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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La Oct 15. 2021

딸을 둔 아버지가 사돈에게 해야 할 말

우리 애가 욕심이 많아요. 고집도 엄청 세고요.

나와 남편은 첫째로 개혼이었다. 친구들도 이상하게 첫째가 많았다.   

개혼開婚
한 집안의 여러 자녀 가운데 처음으로 혼인을 치름. 또는 그 혼인

집안의 첫 결혼 때는 자녀도, 부모도 결혼이 처음이라 실수도 많이 하고, 어리바리하는 경우도 많다.


"우리 애는 욕심이 많아요. 저는 분명히 말씀드렸습니다. (하하하)
인수인계 다 해드렸어요~"


친구 아버지가 상견례 날 시부모님들 앞에서 했던 말이었다. 친구는 몹시 당황스럽고 얼굴이 붉혀져 안절부절못하다가 결국  집에 와서야 아버지에게 왜 그런 말을 했냐고 물어보았다고 했다. (정확히는 따졌다고 해야 할지)


" 아빠, 왜 나 욕심 많다고 시부모님 앞에서 그렇게 얘기했어?"


아버지는 당황해하며


"네가 혼자서 알아서 잘하고, 대학도 알아서 잘 가고, 한 회사서도 10년이나 다니고 한 게 다 욕심이 많아서 잘 해냈다는 거니까"


"그럼, 그렇게 얘기하지 그랬어"


그 후로 시부모님은 잊을 만 하면, 친구에게


"**아, 욕심 그만 부리고 일 안 나가면 안 되겠니? 우리 아들이 너 일하라고 시키니?"


라고 말을 한다고 했다. 친구는 아빠가 참 뭘 해주고도 말 한마디를 잘못해서 욕을 먹는 타입이라면서 안타까워했다. 친구는 자신이 시댁에 '욕심 많은 애'로 낙인이 찍혔다면서, 왜 아빠는 그렇게 말을 했을까 라며 속상해했다. 듣는 나도 단순하게, 그러게 그냥 그날 술에 취하셔서 마음과 다르게 말이 나오셨나 보다.라고 위로를 했다.


 우리 딸은 드세고 고집이 센데 천생연분이네요


브런치에서 한 글을 봤다.

상견례 자리에서 "우리 아들이 착하다"며 연신 자랑을 하는 시어머니 앞에서 친정엄마는 "우리 딸은 드세고 고집이 센데 천생연분이네요"라고 알 수 없는 말을 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말을 전해 들은 친구들은 모두, 엄마가 일부러 그렇게 말을 해줘서 편을 들어줬다면서, 오히려 '착한 며느리'로 고생하지 않도록 판을 깔아준 것이라고 한다.


그 글을 보고 나자, 친구 아버지의 말이 다르게 느껴졌다.

나는 나의 상견례 자리를 떠올려봤다.


"딸 자랑 좀 해보세요"


라는 시아버지의 말에 우리 엄마 아빠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


나도 상견례가 처음이라 정신이 없어서 못 들었는데, 엄마는 나중에 집에 와서 속상하다며 말했다.


"아 그때, 늦은 것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딸 자랑해보라는데 아무 말도 못 해서 속상하네. 우리 딸 자랑할게 많은데"


사실 그날, 지방에서 차를 타고 부모님이 올라오시는데, 하필 나와 남편은 상견례 자리를 사당으로 잡은 것이었다. 사당은 엄청 차가 밀렸다.


뚜벅이로 지하철을 타고 다니던 우리는 지방에서 올라오시는 부모님들이 차로 이동하기 때문에 차막 힘까지 미처 고려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지금에서야 차가 생기고 나자 그게 얼마나 무모한 짓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설상가상 길을 잘못 들었고, 시간 약속을 제일로 여기는 우리 집이 그것도 상견례 자리에서 늦어버렸으니 부모님들은 페닉일 수밖에 없었다.


사실 상견례 자리에서 무슨 얘기를 했었는지, 사투리를 쓰는 부모님의 말을 시부모님은 다 알아들으셨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상견례가 마무리가 되었고. 시간이 흘러, 지금에서야 그때 부모님이 아무 말 없이 넘어간 것이 다행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부모님 덕분에 아무 편견 없이 시부모님은 나를 겪어보실 때까지 판단하지 않으셨던 것 같다.


덕분에 나는 내 마음대로 나의 며느리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었다.

나는 나의 이미지를 "남편이 고집이 세서 남편 말만 듣고 사는 며느리"로 잡을 수 있었다. (실제로도 남편이 고집이 세다. 함정은 나도 만만치 않게 세다.)


가끔은 시어머니가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옷을 사라고 권하셨을 때도, 쿠*에서 싼 걸 사면된다면서 거절할 수 있었고(그리고 내가 사는 브랜드에서 비싸게 주고 마음에 드는 옷으로 샀다) 시댁에 남편이 가기 귀찮아한다라고 말했을 때도 믿어주셨다. (믿어주는 척하셨을지도)


신혼집에 커튼을 사주고 싶다면서 홈쇼핑에 나오는 커튼을 사주겠다고 시어머님이 전화가 왔지만, 남편이 허락하지 않는다는 핑계를 대며 사지 말라고 했다.


이래나 저래나 시부모님이 알면서도 모르는 척져주시고 계시는 게 맞고, 그걸 나는 알면서도 모르는 척 남편 핑계를 대면서 지나가고 있다.


오메 기 살아!!


결혼이라는 것이 왜 기싸움이 필요한지 모르겠으나, 두 집안이 함께 하는 일이다 보니 종종 기싸움이 일어나기도 하는데, 요즘은 옛날과는 많이 바뀌어서 그래도 "딸 가진 죄인" 모드인 부모님보다는 "누가 내 딸 기 죽여" 모드인 분들이 많아진 추세다.


TV 프로그램 썰 바이 벌에 공개된 '딸 기 살려주는 아빠' 편을 보면, 상견례 자리에서 교육자 집안이라면서 딸을 무시하는 행태를 본 친정아빠가 딸의 기를 살려주려고 혼수를 최고급으로 해왔다는 썰이 나왔다.


https://youtu.be/yU9 HAZOlvsw

교육자 집안을 운운하며, 상대방 집 형편을 운운하는 결혼을 시키고 싶지 않았던 아버지지만, 임신했다는 딸의 이야기를 듣고 딸의 기를 살려주기 위해 신혼집으로 사돈을 초대하여, 초대형 초호화 혼수들을 들이기 시작했다는 이야기였다.


21평 집에 100인치 티브이를 비롯해서 최고급 홈시어터와 와인셀러, 초대형 냉장고 등 가구는 물론 혼수가 다 들어갈 곳이 없어서 결국 뺐다는 얘기. (알고 보면, 다 산 게 아니고 인맥을 통해 지인에게 다 빌려온 것이었다고 한다)


우리 딸 좀 예뻐해 주게


물론, 이 이야기가 꼭 옳다고는 할 수 없다. 어쩌면 극 소수의 이야기 일지도 모른다.(그러니 TV에 나오는 걸지도.)

, 마웨이라는 드라마에서 설희 엄마가 설희가 결혼도 하기 전에 시댁 행사에 불려 가서 도우미처럼 일을 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아파, 한마디를 하려다가 구박을 받을 까 봐 딸 남자 친구에게 우리 딸을 좀 예뻐해 달라 고 문자를 보낸 이야기. 이 이야기가 대부분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시대도 달라졌다. (모 커피 광고에서 대놓고 말할 만큼)


친구의 아버지도 어쩌면 친구가 욕심이 많으니 사랑을 많이 주라고 하신 말씀일지도 모른다. 욕심이 많고 알아서 잘하는 아이니, 이 아이가 하자고 하면 그냥 하자는 대로 해주는 것이 더 좋다고 말이다. (실제로 똑순이라 알아서 부모님 집도 구해드리곤 했다)


그리고 아무 자랑도 하지 않은 나의 부모님 덕분에 나는 '며느라기'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었다.


어느 부모든, 제 자식이 제일 이쁜 법인데.

'딸 가진 죄인'에서 벗어나 내 딸의 모습을 그대로 인정해주는 것. 그래서 사돈에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그런 부모님이 많아지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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