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분실왕

제발 내 수영복만은 가져가지 마시오.

by lalageulp

새벽수영 일기 9


어쩌면 나는 성인 ADHD가 아닐까?

이번 달만 해도 벌써 4번째 분실이다. 일주일에 한 번꼴로 분실하는 셈이니 이쯤 되면 성인 ADHD검사를 받아봐야 하는 게 아닐까? 분실한 물건도 가지가지다. 스마트워치, 오리발, 수영모, 가슴패드.. 이번에는 수영복까지.. 이렇게 다양하게 잃어버린 사람도 드물지 않을까?

다행히 분실물 코너에 가면 소중한 내 장비를 찾을 수 있다. 더불어 정말 많은 분실물을 보면서 ‘나만 정신머리가 빠져있는 건 아니구나, 다들 정신없이 살아가고 있구나’라며 위안을 얻는다.

하지만 문제는 당연히 분실물을 모두 찾을 수 있을 거라는 착각이었다. 다시 돌아온 장비들도 있지만 안타깝게도 돌아오지 못한 분실물들도 있다. 비싸게 산 물건이 아깝기도 했지만 주로 찾지 못한 분실물은 가장 아끼는 장비들이라 속상함이 크고, 가져간 사람이 너무하다는 생각에 하루 종일 기분이 안 좋기도 했다.

'본인 것도 아니면서 왜 남의 물건을 가져가는 거야?'

정작 부주의했던 건 나면서 누군지 모를 그 사람이 원망스러웠다.

잃어버린 물건을 찾기 위해 곳곳에 '소중한 물건을 찾습니다'라는 내용을 프린트해 곳곳에 붙여 두기도 했지만 다시 돌아온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런데 사실 물건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자신을 소중히 대하지 않은 주인이 너무 하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얼마나 얼이 빠져있으면 제대로 챙기지도 않은 거야?’ '이제 와서 나를 찾겠다고? 조금만 신경 썼더라도 잃어버리지 않았을 텐데!' 라며 나를 나무라는 듯한 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특히 이번에 분실한 수영복은 정말 오래간만에 큰맘 먹고 산 한정판 수영복으로 진한 남색 바탕에 수영하는 모습이 귀여운 미니어처가 바둑판처럼 배열되어 있는 디자인이었다.

샤워하는 동안 일명 짤순이라고 불리는 탈수기에 돌리기만 하고 그대로 탈의실로 가서 옷 갈아입고, 머리도 말리고선 새까맣게 잊은 채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고 주말을 모두 보내고 난 뒤 월요일 새벽 수영장에 도착해서야 챙기지 못했다는 사실을 인지한 거다. 도대체 남의 수영복은 가져가서 본인이 입는 걸까? 화가 나면서도 궁금했다. 그 이후로 다시는 볼 수 없었지만 한정판 수영복을 입고 수영할 때마다 기분 좋았던 기억이 떠오를 때면 정신이 바짝 들면서 빠트린 건 없는지 한 번 더 확인하게 된다.


수영에서도 일상에서도 숨 고르기 연습

새벽 첫 타임 수영을 하고 있지만 아이들이 아직 어리다 보니 일찍 출근하는 신랑 시간에 잘 맞춰서 바통터치를 해줘야 한다. 그래서 항상 5분 일찍 나와 준비를 하는데도 왠지 모르게 항상 마음이 분주하다.

수영장 문을 나서기 전에 한 번 더 돌아보면 얼마든지 챙길 수 있는데도 그 몇 초의 여유를 갖는 것이 늘 잘 안되다 보니 서두르는 날에는 뭘 꼭 하나씩 두고 오게 된다.

물건 하나를 두고 오는 날에는 이상하게 하루가 흐트러지는데 괜히 스스로를 탓하게 되고, 별거 아닌 것에도 마음을 빼앗기다 보니 쓸데없는 피로까지 쌓인다.


바쁘게 사는 게 나만 그런 것도 아니고 모두가 각자의 사정대로 바쁠 텐데 주변을 보면 잃어버리는 사람은 늘상 잃어버리고, 잃어버리지 않는 사람은 단 한 번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도대체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 꼼꼼함의 차이일까?

항상 자리에서 일어날 때마다 두고 나오는 건 없는지 주변을 살피는 신랑을 보면서 단순히 성격차이라고 여겼는데 가만히 보면 꼭 그것만은 아닌 거 같다.

생각해 보면 잃어버리지 않는 사람들은 바쁜 와중에도 주변을 돌아보고, 손에 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그 몇 초의 숨 고르기를 할 줄 아는 사람들인 거다.

반대로 나는 늘 다음 해야 할 일을 스스로 채근한다. 수영이 끝나면 얼른 샤워를 하고, 샤워가 끝나면 대충이라도 머리를 말린 뒤 55분이 되기 전에 후딱 옷을 입고 나가면 늦지 않겠지라고 생각하며 자꾸만 몸과 마음이 다음으로 달려간다. 그러다 보니 지금 손에 쥔 것들을 자꾸만 놓치게 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마치 자유형을 할 때 좀 더 빨리 가고 싶은 마음에 손과 발이 먼저 앞서가다 보면 호흡을 놓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수영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건 호흡인데 그걸 놓치는 순간 리듬은 깨지게 된다.

일상에서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몇 초의 숨 고르기를 하지 못해 두고 오는 건 물건뿐만이 아닐지도 모른다. 여유도, 차분함도, 나를 돌아보는 마음도 뒤에 두고 나오다 보니 일상의 균열이 생기는 거다.


그래서 수영에서도 일상에서도 숨 고르기 연습이 반드시 필요하다.


문을 나서기 전 한 번 둘러보기,

탈수기 안을 다시 보기,

사물함 문 안쪽 확인하기,

가방 지퍼를 닫기 전에 손으로 한 번 더 짚어보기.


그건 단순히 물건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한 방법이 아니라 나를 덜 놓치기 위한 아주 사소하지만 중요한 연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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