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주에는 '관'이 많다고 했다. 관이 많다는 것은 '관직'이라는 의미와도 같아서, 기관에서 일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아니면, 강단에서는 교수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내가 더 공부하지 않고 일찍 돈 버는 맛을 봐서 가방끈이 짧아져서 교수가 되지 못했다고 했다.
살아가는데, 재물운 관운 인복이 있어야 한다는데, 관이 어떤 의미인지는 딱히 느껴지지 않았다. 더욱이 어머니와 외가의 모두 모태 신앙으로 기독교를 믿고 있어서 나는 성인이 되어서야 사주와 타로라는 문화를 접할 수 있었다. (그때쯤 많아지기도 했다)
관은 직장을 뜻하고 관직 같은 의미지만, 자신을 제어하는 뜻이기도 했다. 사주를 공부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한다. 태어난 때와 10년 주기로 바뀌는 운세가 그렇다고 한다.
그랬나 안 그랬나 모르겠으나.
첫발을 시청으로 들여놓은 탓에 그렇게 계속 풀렸는지도 모른다. (이래서 첫 직장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하지만, 내 속의 마음들은 사기업 스타일이었다. 아이디어를 내고, 진취적으로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성취욕구를 채웠다. 이런 스타일은 관공서에 맞지 않았다.
관공서는 늘 반복되는 시스템이다. 아이디어가 특출 날 필요가 없다. 특히 이 말은 일을 벌이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다.
나는 공무원 가족을 두었고, 그런 FM이 싫었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우리 부모님들이 얼마나 하해와 같은 이해심과 아량 그리고 배려가 있었는지 기관에 와서 뼈저리게 느꼈다. 나는 늘 열심히 머리가 새도록 일하는 아버지를 보면서 놀고먹는다는 '공무원의 이미지'가 억울했다. 칼퇴는커녕 매일같이 야근하고 현장감독을 하는 일이 참 고된 일이라고 크고 나니 느껴졌다.
그런데, 내가 그 속에 들어가고 보니, 왜 공무원들이 그렇게 되는지 알 수 있었다.
공직사회에서 일을 잘한다는 것은 곧 일을 많이 해야 한다로 이어졌다.
문의 전화를 왜 이렇게 부서마다 돌리나 했는데, 자신의 담당이 조금이라도 아닐 때 친절을 베푼다며 안내했다가 틀렸을 경우 독박을 쓰게 된다. 점점 연차가 쌓일수록 다른 부서로 전화를 돌린다. 계속 순환 업무를 하다 보니 세세하게 파악하기가 힘들어진다. 또 전화를 돌린다.
어떤 일을 새롭게 진행한다고 치자.
기획의 단계에서 팀장님의 허락과 조언을 구한다. 그다음 과장님에게 조언을 구한다. 기획을 한다. 기획안에 들어갈 예산을 짠다. 만약 편성된 예산이 없다면, 추경 (추가로 올리는 것)을 해야 한다. 일이 복잡해진다. 운 좋게 예산이 있었다. 기획안에 예산까지 계획해서 결제를 올린다. 결제는 팀장과 과장과 심각한 사안일 때는 우두머리까지 올라간다. 은어로 시장을 '사장'이라고 부른다.
기획안이 운 좋게 통과되었다. 그러면 이제 진행을 한 후에 중간보고서, 결과보고서, 예산 집행서, 예산 결과를 영수증 첨부하여 다시 제출해야 한다. 예산은 집행을 2번 정도 한다. 예산팀 혹은 회계팀의 손을 거쳐서 집행된다. 이렇게 까지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야 해서 중간에 누군가 일이 바빠 결제가 이루어지지 않거나 서류가 빠졌을 때 한 달까지 걸리기도 한다.
조그마한 이벤트를 하려고 했을 경우에도 이렇게 한 달의 시간이 소요되고 나면, 기존의 연간 행사를 중간중간 치러야 하고, 세금을 사용하기 때문에 실패가 용납되지 않는다. 그래서 모두가 안전빵으로 해왔던 일, 검증이 된 일들만 하려고 한다.
나 또한 1년을 열정을 태웠고, 내가 아는 모든 지식과 지혜 꼼수까지 쏟아부었다. 하지만, 결과는 같은 팀원들의 일만 늘렸을 뿐이고, 옆 팀의 일까지 해줘야 해서 나만 남아 야근을 하고 있었다. 티도 나지 않는 야근이었다. 오히려 내 업무에 지장을 줄 뿐이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다.
성과가 좋다고 해서 성과급이 크게 나오는 게 아니었다. 보통의 공직사회에서의 성과는 회사처럼 숫자로 나오는 게 아니다. 성과급은 상사들의 평가에 달려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잘 보여 줄을 잘 타야 한다. 그래서 공직사회는 비효율적이며, 줄타기의 연속이다. 인사까지도 그들 손에 달려있기도 하다.
운이 나쁘면 그렇게 일을 진행하다가도 다른 팀으로 인사발령이 난다. 새로 오는 사람이 나의 진행일을 뒤처리하기가 너무 힘들다. 그렇게 점점 나는 가만히 일 벌이지 않는 직원이 되었다.
아무래도 일에 매달리지 않다 보니 부가적으로 신경 쓰는 것들이 많다.
시보 떡을 돌린다던지
옷차림새라던지
하다못해 사무실에서 신는 슬리퍼까지도 그 조직의 조직문화를 벗어나면 안 되었다.
어느 기관에서는 돌아가면서 팀장이랑 독대로 점심을 먹어야 하는데 그마저도 점심을 사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제일 월급도 적은 말단이 왜 팀장 점심까지 사줘야 하나. 고충을 듣기 위함이라면 팀장이 사줘야지.)
그렇게 사람들이 하고 싶어 하고 들어오고 싶은 공무원. 혹은 공기업들은 실상 그 속에 있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경악을 금치 못할 것이다.
공공기관에서 살아남는 법은 '나를 드러내지 않기'이다.
아직도 "여자는 치마를 입어야지"라는 말을 하는 상사가 있고 (물론 기관마다 다르다)
휴가나 월차도 마음대로 못쓰며 (팀장부터 다 쓰고 나서야 차례가 온다)
여전히 직급이 낮고 어린 사람만 밤새 일을 하고 관리직들은 일을 잘하지 않으려 한다
열성적으로 아이디어를 내서도 되지 않고,
아이디어를 내고 두각을 나타내면 시기와 질투는 물론, 이상한 사람으로 낙인이 찍히는 각오를 해야 한다.
열심히 일하려 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대충 일해야 한다. (이건 진리다) 무조건 일을 벌이지 말아야 한다. 그것만이 살길이다.
나의 100%를 보여주지 말고 80%만 일을 하고 필요시에만 20%를 꺼내 보여주어라. 내가 100%를 다해서 일을 하면 120%를 원하는 것이 회사다.
라는 말이 있다. 공직사회는 100%를 발휘하면 모든 관의 일이 나의 일이 될 것이며, 그것은 곧 평범하지 못한 나를 깎으려 드는 사람들로 둘러싸이게 됨을 의미한다.
그렇게
나는 내 발로 '철밥통' 내 사주에 있는 수많은 '관'을 박차고 나왔다.
35살, 회사에서 살아남는 법을 알아도 나 자신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