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잠이 많은 내가 새벽형 인간이 되어버린 이유

새벽에 일어나는 나만의 방법

by lalageulp

새벽 5시, 새벽글방을 열게 된 첫날이다.

최근에 참여한 모임 안에서 소모임을 하나 기획하였는데 그게 바로 ‘새벽글방’이다.

말 그대로 새벽에 일어나 글 쓰는 방이다.

5:00-7:00 사이에 일어나 줌을 켜두고, 그 시간 안에 30분 이상 글을 써야 한다.

누군가는 참여하고 싶지만 일찍 일어나지 못해서 아쉽다며 응원의 메시지를 전해주었고, 누군가는 새벽에 일어나는 것을 대단하게 바라보기도 했다.

사실은 어젯밤부터 혹시라도 늦게 일어날까 봐 마음을 졸이고 또 졸였는데 말이다.


나는 아침잠이 정말 많다. ‘누우면 잔다'라는 축복받는 신체를 가지고 태어난 것과 동시에 알람 소리도 듣지 못하고 잠드는 깊은 수면이 가능하다.

그래서 첫날부터 신뢰를 잃을까 봐 신랑에게 몇 번이고 부탁을 했다.

(신랑은 나와 반대로 예민한 사람이라 알람소리에 바로 일어나는 게 가능하다)

그런데 긴장을 한 탓일까, 밤 10시에 누웠는데 12시부터 한 시간 단위로 눈이 떠졌다.

‘아, 아직이네..’, ’ 뭐야 1시밖에 안 됐잖아..’ ’이런, 큰일이네 일어날 수 있겠지..’

결국 선잠을 자고 4시 30분에 일어날 수 있었다.

그런데 고백하자면 몇 달을 새벽에 일어나기 위해 고군분투했는데 드디어 새벽기상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만나는 사람마다 나에게 건네는 인사말이 있다.

“요즘도 새벽에 일어나? 정말 대단하다."

그렇다, 사람들은 내가 매일 같이 새벽에 일어나 무언가를 하는 사람으로 알고 있다.

이렇게 된 이유는 SNS의 역할이 컸다.

새벽에 일어나는 것을 한 동안 꾸준히 업로드를 해왔기 때문인데 어느 날부터 업로드를 하지 않았는데도 사람들에게 나는 늘 새벽에 일어나는 사람으로 각인되어 있었다.


단지 이렇게라도 만연하게 공포하면 어떻게든 새벽에 일어나지 않을까 라는 생각 때문에 시작한 SNS였는데 말이다.




사실 모든 엄마들이 그렇듯이 하루 종일 아이들과 실랑이를 하다 보면 하루가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게 끝나버린다. 그게 너무 속상했다. 그래서 아이들을 재우고 난 뒤 나만의 시간을 가져야지 했는데 마음과 달리 그대로 잠드는 날이 너무 많았고, 가까스로 일어나도 피곤함에 꾸벅꾸벅 졸기 일쑤였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차라리 아이들이 잘 때 같이 자고, 아이들보다 더 일찍 일어나 운동이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새벽기상을 못하는 사람이라 단정 짓고 살았다.

고등학교 수험생일 때도 엄마에게 몇 번이고 깨워달라고 해도 못 일어났던 나였기 때문이다.

(안 깨워줬다며 짜증은 엄마에게 다 냈는데, 지금에서야 엄마의 마음을 알 거 같다)

하지만 이젠 내가 살기 위해서라도 새벽에 일어나야만 했다.

새벽에 할 수 있는 운동을 찾아보니 헬스, 요가, 수영 3가지가 있었는데 임신하면서 꾸준히 했던 수영을 다시 배워보기로 하며 새벽반을 등록하게 되었다.

새벽 6시부터 7시, 이 시간만큼은 오직 나를 위한 시간이었고, 꾸준히 하기 위해 SNS에 나의 흔적을 남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와 같이 수영을 하는 사람들을 팔로우하며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과의 신뢰를 잃지 않기 위해

본능적으로 자기 관리 차원에서 꾸준히 새벽 수영을 이어갈 수 있었다.

이것이 내가 새벽에 일어나게 된 첫 번째 환경이었다.


신기하게도 운동으로 어느 정도 체력이 쌓이고 나니 조금 더 일찍 일어날 수 있는 힘이 생겼고, 30분 더 일찍 일어나서 움직이자고 한 것이 새벽 4시가 되었다.

무엇을 해야겠다는 뚜렷한 목표는 없었다.

단지 '오로지 나만을 위한 시간'을 더 확보하고 싶은 열망이 컸다.

카메라를 설치하고 셀프 촬영을 시작하며 나의 두 번째 새벽 기상 흔적을 남겼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아는 모든 이들이 볼 수 있도록 설정하여 업로드했다. 꼼짝없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고자 한 것이다.

이번에도 효과가 있었다.

응원의 댓글을 보니 계속 잘할 수 있을 거 같았고, 뿌듯함도 생겼다.

새벽에 일어나 좀 더 내 시간을 가지니 스트레스도 덜하고, 아이들에게 내는 화도 줄어든 것만 같았다.

그러나 늘 같은 루틴을 유지할 수 없는 엄마라는 삶 안에는 늘 변수가 생기기 마련이었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수영을 잠시 그만두게 되자 서서히 새벽기상과는 멀어지고, 아이들과 함께 눈 뜨며 하루를 맞이하는 날이 늘어났다.

새벽에 일어나야 할 뚜렷한 목표가 사라지자 평상시 익숙했던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생활패턴으로 돌아가게 된 것이다. 다시 새벽기상을 하고 싶어 알람도 맞혀보고 여러 번의 시도를 해보았지만 예전처럼 쉽게 일어나 지지가 않았다. 그렇게 새해를 앞두고 또다시 환경을 세팅해 보기로 했다.


먼저 새벽에 함께 일어날 동지들을 모았다.

내가 먼저 새벽에 일어나 zoom을 열어 둘 테니 들어와서 함께 각자의 글을 쓰자는 제의를 한 것이다.

공표한 50명 중에서 7명이 함께 하기로 했고, 오늘이 그 첫날이었다.

나는 내가 스스로 만든 환경 속에서 이들과의 신뢰를 잃지 않기 위해 이번에야 말로 새벽에 일어날 수 있게 되었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태초에 새벽형 인간이 아니다.

나는 잠이 많은, 그것도 아주 많은 인간이다.

그럼에도 나는 새벽에 일어난다.

만약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새벽에 일어나는 습관을 만들고 싶다면 내가 만든 이 어쩔 수 없는 책임감 시스템으로 환경세팅을 해보기를 바란다.

분명 당신도 새벽형 인간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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