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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La Dec 06. 2021

엄마, 나도 '엄마'가 되고 싶어요

난임이 난치병이 되는 순간

난임이 난

결혼하기 전에는 몰랐다.

 '자연임신'이라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결혼하고 5년을 놀다가 '노산'의 턱 앞에서 나는 '임신'에 가까워지기 위해 '난임 병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아니, '난임 휴직'을 하기 위해 '난임 병원'에 처음 찾았다고 해야 정확한 표현이다.


요즘엔 결혼하기 전에 '혼수'로 애를 해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속도위반'에 관대해졌다. 출생률은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는데, '난임 병원'에 가면 대기가 기본 1시간 이상 유명한 선생님에게 진료를 보려면 2시간은 물론 반나절, 한나절이 지나갈 때도 있다. (이럴 거면 왜 예약을 받을까)


임신을 하기 위해서 의자마다 촘촘히 한국의 모든 여자들이 다 모여있는 듯한 그녀들의 모든 간절한 하나의 소원 '임신' 그것으로 통일된 그곳에 다니다 보면, 내가 임신을 위해 태어난 존재인가 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 다다르게 된다.


나는 생리통이 시작할 때부터 심한 편이었다.


학교 다닐 때도 응급실에 3번이나 실려갔고, 지하철에서, 또는 기차에서 기절해서 공익 등에 업혀간 적도 있다. 그렇게 해서 간 응급실에서 하는 것은 '모르핀'을 맞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진통제를 맞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걸어서 진료비를 계산하고 집에 돌아오곤 했다.


난임 병원의 관문은 생리 2-3일 차에 병원을 방문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나의 첫 난임 병원 방문일은 크리스마스였다. 캐럴이 울려 퍼지는 병원에는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그날은 빨간 날이라 다른 의사 선생님들이 근무를 하지 않아서 한적했던 것이다. 나는 당직 선생님께 진료를 봤다.


생리 중에 초음파를 보고, 피검사, 그리고 나팔관 조영술을 한다. 남편의 정자 검사도 더해진다. 검사비만 몇십만 원이 나온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생리통에도 병원을 찾았을 때 그저 체질이라고 했던 것처럼 우리 부부의 난임에도 그저 이상 없음이 발견될 뿐이었다.


특별한 이상이 없는데 임신이 되지 않는 것,
그것을 '난임'이라고 불렀다


생리통도 심한데 생리 중에 초음파를 보면 정말 생리통이 심해진다. 나는 특히나 초음파가 잘 보이지 않아서 배를 눌러가면서 초음파를 보는데 정말 아프다.


그럼 이때부터 과배란 약을 먹거나 과배란 주사를 자가 주사하게 된다. 시험관으로 가는 길은 '자가주사'라는 필연의 고난길이 따라온다.


나는 난임 휴직 기간 1년 동안 난임 병원을 다녔다. 혼자 지하철을 타고 다녔다. 물론, 시험관은 하지 않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금방 마음만 먹으면 임신이 될 거라 착각했다.


이유가 없는 이상 증상이라는 걱정은 내 머리를 갉아먹었다


간호사들은 조심스럽게 한 명 한 명 다가가 말을 했다. 정신이 없어 보이는 여자들에게 종이에 번호를 매겨가면서 하나하나 순서를 알려주었다.


한 사람이 평생 동안 만들 수 있는 '난자의 수'는 정해져 있다고 한다.

과배란을 통해 여러 개를 꺼내 쓰고 있는데, 단하나도 수정이 되지 않는 것은 슬픈 일이다.


여러 개의 공을 던지고 있는데, 하나도 골대에 들어가지 않는다.


아동학대 관련 기사가 나올 때마다, 고민이 있어서 사연을 보낸 사람을 볼 때 나는


"나는 왜 안 되는 것일까?"


라는 질문에 갇힌다. 사실, 인공수정, 시험관을 통해서도 할 수 없는 일. 그것은 '착상' 신의 영역이라고 한다. 무엇이 다를까 싶지만, 난임 병원에서도 인기 있는 선생님들은 존재한다. 일명 '손기술'이 좋은 사람, 나와 '궁합'이 잘 맞는 사람이 중요하다고 한다.


이래도 저래도 안 되는 경우에는 '전원' , 병원을 옮기기도 하고 '손바꿈' 담당 의사를 바꾸기도 한다. 하지만 벗어날 수 없는, '나는 왜 안 되는 것일까'라는 질문에 답을 찾지 못하면 '난임'은 '난치병'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착상에 좋다는 당이 없는 '두유' '토마토' '대추차'를 먹고, 난자의 질을 좋게 해 준다는 비싼 영양제도 척척 산다. 아무 소용이 없다는데도 물구나무 서기를 하고, 소원을 빌기 위해 소원바위를 다니기도 했다. 속는셈치고 아침도 먹지 않는 내가 삼신상을 차리고 남편과 아침밥을 먹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난임 병원에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대기 시간도 늘어나고, 앉을 곳이 없을 정도로 대기를 하기도 하였다. 점점 나는 '코로나'를 핑계로 사람들과 덜 마주치는 시간대를 골라서, 조금 덜 기다릴 수 있는 선생님에게 진료를 보는 요령을 피우기 시작했다.


'사소한 간호사들의 계산 착오로 병원을 재방문해야 할 때.'

'카드 결제를 거부당해서 현금 결제 요구를 받을 때. '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은 일들이 점점 대수롭게 변한다.

혼자서도 잘 해내던 일든은 어느 순간 혼자 버티기 무거워진다.

아무렇지 않게 넘어갈 수 있는 일들이 짜증스럽고 원망스러워진다.


평소라면 그냥 지나갔을 일들도 짜증이 나고 예민해진다. 호르몬 약에 절여지다 보니 난소암이 발병할 확률은 점점 올라가고 있는데, 임신은 되지 않았다. 숙제일을 받아오고 숙제를 해가지만, 여전히 '단호박' 한 줄 테스트기와 함께 '생리'가 찾아왔다.



엄마, 나는 왜 엄마가 되지 못하는 걸까?


또 다시 캐롤이 울려퍼지는 계절이 왔다. 오르골소리의 캐롤은 끊길듯 끊기지 않고 아기 자장가처럼 울려퍼진다. 난임병원에서는 아무도 큰소리를 내지 않았다. 아무도 쿵쿵 거리면서 뛰어다니지 않았다.


초음파 대기는 40명을 넘길때도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짜증을 내지 않았다. 난임병원의 공기중에는 건들면 터질것 같은 빵빵해진 풍선을 쥐고 있는 기류같은 것이 흘러다녔다.


돈은 돈대로, 몸은 몸대로 지쳐가면 멀쩡하던 정신줄도 점점 아슬아슬해진다.


난임병원을 간다는 말에 엄마는 나에게 말한다.

'조바심을 내지 말자' '엄마도 임신이 되었으니 너도 될것이야' 라는 말들을 한다. 내가 태어났으니 엄마는 임신이 된게 맞다. 내가 그 증거이지 않은가. 하지만, 내 속의 다른 질문들은 나를 덮친다.


이유도 모르고, 원인도 알 수 없어서 내 몸에 좋은 것을 때려박으면서도 점점 의심이 올라온다. 이게 맞나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첫 질문에 답을 찾지 못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근본적인 질문에 가까워진다.


'나는 진짜, 아이를 원하는 것이 맞는가. '

'내가 아이를 키우기에 부적합해서 아이가 찾아오지 않는 것은 아닐까.'


자기 의심이 시작되기 시작하면, 이제 신체적인 불균형에서 정신적인 불균형으로 가는 길에 들어섰다는 증거이다.


그리고 그것은 부부사이에서도 금이 가기 시작하는 경계선이기도 하다. 남편은 나에게 '병원시술'을 통해서까지 꼭 '아기'를 가져야 하는지 의문점을 던졌다. 생각보다 '병원'이라는 장벽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난임'이 '난치병'이 되는 순간이다.

그리고 동시에 수많은 난임부부들을 붙잡아준 문구를 붙잡아야 하는 순간이다.



아기가 늦게 오는 것은
아기를 기다리는 엄마아빠가 만들어놓은 꽃길을
천천히 구경하면서 오기 때문이다


bgm: 동요 <아빠의 말씀>

https://youtu.be/jz3kBhUNVFU

<아빠의 말씀> 이라는 동요


엄마(아빠), 언제 어른이 되나요
나는 정말 꿈이 커요
빨리 어른이 돼야지

그래 아가 아주 큰 꿈을 가져라
안된다는 생각은 하지 말아요 암 되고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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