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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La Nov 18. 2021

딩크족과 결혼을 했다

결혼은 했는데 아이를 낳지 않는다는 것은

먼저 고백하자면, 우리 남편은 결혼을 한지 얼마 안 되어서 '딩크족'을 선언했다. 

그냥 간과한 사실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결혼을 하면 '아이'라는 옵션은 너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한창 '딩크족'이라는 단어가 생겨나고 '노 키즈존'이 활성화되기 시작한 때였다. 


비건(채식주의자)에도 단계가 있다. 

완전히 유제품과 동물의 알을 포함한 동물성 제품을 먹지도 사용하지도 않는 완전한 '비건'이 있는 반면에 '락토'라고 해서 유제품을 먹는 채식주의자, 동물의 알은 먹는 '오브 베지테리안', 유제품, 달걀 생선까지 먹는 '페스코' 때때로 채식을 하지만 상황에 따라 육식도 하는 '플렉시테리안'도 있다. 


우리 남편은 '딩크족' 아이를 낳고 싶지 않아하지만, 완전한 딩크족은 아니었다. 

남편은 아이를 싫어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보다 더 좋아한다. 하지만, 본인이 아이를 가진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생긴 아이를 지우라고 할 정도로 아이가 낳기 싫은 것은 아니다. 생긴 아이는 낳겠지만, 아이를 낳고 싶다. 혹은 낳기 위해 노력(시험관)을 하겠다.라는 것은 아니었다. 인위적인 탄생은 반대했다. 


남편이 나에게 "어쩔 수 없이" 생긴 아이의 태명은 '철수(쩔수)'라고, 그리고 여자아이면 "어쩌다 보니" 생긴 아이는 "보니"라고 할 것이라는 우스개 아닌 농담을 던질 때 나는 같이 웃을 수 없었다. 


그리고 남편은 채근이나 보채서 떼를 써서 해주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그냥 기다렸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아이를 낳는 것에, 엄마가 된다는 것에 자신이 있지 않았다. 


우리 엄마는 결혼을 하면서 직장을 포기했고, 아이 셋을 키우면서 자식들을 위해 한평생 사신분이다. 안타깝게도 나는 그런 엄마의 희생에 견주어 볼 때 나는 이기적인 사람이라 그만큼 희생할 각오가 생기지 않았다. 그래서 나 스스로의 마음을 다잡는데도 시간이 필요했다. 


결혼은 했는데 아이를 낳지 않았다는 것은 모든 사람들의 질문을 듣는 말이다. 


"아이는 언제 낳을 거야?"


아이러니하게도 부모님들이 주변인들에게 더 많이 들었던 질문이기도 하다. "그 집은 언제 애를 낳는데?"라는 말이다. 하지만, 엄마는 아직 '준비 중' 이라면서 기다린다고 돌려 말했을 뿐 전하지는 않았다. 


깊이 생각지 않았던 나는 그렇게 남편과 '신혼'이라는 이름 아래 코로나 전에는 남편의 생일마다 가까운 해외를 여행하고 크리스마스에는 제주도를 갔다. 그렇게 여행을 가고 또 밀린 카드값을 열심히 갚고 하다 보니 어느덧 결혼 5년 차가 되었다.


신나게 놀다가 어느덧 주위를 둘러보니 아이가 없는 사람은 주변에 나밖에 없었다. 희한하게도 지방에 있는 친구들은 벌써 둘째까지 출산을 마친 상태였다. 


시댁에서도 친정에서도 아이를 기다리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런 은근한 기대가 불편할까 봐 친정에서는 엄마가 말을 꺼내지 않았고, 시댁에서는 남편이 '딩크족'이라 공장장이 공장을 돌릴 생각이 없어서 안 생긴다 라는 핑계를 방패막이 삼았다. 


그러다가 '난임 휴직'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나는 난임 병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친한 친구가 마지막으로 결혼을 하면서 아이를 낳고 기르기 위해 10년 다닌 회사를 그만두고 아이가 생기지 않아 고민하기 시작하자 나에게 닥친 '임신'의 단어가 점점 더 깊어졌다. 


친구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서 얘기했다.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낳아라. 한 살 한 살 먹을수록 체력이 너무 달린다 


그건 사실이었다. 난자의 나이가 중요했다. 자궁의 나이도 임신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나는 나이가 한 살 한 살 먹어가고 있었고, 턱걸이 나이에 도달했다. 


그러는 사이에 남편의 친구들 중에서는 임신 출산을 한 친구가 몇 없었다. 이제 결혼을 준비하거나 아직 이직 중이거나 결혼을 이제 했거나 아직 여자 친구가 없는 친구들도 있었다. 


남자들이 더 늦은 나이에 아이를 생각하게 된다는데, 우리는 연상연하 커플이었다. 남편이 연하여서 더 '아이'에 대한 생각이 없었다. 


나는 휴직의 시간 동안 진지하게 '임신'과 '육아' 아이에 대한 생각을 할 시간이 많아졌다. 길을 지나가는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식당에 앉아서도 아이가 있는 부부들이 어떻게 밥을 먹나 누가 아이를 안고 있나 그런 것들이 눈에 밟혔다. 


남편은 나에게 질문했다. 


"왜 아이가 필요한데?"


아이가 왜 꼭 필요한지 모르겠다는 것이 남편의 입장이었다. 나 또한 그냥 막연하게 결혼하면 아이가 옵션으로 따라온다고 생각했던지라. 말문이 막혔다. 


사방팔방 이혼을 고민하는 인터넷 이야기들의 댓글에는 베댓이 "피임을 잘해야 한다"라는 정도였으니. 결혼 전에는 임신이 고민 일리가 없었다. 아이를 왜 키워야 하는지. 아이가 왜 필요한지. 고민해보지 않았다. 사실 이것이 고민할 일인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한참 동안 내 안에서의 두려움과 직면하게 한 남편의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나는 사람들에게 묻기 시작했다. 


"너는 왜 아이가 갖고 싶어?"


누군가는 자식을 낳아야 노후에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라고 한다. 노후대책으로 아이를 낳는 것은 싫다고 남편이 말했다.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더 많은 돈이 들어갈 것이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고민이 많이 된다고 했다. 사실이었다. 예전처럼 사랑만으로 아이를 돌볼 수 없었다. 당장에 맞벌이 부부라면 아이를 봐줄 사람이 필요했다. '황혼 육아'라는 말은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또 누군가는 자식은 커다란 기쁨이라고 했다. 하지만, 기쁨을 꼭 자식에게서 찾아야 하는가. 물론, 겪어보진 못한 자로서 그 기쁨이 얼마나 큰지는 모르기에 하는 말이다. 그리고 그 기쁨을 위해 밤잠을 설치면서 기저귀를 갈고 밖에도 못 나가고 젖소처럼 젖을 짜고 모유 수유하는 동안 음식도 가려먹어야 하고 많은 희생이 필요하기 때문에 기쁨이라는 것이 얼마나 회복시켜줄지 의문이 들었다. 괜히 '산후우울증'이라는 말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는 힘듬이 과연 얼마만의 기쁨으로 바뀔 것인지는 예상되지 않았다.


나에게 사실 '아이'는 챌린지였다. 


결혼도 한 번의 챌린지였고, 계단처럼 나를 업그레이드하는 길에서 또 한 번의 뛰어넘어야 할 부분이 왔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 과정을 견뎌내면 내가 더 성숙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를 낳으면 보는 세상이 더 넓어진다"


라는 말처럼 나는 나의 시야를 확장시키고 싶었다. 여행과 자기 계발을 통한 나의 세상을 확장시키는 것에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나의 성장을 위해서 아이를 낳고 희생을 감수할 것이며 그로서 나는 한층 더 업그레이드될 것이라 생각했다. 남편은 나의 이런 생각에 동의하지 못했다.  



TV프로그램 <내가 키운다>에서 박선주씨의 남편 쉐프 강레오가 아내에게 한 말이 있었다. 아이때문에 해외를 왔다갔다하면서 힘들어하자 한말이었다. 


"박선주씨 자꾸 엄마 코스프레 하지 말고, 음악하는 박선주씨로 사는게 제일 멋있어요" 


우리 남편도 강레오과였다. 내가 나를 포기 하지 않았으면, 나의 일을 놓지 않았으면 하는 주의 였다. 그래서 여느 남편들과는 달랐다. 


그러던 중 제일 친한 친구에게 같은 질문을 했을 때 친구는 내게 말했다. 


나는 그 아이에게 사랑을 주고 싶어



그 이야기는 나에게 많은 생각을 안겨주었다. 남편의 말에 나는 아이가 우리에게 어떤 필요성이 있는지 우리에게 뭘 줄 수 있어서 그렇게 희생을 해야 하는 건지에 대해서만 생각했다. 하지만, 친구는 자신의 아이에게 사랑을 주고 싶어서 아이가 낳고 싶다고 했다. 


나는 이기적인 사람이 맞다. 

아이는 선물이라는데, 그 선물이 나에게 필요할 것인지. 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쯤 남편도 해답을 찾았다. 

웹툰을 즐겨보는 남편은 비슷한 질문의 답에 


"종족번식은 본성이야! 이유 따위는 없어!" 


라는 말에서 내가 아이에 대한 마음이 깊어진 것에 대하여 이유가 설득되지 않아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에 대해 깨달았다고 했다. 그냥 이유가 없이 아이를 원할 수도 있구나. 였다. 


종족번식이라고 쓰고 보니 야만적인 것 같지만, 엄마가 되고 싶은 마음은 어쩌면 본능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나는 아이를 낳는 것이 무섭고 두렵지만, 한편으로는 아이를 위해 내가 올인을 할 타입이라는 것을 남편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나 조차도 내가 그렇게 될 것임을 반려동물을 키우면서 알게 되었다. 


나의 다짐이 남편을 설득시켰다. 그렇게 우리는 아이를 갖기로 합의를 하였다. 

그런데, 삼신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자, 갖기로 했으니 주세요. 

한다고 뿅! 하고 생기는 것이 아이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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