펙트 데이즈(2023년)는 로드무비의 대가이며 노후에는 다큐멘터리를 주로 찍는 빔 벤더스 감독의 빛나는 수작이다. 마치 우연히 찍다보니 이렇게 아름다운 영화가 되어 버린 것 같은 의구심이 들만큼 불교 철학적이다. 불교 철학의 핵심은 제행무상(諸行無常)이다. 제행무상이란 존재하는 것은 영원한 것이 없으므로 돈이나 지위나 명예에 집착하지 말고 오늘 하루, 지금에 집중하라는 뜻이다.
저 영화를 찍을 때 빔 벤더스는 78세이고, 주인공을 맡은 야쿠쇼 코지의 나이는 67세였다. 독일 감독이 일본 배우를 캐스팅해서 일본에서 다큐멘터리 같은 영화를 찍은 것이다. 처음엔 서양인의 시선으로 동양인의 일기장을 들여다보고 있는 듯한 괴리감이 느껴져 몰입이 되지 않았다. 빔 벤더스가 장자(莊子)의 소요유(逍遙遊, 한가롭게 거닐며 즐긴다)를 안단 말인가, 부처의 제행무상을 안단 말인가. 이런 잡생각이 끼어들어서 말이다.
도쿄 시부야의 공중 화장실 청소부 히라야마는 매일 반복되는 생활을 하지만 스스로 충만하게 하루를 보낸다. 어디에서든 도쿄의 랜드마크이자, 일본에서 가장 높은 인공 구조물인 스카이트리(전파 송출용 탑)가 보이는 도쿄의 허름한 주택가 2층집. 오래된 목욕탕이 있고 헌책방이 있고, 필름사진 현상소가 있고, 서민밥집들이 즐비한 식당가가 있고, 선술집 이자카야도 있는 동네다.
아침에 일어나서 양치하고 면도하고 종려나무에 물을 뿌려준다. 물을 뿌린 후 스프레이는 1층 세면대 옆이 제자리이므로 다시 그 자리에 갖다 둔다. 열쇠와 시계와 카메라와 잔돈을 챙겨 어스름 새벽에 나온다. 문을 나서면 언제나 오늘을 완벽하게 살기로 약조라도 하듯 하늘을 쳐다본다. 집 앞 자동판매기에서 캔 커피를 뽑아 마시며, 6.70년대 팝송 테이프를 세팅한 후, 작은 봉고를 몰고 일터로 간다. 그가 일터로 갈 때마다 골목 모퉁이에는 어김없이 거리를 청소하는 사람이 있다.
카세트테이프의 옛날 팝송을 들으며 드라이빙하는 모습을 롱 테이크로 잡는 장면은 여러 번 나온다. 높은 마천루들과 고가도로가 얽히고설킨 거대도시 도쿄는 마치 미래의 어느 도시처럼 깨끗하고 아름답다. 또한 공중화장실은 전위 예술작품 같다.
십 여 군데의 공중 화장실을 청소하고, 공원 벤치에 앉아 샌드위치와 우유를 먹는다. 가끔 카메라로 ‘코모레비(나뭇잎 사이로 새어드는 햇살)’를 올림프스 필름카메라로 찍는다. 그가 점심을 먹는 공원의 그 시간에는 옆 벤치에서 똑같이 샌드위치와 음료를 먹는 젊은 여자가 있다. 너무나 무기력해 보이는 여인이지만 꾸역꾸역 샌드위치를 먹는다. 그리고 나무 아래서 요가를 하는 늙은 거지도 항상 그 자리에 있다.
오후에도 공중화장실을 청소하고 집으로 돌아와 동네 목욕탕을 가고, 주말에는 빨래방도 가고, 헌책방도 간다. 밤에는 독서를 하다 잠든다. 꿈은 언제나 흑백의 빛이 어지럽게 교차한다. 골목의 빗질소리에 일어나 똑같은 일상을 이어간다. 얼핏 ‘트루먼 쇼’가 생각났다. 모든 일상이 세팅 된 삶. 어느 곳을 가든 똑같은 사람들이 그곳에서 일을 한다. 완벽한 루틴이 정해진 삶. 일본은 오타쿠(한 분야에 몰입하는 사람)의 나라다. 각자의 일에 깊은 견해를 가지고 있다. 선술집 여자는 요리에, 중고 서점주인은 모든 책을 다 읽은 듯하고, 2023년에 필름 현상소를 열고 있는 사람도 있고, 카세트테이프와 LP판을 파는 가게도 있다. 히라야마야 말로 공중화장실 청소 오타쿠다. 손거울을 들고 다니며 보이지 않는 곳까지 비춰서 닦는다. 모든 오타쿠들이 모여 일본을 형성하는 것 같다. 몰입의 나라. 일본이 강국인 이유일 것이다. 무리나 익명에 숨지 않고, 개별적인 삶을 살 때만이 혜안과 통찰이 생기는 법이다.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은 카세트테이프의 음악이다. 그 가사들은 이 영화의 나레이션같은 역할을 한다. 음악이 나올 때마다 자막을 깔아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처럼 팝송에 문외한인 사람을 위해 말이다.
첫 번째 곡이 애니멀스가 부른 미국의 전래 민요 ‘해 뜨는 집(The House of the Rising Sun)'이다. 뉴올리언스의 노동자들이 술 취하면 부르는 노래다. 십 여 곡의 팝송 중 이 노래만 두 번 나온다.
뉴올리언스에 집이 한 채 있네/ 사람들은 해 뜨는 집이라 부르지/ 수많은 불쌍한 이가 이곳에서 인생을 망쳤다네/ 나도 그 중 하나겠지/ 어머니는 재단사였어/ 내게 새 청바지를 만들어 주셨지/ 아버지는 뉴올리언스의 노름꾼이었지/ 노름꾼에게 필요한건 옷가방과 짐가방 뿐이야/ 그가 만족했을 순간은 취했을 때뿐이었어/ 어머니, 아이들에게 말씀해 주세요/ 저처럼 살지 말라고/ 죄와 비참함 속에서 삶을 낭비하지 말라고...
인생이 잘못되어가는 한 사람의 회한 섞인 이야기가 담긴 노래다. 이 노래는 일본에서도 유곽에 팔려간 여인으로 살짝 다르게 번안해서 유행했는지 선술집 주인도 이 노래를 부른다. 드라마틱한 스토리가 없는 듯 하지만 인생의 희노애락이 다 나온다.
- 돈 없으면 사랑도 못하다니, 뭔 세상이 이래요?
젊은 동료 직원 다카시가 절규 한다.
- 왜 이대로 있을 수는 없는 걸까요.
선술집 여자도 시대의 상실을 내뱉는다.
조카 니코가 나타나면서 히라야마의 과거를 짐작하게 한다. 히라야마의 여동생은 딸 니코를 데리러 기사 딸린 세단을 타고 온다. 요양원에 있는 아버지에게 한번 가보라고 말하지만, 히라야마는 고개를 젓는다. 아버지와 연을 끊은 것이다. 어색한 잠깐의 만남. 헤어질 때 안아주지만 여동생이 떠나가자 히라야마는 오열한다.
부잣집 아들이었을 것 같은 히라야마가 아버지와 여동생과 인연을 끊고 살기까지는 얼마나 힘든 고통의 시간이 있었을까. 히라야마의 나이로 봐서 그는 전후세대다. 일본은 패전 후 오늘날의 번영이 있기까지 국민들은 얼마나 지난한 인내를 감내해야했을까. 개인적으로는 얼마나 많은 마음의 상처를 받았을까. 어쩌면 팝송 첫 노래의 암시처럼 실수로 죄를 짓고 오랜 수감생활을 했을 수도 있다.
어느 날 문득 이 모든 고통의 근원이 욕망 때문이라는 삶의 비밀을 알아버렸는지 모른다. 욕망과 집착을 놓는 순간 자연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나뭇잎에 비치는 햇살이 경이로워 사진을 찍기 시작했을 것이다.
개인차가 있지만, 동양에서는 노인(65세 이후)이 되면 대부분 저런 삶을 산다. 노인이 된다는 건 더 이상 하고 싶은 게 별로 없어진다는 말이다. ‘세상에 더 이상 구할 것이 없으니, 인연 또한 끝’나지는 것이다. 가끔 가을에 핀 철쭉처럼 아직도 봄날인줄 알고 욕망을 쫒아가는, 젊어 보이려 혹은 젊어지려 환장한 철없는 노인들이 있다. 그런 노인들을 부추겨 자본을 축척하려는 천박한 자본주의사냥꾼들이 부비트랩(booby trap)처럼 깔려 있다.
어쩌다 태어났으니, 어쩌다 그냥 사는 거다. 행복하게. 주인공이 3,40대였으면 감동의 폭이 훨씬 컸을 수도 있다. 히라야마는 장자도 모르고 부처도 모르지만 어느 날 문득 깨달았을 것이다. 과거를 생각하니 고통스럽고, 미래를 생각하니 불안함을. 지금, 이 순간, 오늘 하루를 완벽하게 사는 게 행복임을 알아차린 것이다. 그걸 깨닫는 순간, 그는 비로소 자유롭고, 평화롭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아름답게 느껴지게 된 것이리라.
높게 나는 새들아, 너흰 내가 지금 뭘 느끼는지 알자?/ 하늘에 있는 태양아, 내가 지금 어떤 기분인지 알지?/ 살며시 부는 바람아, 넌 내가 어떤 마음인지 알거야/새로운 새벽/ 새로운 날/ 내게 새롭게 주어진 삶이야/ 그래서 기분이 아주 좋아...
마지막 장면에 흐르는 니나 시몬의 ‘기분이 좋아(Feeling Good)'의 가사다. 그는 환희의 눈물을 흘린다. 그는 대도시 한가운데서 출가자의 삶을 산다. 도시의 출가자다. 이렇게 하루를 충만하게 살 수 있는 것도 직업이 있기 때문이고, 나라가 노후를 책임져 주는 복지국가이기 때문이리라.
야쿠쇼 코지는 너무나 완벽한 연기로 마치 도쿄의 공중 화장실에 가면 그를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영화를 단 2주 만에 만들 수 있는 빔 벤더스, 그는 이미 구도자다.
퍼펙트 데이즈(Perfect Days)가 모여, 퍼펙트 라이프(Perfect Life)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