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살, 내 속의 꼰대를 발견하는 나이
누구나 보수적인 면은 있다
"아 오늘 하루 너무 바빴어. 너무 힘들어"
라는 남편의 말에 나는
"내가 더 바빴어. 나는 점심시간에 일정도 치르느라 5분 만에 햄버거를 먹고 일했어."
그러자 돌아온 대답이 내 통수를 치고 갔다.
"당신 꼰대야?"
프로포즈를 왜 남자만 해야 하냐며 역 프로포즈를 준비하고 축가를 준비하는 친구도 남편 아침밥을 차려주기 위해 일찍 일어난다.
일에 자부심을 가진 10년 차 직장인이면서 친정엄마 제사를 명절에 왜 같이 못 지내냐던 친구도 남편과 전을 부치면서도 친오빠가 준비를 다 끝내고 제사할 시간에 맞춰 와도 뭐라 하지 않는다.
책도 많이 읽고 와이프의 집안일에도 아들처럼 적극적으로 나서는 친구도 다른 친구 집들이에 제수씨가 있지 않으니 진짜 '집들이'가 아니라고 한다.
내가 만약 출산을 하게 되면 남편은 같이 함께 출산과정을 함께하고 아기가 나오는 과정을 다 지켜보고 싶다고 했다. 의사가 되고 싶었던 남편의 의학적인 궁금증 해소이기도 했지만 나는 직접 보지 말아달라고 했다. 출산 장면을 목격하고 부인과 관계가 하기 힘들어졌다는 말 때문이었다.
그런 얘기에 친구는
"그냥 자기애가 태어나는 건데 트라우마 생긴다는 말은 너무 이기적이지 않아?"라고 말했다.
나는 한대 얻어맞은 것처럼 뒤통수가 얼얼했다.
누구나 보수적인 면은 있다. 개방적이라고 나는 열려있다고 믿었던 내 속에 숨어있던 꼰대를 만나는 일은 내가 내 뒤통수를 치는 일이다.
고등 래퍼에서 영지가 1등을 했던 시즌.
교복을 입고 온 영지에게 다른 참가자들이 왜 교복을 입고 왔냐고 물어본 에피소드가 있다. 학교를 다녀오고 바로 방송국을 온 영지는 학교에서 왔다고 했고 다른 참가자들은 학교를 다니는 것에 놀라며 자퇴를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참여자 상당수가 학교가 무의미해 랩을 하고 싶어서 학교를 나왔다.
결국 교복을 입고 온 영지가 우승을 했다.
꼰대가 된다는 것은 선입견이 생긴다는 말과 비슷했다. 비슷한 듯 다르게. 누구나 현실과 타협하는 지점은 있다.
현실의 보수적인 면과 타협하면서 꼰대가 되어간다
20대 때는 무조건적인 반기와 봉기가 열기고 젊음이었다
세상에 특히나 내 것이 없는 것은 억울했다
어른들이 정해놓은 규율과 규칙이 싫었다
꼰대가 싫었다.
어릴 때는 우리 부모님이 세상 제일 보수적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이제야 내가 세상에서 만난 어른들 중에 나에게 제일 개방적이고 유연하게 대해준 어른이다.
내 속의 꼰대를 발견하는 일은
세상과 타협한 지점을 발견하는 일.
그렇게 세상에 일부가 되었다고 치부하는 일.
내가 알던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는 일.
어른이 되었다고 착각하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