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포세대, 무엇을 더 포기해야할까?
나이가 든다는 것은, 포기가 빨라진다는 말과 같다
나의 어릴적 좌우명은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 라는 것이었다. 안되면 될때까지 시도하자는 의미에서 잡았다. 공부에 관해서 어떤 간절함도 없고 노는것도 신나게 노는 타입도 아니어서인지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면서 하는 것이 기도밖에 없었다. 엄마 말에 의하면 나는 어려서부터 '예살'바른 성격이 아니였다. 야무지지도 못했다. 잘 넘어지고 잘 덤벙거렸다. 물건도 곧잘 잃어버렸다. 욕심이 잘 없었다.
*예살있다
자신이 맡은 일을 잘하고자 하는 욕심과 애착이 있는 상태.주로 여성에게 쓰이는 표현입니다.손윗사람이 손아랫사람에게 씁니다.
어쩌면, 어릴때 나는 나는 특별하고 평범하지 않다는 근자감으로 무장하고 있어서일지도 모르겠다. (=생각이 없었다)
치기 어린 특별함과 평범함을 부정하는 마음들은 30대가 되면서 벚꽃처럼 우수수 낙화했다.
아니, 세상에 나와 돈을 벌려고 마음 먹은 순간부터 바스라졌다.
세상에는 내 마음대로. 아니 내가 생각한대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1도 없었다.
나의 능력치는 쪼렙이었다. 나보다 엄청난 능력자들이 세상에 드글드글 거렸다.
언제부턴가 청년을 지칭하는 말로 취업포기. 결혼포기. 출산포기. '3포세대'라는 말이 처음 등장했다.
"88만원세대"라는 말도 내가 취업을 못해 아둥바둥 거릴때 나왔었다. TV와 신문에서 수식어처럼 '88만원세대'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항간에서는 "누가 80만원 받고 일해?" 과장이 심하다고 했지만, 겨우 아는 언니의 소개로 들어간 방송작가의 월급은 88만원도 되지 않았다. TV와 신문에서 신나게 떠들어대는 "88만원세대"라는 말에 나는 조금 위안을 얻었다. 하지만 실상은 세금을 떼고 교통비, 식비, 학자금대출까지 내고나면 방세를 낼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일이 쉬운것도 아니였다. 일의 강도는 쎘다. 그럼에도 "넌 여기에 어울리지 않아" 라는 소리를 들으며 그들이 말하는 '방송작가'가 되기 위해 아둥바둥거렸다. 밤낮없이 일을 해서 년차를 쌓고 월급은 겨우 88만원을 넘겼다. 세상에는 5포세대가 나타났다. 3포세대에 이어 내집마련과 인간관계를 포기하는 5포세대. 나도 시대에 발맞추어 5포세대가 되었다.
방송국을 뛰쳐나와 다시 취업준비생이 되었다.
6평남짓 방에서 그마저도 월세를 깎아서 지내고 있었지만 하루종일 물만 먹고 살아도 돈은 나갔다. 통신비도 나가고 전기세도 나가고, 돈은 줄줄 샜다. 오래된 집이어서 녹물이 심각하게 나왔지만, 정수기를 들일 수는 없었다. 물을 끓여먹어도 녹물이 심해서 결국 생수를 사다 먹다가 그마저도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며 도서관 정수기에서 물을 받아먹었다.
집에서는 잠만 잤다.
계속 도서관에 나갔다. 밥은 2일을 굶고 3일째를 못버텨서 라면을 사먹었다. 체질은 변했고, 나는 인생에서의 건강을 다 끌어다 태우고 있었다. 비정기적인 식사와 운동량 부족으로 몸은 점점 살찌기 쉬운 체질이 되어갔다.
그 무렵 연애도 잘 되지 않았다. 취업도 잘 되지 않고, 건강도 잘 지켜지지 않았다. 모든것이 잘 되지 않았다. 새벽이 되면 불안해서 잠이 오지 않았다. 정신이라도 붙들고 있기 위해서 '세바시'를 비롯한 각종 강연들을 보며 마음을 붙잡았다. 그때부터 고질적인 불면증이 생겼다.
세상은 바야흐로 5포세대에서 "꿈과 희망"까지 포기하는 7포세대인 N포세대였다.
나는 트렌디세터처럼 바로 그 N포세대가 되었다.
부모님은 본가로 내려와 신부수업을 하다가 시집이나 가라고 했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서울에서 돈을 쓰고 시간을 쓰면서 백수생활을 이어가냐."고 했다.
처음에는 정성들여서 쓰던 입사지원서는 이제 마구잡이로 지원했고 광탈하고 간간히 면접을 보면서 자존감을 깎아먹었다. 제발 서류만이라도 통과되었으면, 면접은 끝장나게 잘 볼 수 있는데 하던 마음들은, 곧 면접에서 쟁쟁한 경쟁자들을 보며 쭈구리가 되어갔다.
그러다 어느날, 내가 살고 있는 집 옆 상가건물에서 불이 크게 났고, 잠옷바람으로 대피를 했다가, 집에 오니 2주동안 전기가 차단되었다. 창문을 닫지 못하고 대피를 했다가 집으로 돌아갔더니 연기덕분에 천장이 새까맣게 그을린것처럼 재로 덮여있었다.
동네에 찜질방이 없어서 집에 있었다. 본가로 내려가면 다시는 못올라 올 것 같아서 집에서 버텼다.
한겨울에 난방이 끊기고 전기가 없어서 버너에 물을 끓여서 배에 대고 잤다. 밥솥에 한켠에 오래된 밥처럼 그렇게 굳어가는 것 같았다. 몸이 얼어가는 것 같다고 해야하나. 펄펄 끓던 냄비를 배에 대고 있자, 냄비 밑바닥처럼 배에 그을림이 찍혔다. 옛날 죄인들에게 낙인을 찍듯 낙오자라고 세상으로부터 직인이 찍힌것 같은 모양이었다.
나는 도망가고 싶어졌다. 자기자신에게 걸어놓은 마지막 시간이 앞당겨졌다. 부모님께도 이번달까지 취직이 안되면 내려가겠다고 통보했다. 짐을 하나둘씩 빼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에 이력서를 넣었던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같은 지역의 대행사였다. 면접 날짜를 잡았다가 돌연, 하루 전날 회사에서 면접을 취소 했다. 면접 볼 팀장이 출장을 간다고 했다. 막나가는 회사인가보다 라며, 큰 기대를 걸지 않았던 나는 화도 나지 않았다. 그냥 운이 아닌가보다. 어느새 나는 염세주의자에서 운명론자가 되어있었다. 답답한 마음에 보러다녔던 타로에서 뽑았던 운명의 수레바퀴 카드를 떠올리며 '운명의 수레바퀴야 굴러가라!' 외쳤다. 그러면서 이 회사의 면접을 마지막으로 본가에 내려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며칠 뒤 다시 잡은 면접일에 회사 주소를 찍고 네비를 보고 가는데 회사가 나오지 않았다. 버스를 타고 몇번을 왔다갔다했다. 근처인것 같은데 찾을 수가 없었다.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면접 시간이 다가오는데, 도깨비집에 가는 것처럼 뱅글뱅글 돌기만 하고 회사를 찾을 수가 없었다.
# 2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