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하루 보내세요!

수영장에서의 인사

by lalageulp

새벽수영 일기 8


수영장 인사의 기준

수영을 시작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더라도 같은 반 강습 회원분들과 쉽게 친해지는 곳이 수영장이다. 강사님을 바라보며 하는 운동이 아니라 서로 부대끼며 운동을 하는 사이여서 일까? 뭔가 다른 운동보다 더 빨리 친밀감이 형성되는 듯하다. 수영장에 들어서면 '안녕하세요.'라며 서로에게 인사를 나누는 건 기본이다. 만약 서로가 어색한 사이라도 가볍게 눈인사 정도는 나누곤 한다. 단, 우리 레인에서 사람들과의 인사는 자연스럽지만 바로 코앞에 붙어 있는 옆 레인의 상급반 강습 회원분들과는 아는 사람이 없다면 쉽사리 인사를 하지 않게 된다.

강사 및 강습생들 모두가 한 공간에 있지만 수영을 함께 한 역사(?)를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내가 아는 사람이냐 알지 못하는 사람이냐로 구분 짓게 된다.

옆반에 누가 있는지도 모르는 벽과 벽이 사이의 밀폐된 공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레인과 레인이 만든 구역이 투명한 유리창이 되어 오픈된 공간을 구분 짓고 있다. 그래서인지 아무리 수영장을 오래 다녔어도 줄 하나로 다른 동네 사람으로 인식돼버린 부대낌이 없었던 사람에게 인사하는 건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어느 정도 얼굴이 익고, 자주 눈마침이 되었던 분들과 얼떨결에 인사를 나누게 되면 그때부터는 가볍게 눈인사 정도는 할 수 있게 된다. 참고로 샤이(shy) 회원인 나에게는 그렇다.

이 와중에 붙임성 좋고, 호탕하신 회원분은 한 번의 눈 마주침으로도 쉽게 다가가 목소리만큼이나 큰 동작으로 인사를 나눈다. 특히 수영장에 들어가기 전에 샤워장에서 만나게 되면 인싸임을 증명한다. 입장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샤워기 물소리 보다 더 큰 데시벨로 인사를 나누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반대로 내 목소리는 샤워기 물소리에 묻혀서 잘 들리진 않지만 인사에 대한 답변이 제대로 전달되기를 바라며 미소를 함께 지어 보낸다.


나는 눈썰미가 없는 편이기도 하지만 특히나 수영장에서 눈에 익은 사람도 샤워하고 나오면 당최 누군지 알기가 어려웠다. 새벽반에서는 대부분 꾀죄죄하게 왔다가 수영장을 나설 때면 화장까지 싹 다 하고 출근준비를 완벽하게 마친 상태이기 때문에 내가 보던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이라고 착각하여 인사를 놓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한두 달 정도 지나고, 서로 인사하는 횟수가 많아지면서 비로소 수영장 안과 밖의 사람을 매치시킬 수 있게 되었다.

인사에 대해서 민감한 편인데도 수영장에서의 인사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하루라는 첫 페이지

어느 날 수영장에 들어설 때만 마주쳤던 회원분을 수영이 모두 끝난 뒤 샤워를 마치고 입구에서 머리를 말리는 도중에 마주친 적이 있었다. 회사 출근 때문에 남들보다 수영을 조금 일찍 끝내고 가시는 분이라 수영을 끝나고 마주칠 일이 없었는데 그날은 마침 샤워가 끝나고 나온 나와 모든 출근 준비를 끝내고 들어가는 그분과 타이밍이 맞았다. 눈이 마주치자 나는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안녕하세요~'라는 말과 함께 어색하게 고개로 인사를 드렸다. 그러자 그분은 "좋은 하루 보내요~"라며 밝고 건강한 목소리로 인사하고는 유유히 사라지셨다.


'좋은 하루 보내요~'


이 한 마디가 나에게 꽤나 신선하게 들려왔다.

보통은 '안녕하세요.' ' 조심히 가세요.' ' 들어가세요.'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이 정도의 인사말이 일반적인데 특별한 인사말이 아니었음에도 왜 미처 이렇게 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리고 생각해 보면 좋은 하루를 보내라는 인사는 아무 때나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하루가 아직 시작되기 전, 무언가 시작하러 나서는 사람에게 어울릴 법한 말로 온전히 새벽반에서만 할 수 있는 작은 특권이었다.

나에게 그분의 이 인사 한 마디가 오늘 정말 좋은 하루를 보낼 거만 같은 부적 같은 말이 되었다. 그날 이후로 나도 누군가에게 이 좋은 기운을 나눠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헤어질 때면 '좋은 하루 보내세요~'라고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이상하게도 이렇게 인사를 하고 나면 나 역시 좋은 기운이 도는 기분이 든다.

새벽에 수영을 나오는 것만으로도 스스로 대견하다고 느끼며 하루의 페이지를 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말 한마디가 주는 힘이 훨씬 크다는 걸 느꼈다.

우리는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로 누군가의 마음을 흐리게 할 수도 있고, 반대로 그 사람의 인생을 조금 더 괜찮은 방향으로 이끌어 줄 수도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수없이 많은 말을 주고받는다.

그래서 말에는 신중함이 필요한 이유다.


거창하고 특별한 말이 아니어도 하루를 가볍게 밝혀줄 수 있었던 '좋은 하루 보내요'라는 말이 나에게 이렇게 큰 울림을 전해줄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나도 누군가에게 내 말이 그 사람의 하루에 좋은 흔적을 남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가능하다면 조금 더 다정한 방향으로 흘러가기를 바라며 주변의 사람들에게 먼저 진심과 응원이 담긴 따뜻한 말을 전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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