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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La Sep 06. 2021

돌멩이를선물해주는 남자

남편과 결혼을 한 이유 (1)

"자, 네가 말했던 거" 

출처: 한려해상 국립공원 동부사무소

투스타. 쓰리스타. 

나에게는 분별이 가지 않는 계급이었지만, 아무튼 높으신 양반이 방문한다는 소식에 새로 이사한 청사를 더없이 깨끗하게 청소했다고 했다. 심지어는 해변으로 가서 예쁜 돌멩이를 선별해서 주워와 로비에 멋들어지게 꾸몄다고 했다. 


군대라는 곳은 그런 곳이었다. '나무가 있어야겠다' 하면 어디서 나무를 뽑아오든 만들어오든 그 자리에 있어야 했다. 


나는 해외로 여행을 가면, 꼭 선물을 사 오라고 "돌멩이라도 주어와"라고 했다. 


몽돌해변을 가본 적 없던 나는 그 장소의 기억이 갖고 싶어서 몽돌을 주워달라고 했다. 몽돌에 파도가 부딪쳐서 부서지는 소리가 참 예쁘다고 했다. 나는 그 돌멩이들이 작고 예쁜 몽돌이라고 생각해서, 2개만 주워달라고 했다. 


휴가를 나와 가방에서 묵직하게 나오는 몽돌은 내가 생각한 크기와는 달랐다. 손바닥만 한 몽돌 두 개가 가방 바닥에서 나왔다. 바닷소리의 기억을 안고 있는 몽돌을 받아 든 나는 당황했다. 


'어? 내가 생각한 거랑 다른데? 이렇게 큰 줄 알았으면 가져 다 달라고 안 했을 텐데 '


어색하게 나는 돌을 받아 들었다. 주머니에도 다 들어가지 않는 손바닥만 하게 큰 무거운 돌들은 사용할 곳이 없었다. 왜 주워달라는지 이해하지 못하지만 아무 말 없이 무거운 돌을 가방에 넣고 먼 거리를 대중교통을 타고 온 순수한 마음이 고마워 아무 말 없이 돌을 받아 들었다. 그렇게 한참이나 집 베란다 구석에 처박혀 있었지만, 2번의 이사에도 꾸준히 우리 집 짐으로 따라다녔다. 


아파트에서만 살았던 나는 첫 신혼집이 입주 1년도 안돼서 재건축으로 나가라는 소리에 급하게 주택으로 이사했다. 주택과 아파트의 차이를 실감하지 못했던 나는 주택 3년 차가 되어서야 문제점을 확실하게 깨닫기 시작했다. 


주택가에 빼곡한 집들은 유난히 바람이 잘 들지 않았다. 바람이 아예 불지 않는 것도 아니고, 골목 쪽으로 난 끝집이라 그나마 바람이 잘 통하는 편임에도 불구하고, 장마처럼 비가 여러 날 쏟아지고 나자, 베란다에서 자라던 화분에 벌레가 출연하거나 노란 버섯들이 자라기 시작했다. 


남편과 힘들게 분갈이를 시작했다. 흙들을 털어내고 남편이 땀을 뻘뻘 흘리며 화분을 씻어왔다. 깊은 화분에 채워 넣을 돌들을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동안 집 베란다에서 잠자고 있던 돌 2개를 깨웠다. 이제야 쓸모를 찾은 것이다.


바다의 냄새를 품고 파도와 몸을 부딪히던 돌들은 그렇게 화분 밑바닥으로 가라앉았다. 그 위로 새로 산 상토흙을 깔고 결혼 나무라며 결혼할 때 구입한 블루베리 나무를 옮겨 심었다. 이사를 할 때 도배를 다 못해서 밖에 트럭에서 겨울 한철을 보내도 죽지 않고 버텨낸 나무였다. 말라죽을 뻔 잎을 다 떨궈내도 다시 살려낸 나무였다. 


잠들기 전 침대 머리맡에서 남편에게 물었다 


"남편이 군대 가기 전에 우리가 만났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남편은 그 말에 당연한 듯이 대답을 했다.


"헤어졌겠지" 


"왜 그렇게 생각해?"


"맨날 TV에서 나오는 고무신들 보고 헤어지라고 말하잖아"


생각해보니 나는 그랬다. 남자 친구가 군대를 가서 힘들다고 하는 사연이 나오면 "헤어져! 헤어져!"를 외쳤다. 어쩐지 내가 기다리지 못해 헤어지라고 하는 것으로 생각하나 싶어서 물었다


"내가 왜 그렇게 말하는지 알아?" 


"내가 다 기다려봤어서 하는 말이야" 


그러자 남편은 나를 끌어안으며 말했다


"TMI야 "


그 순간 나는 알았다. 

내가 왜 돌멩이를 선물하는 남자와 헤어졌는지. 

그리고 왜 남편과 결혼을 했는지. 


나의 마음속에 짱 박혀있던 무거운 돌멩이가 파도 소리가 들리는 원래 자리 해변으로 돌아간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후에 돌멩이를 주워다 주는 남자와 헤어지고 가족들과 함께 몽돌해변으로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몽돌에 부딪히는 파도소리는 모래사장의 파도소리와 달랐다. 돌멩이는 주워오지 않았다. 그 이후로 돌멩이를 주워 가는 것도 금지되었다.


아마, 남편이었다면 현실성과 합리성을 고려해 '몽돌'을 주워 다 달라는 나의 요구를 순순히 들어주지 않았을 것이다. 먼 거리를 대중교통을 이동해 오면서 가방이 무겁게 돌을 들고 다니지 않았을 것이다. 


설상 주워왔다고 해도 남편은 돌을 주워달라고 말하자마자 "그 돌을 어디에 쓸 것이냐"며 반문했을 것이다. 예쁜 돌이 필요한 거면, "쿠팡으로 사는 게 더 낫지 않냐"며 한소리를 했을 것이고, 그런 남편에게 나는 "부탁을 그냥 들어주지 않는다"며 또 한소리를 했을 것이다. 우리는 결국 돌멩이 하나로 투닥거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나와 함께 '몽돌해변'에 왔을 것이다. (돌은 주워다 주지 않을지언정)

그게 내가 남편과 결혼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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