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살, 친구를 잃어버리는 나이

반짝반짝 멀어져간 나의 친구들이여

by LaLa
당신의 친구는 얼마나 가까이에 있나요?


남편과 나는 친구를 사귀는 스타일이 달랐다. 남편은 좁고 깊게 몇명만을 만나는 스타일이었고, 나는 얉고 넓게 여러명을 만나는 스타일이었다. 20대까지만 하더라도 새로운 모임에 나가는 걸 좋아하였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사실 다양한 분야의 다양한 직종의 사람을 만나는일이 어렸던 나에게는 큰 경험이었다. 덕분에 사람은 많은 부류와 자신의 기준들이 다 다름을 알게 되었다. 결혼을 하면서 그리고 친구들이 결혼을 하면서 학창시절의 친구들과 자주 만나지 못하게 되었다.


남편의 경우에도 결혼을 하면서 친구들과의 모임이 줄어들게 되었다. 친구들도 결혼을 하고 결혼생각을 하고 나이가 들었던 것일까. 밤새도록 아침까지 술을 마시고 해장을 외치던 친구들은 회사때문에 혹은 와이프가 기다려서 혹은 체력이 모자르다는 이유로 20살때처럼 마시지 못했다.


20대 후반부터는 직장인과 비직장인으로 갈라지기 시작하더니 미혼과 기혼으로 나누어지고 자녀가 있음과 없음으로 갈라졌다. 다양한 형태로 변해가면서 학창시절 그냥 만날 수 있었던 친구들의 수는 점점 줄어들었다.


취업을 먼저 하면서 뒤늦게 취업을 하거나 취업전선에 계속 뛰고 있는 친구들은 부담감을 느끼고 자연히 멀어졌다. 서로가 조심스러웠다. 괜찮다고 마냥 불러내기도 마냥 얻어먹으러 나오기도 조심스러워졌다.


아이 엄마들은 아이엄마들의 커뮤니티가 형성되었다. 얼집 엄마들의 모임이 생겼고, 아이가 친구가 생기면 그 친구의 부모와 친구가 되었다. 부모의 커뮤니티가 생겼다.


친구중에 일찍 결혼을 한 친구가 있었는데, 아이를 낳고 한번도 밖에 못나왔다는 말에 어렸던 나는 생각없이 카페로 약속 장소를 잡았다. (코로나19 발생 10년 전)


잘자던 아이는 카페에 오자마자 울기 시작했다. 낯선소리들에 낮잠을 깨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친구는 자리에 엉덩이를 붙이지도 못하고 카페에 온 손님들에게 방해가 될까봐 카페 밖과 안을 왔다갔다하면서 아이를 달랬다. 그마저도 다른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아야했다. 살아오면서 처음 느껴보는 애엄마를 향한 따가운 시선이었다. 결국, 시켜놓은 커피를 한모금도 마시지 못하고 급하게 남편을 불러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갔다.


관심사가 달라지면 서로 대화하는게 재미가 없어진다. 나의 관심사 나의 경험이 아니어서 재미있는건 잠깐씩 만나는 모임에서나 가능했다. 나는 취업준비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고, 친구는 육아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아이의 장난감에 대해서 나는 잘 몰랐고, 친구는 회사생활에 대해서 잘 몰랐다.


오은영 박사가 TV에서 이런말을 했던 적이 있다.


"우리나라는 같은반 친구라는 말이 있지만, 반 친구들은 등교부터 하교때까지 같이 생활하는 친구들이다. 같이 밥을 먹고 수업을 들으며 하루를 보내는 영어로 말하면 Classmate인셈이다. 그런데 친구는 친한 아이들을 친구라고 부른다. 반아이들과 친구는 전혀 다른개념. 싸우지만 않아도 잘 지내는 것이다.


35살의 인간관계에서는 친구보다는 다른 인간관계로 명명되는 관계들이 많았다.

회사에서 만난 사람들은 '직장동료'이고 아는 사람들은 '아는 지인'으로 칭해졌다.

같은 동네에 살고 있으면 '동네 주민'으로 칭해진다. 그마저도 요즘은 잘 모른다. 옆집에 사는 사람도 간간히 얼굴만 보거나 그마저도 모르는 경우도 있다. 친구는 없었다. 친구를 만들 수 없었다.


그리고 결혼을 하면 배우자의 친구들과도 만날 일이 생기는데, 내 친구들과는 또 다른 개념이었다. 각자의 친구가 서로 잘 맞을 수 있는 행운의 변수는 늘 존재하는 것은 아니기때문이다.


모든 사람들과 잘 지낼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된 이후로는 나와 맞지 않는 사람들에게 시간을 할애할 노력을 더욱 안하게 된다. 친구라는 것은 10대에 국한된것인지도 모른다. 20대때 대학교에서 만난 사람들은 대학동기이자 친구와는 또 달랐다.


어쩌면 40대를 바라보고 있는 35살은 친구를 잃어버리는 나이인지도 모른다

10대때 같은 동아리에서 같은 곳을 바라보는 꿈을 꾸었던 친구는 지금은 다른 행성으로 가버린것처럼 멀게 느껴진다.


그러다 참 희안하게도 같은 관심사가 생기거나 공통사가 생기면 확 끌어당겨지는 중력처럼 가까워지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 우주가 그러하듯 자신의 자리를 맴도는 행성들처럼 각자의 자리에서 삶을 살아간다.


그리고 무서운 점은 처음에는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혹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작았던 간극이 나이가 들 수록 친구들 사이에도 커지고 멀어진다는 점이다.


절친은 3명이상 만들기도 힘들고 1명만 만들어도 이번 생은 잘 살았다 라고 한다는데.

그 친구들도 점점 나이가 들 수록 말 한마디에 사이가 벌어지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하고 소원해지기도 하고 그럼에도 다시 연락하기도 하고 다시는 안보는 사이가 되기도 한다.


내가 학창시절에 추구했던 얉고 넓게 사귀던 친구의 스펙트럼은 학교를 졸업하고 나자 연락하고 만나는 친구들이 몇명 되지 않았다. 그나마도 같은 지역에 있을 때는 길에서 버스에서 갑자기 마주치면 반갑게 인사는 하는데, 서로 볼 약속은 잡지 않았다.


타지역으로 학교를 오거나 이사를 가게 되면 더욱 그럴일은 없어진다.

sns를 통해 눈팅만 간혹 하고 있을 뿐 연락조차 안하는 인간관계도 많아진다.


친구가 줄어드는게 아니라 친구를 잃어간다고 해야 맞는 표현일까?

나를 중심으로 형성되던 친구들은 확장 가족을 중심으로 중심축이 바뀐다.

결혼을 하면 남편의 친구들로, 아이를 낳으면 아이의 친구들로,


내가 중심이 되던 나의 친구들은 또 다른 안드로메다에서 자신의 행성들을 찾아서 공전하고 자전하고 빛을 내고 있겠지.


별이 아름다운걸 멀리 있어서 인것 처럼 그들도 멀어져서 아름다운걸지도 모른다.

진짜 행성 가까이 가보면 핵분열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르니.


안녕, 반짝반짝 멀어져간 나의 친구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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