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의 3학년 겨울방학은 처음으로 맞이하는 돌봄 없는 방학이다.
그래도 나름 고학년 준비를 하기 위해 방학 동안 학원 특강을 신청했다. 다행히 아이와 하루 종일 무얼 하지 고민할 정도는 아니었는데 그럼에도 평소보다 붙어 있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많은 편이었다.
문제는 방학을 시작한 지 이제 3일밖에 안되었는데 3일 내내 우리는 아침마다 피 튀기는 싸움을 하는 중이다.
3일 연장 이 아이와 감정싸움을 하다 보니 아침마다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
그리고 이렇게 아이와 다투고 나면 현타가 온다.
이제 10살 된 아이와 30살이나 차이나는 어른이 서로 다툰다는 게 제 3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해되지 않거나 그 어른이 한심해 보일지 모른다.
나도 그랬다. 딸아이가 돌쟁이 아기였을 때 집으로 정수기 필터를 교체해 주는 기사님이 오셨다.
기사님은 지금이 제일 예쁠 때라며 저희 아내는 딸이랑 매일 싸운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얼마나 힘드셨으면 여기서 이런 말씀을 하실까 싶었다.
나는 아이가 몇 살이냐고 물었고, 기사님은 한숨을 내쉬며 초등학교 1학년이라고 했다.
순간 잘못 들었나 싶어? “초등학교 1학년이요?”라며 되물었다.
그때는 ‘아니 어떻게 사춘기 청소년도 아니고 초등학생이랑 엄마가 다투는 게 가당치나 한 일인가?’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상상이 안 되는 장면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내 모습을 보면 그때의 기사님의 한숨이 생각이 난다.
사실 늘 싸움의 발단은 별거 아닌 것에서 시작된다.
“엄마, 학원 오늘 안 갈래요.”
“아니야, 가고 싶지 않더라도 당일날 얘기를 하면 안 되는 거란다. 선생님도 수업 준비를 하셨을 테니 그렇게 가기 싫으면 당일날이 아니라 하루 전 날이라도 미리 말해주면 좋겠구나.”
“하지만 내가 가기 싫은 걸요. 가기 싫으면 안 가도 되는 거잖아요.”
“그게 아니란다. 미리 말하지 않으면 그것도 상대에 대한 배려가 아니란다.”
“그럼 가기 싫은데 억지로 가야 해요?”
“엄마, 왜 동생에게 돈이 든 카드(생일 선물로 준 도서 상품권)를 주는 거예요?”
“그건 보기에는 체크카드처럼 보이지만 책만 살 수 있는 도서 상품권이란다.”
“그렇지만 어른만 카드를 가질 수 있는 거라고 엄마가 그랬잖아요.”
“맞아, 하지만 저건 그런 카드랑 다른 거고, 동생이 원하는 책을 사라고 주는 그냥 생일 선물인 거야.”
“하지만 카드 안에 돈이 들어 있잖아요. 동생이 가지면 나도 갖고 싶잖아요”
어쩌면 좀 더 현명하게 풀 수 있었을 텐데, 아이의 의문과 질문에 성실히 답하고, 이해시켜 주기 위한 노력은 결국 분노로 변해버린다.
오늘은 정말 싸우고 싶지 않았는데.. 오늘은 정말 기분 좋은 아침을 맞이하고 싶었는데..
우리는 10년 차 연인처럼 각자의 입장에서 자존심을 세워가며 학원 시간이 다다를 때까지 으르렁 거리다 아이가 쌕쌕거리고 들어가면 그제야 우리의 싸움은 잠시 휴전이 된다.
딸아이가 학원에 들어가 있는 동안 나 역시 화가 난 감정이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다.
어쩜 한마디도 지지 않는 딸이 얄밉기도 하고, 내가 화가 날 수밖에 없다는 정당성을 확인받고 싶은 마음에 육아동지들에게 전화를 돌리며 ‘이런 일이 있었다니까’하며 하소연을 늘어놓는다.
결론은 매번 육아는 왜 이렇게 힘든 걸까, 서로를 다독이며 "학원 마칠 시간 다 됐어~"하며 통화를 마무리하게 된다. 완전히 풀리지 않은 마음을 남겨 둔 채로 수업을 받고 나온 아이를 만났다.
들어갈 때와 달리 미안함이 가득한 얼굴로 와서는 내 눈치를 살핀다.
“엄마 죄송해요.”라는 말을 먼저 건네는 아이를 보며 나는 약간의 우월감에 사로잡혔다가 이내 얼른 “아니야, 엄마도 미안해” 라며 우리는 다시금 화해를 했다.
부부싸움은 물 베기라고 하듯이 초딩딸과의 싸움도 물 베기처럼 끓어올랐던 감정은 다시금 평온해진다.
매섭고 날카롭게 바라보던 아이의 눈빛도 엄마와 사이가 다시 회복되자 언제 우리가 그랬냐는 듯 아무렇지 않게 다시 밝고 순수한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아이와의 감정싸움을 하며 얻는 스트레스는 꽤나 크지만 결국은 나는 내 나름의 목적(내 입장에서 아이를 설득시키는 것)을 달성하게 된다. 어린 딸아이와의 싸움에서 이겼다는 성취감에 빠져 '내가 이 정도 했으니 이 만큼 교육이 된 거야'라며 자만도 하게 된다.
그러나 아이 입장에서는 그렇게 매번 엄마랑 다투어도 결국 엄마를 향한 당연한 사랑과 엄마로부터 받고 싶은 무조건적인 사랑이 전부이기 때문에 결국엔 모든 것을 엄마에게 맞춰 주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니 어른답지 못한 나 자신이 창피해졌다.
내가 좀 더 성숙된 어른으로 다정하고 현명하게 해결했다면 싸우지 않아도 될 일이었을 텐데 말이다.
나는 현명한 부모가 되고 싶고, 다정하고 따뜻한 부모가 되고 싶다.
언제든 아이의 말에 귀 기울여 주고, 무엇이든 의지가 될 수 있는 기둥이 되어 주고 싶다.
그러나 나는 이제 막 뿌리내려 자리 잡은 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나무에 불과하다.
그저 아이가 한 뼘 자라는 만큼 나도 한 뼘씩 같이 자라고 있는 중이다.
농담으로 성숙된 사람이 되고 싶다면 아이를 낳아라고 하는 것처럼 육아서를 보면 아이를 키우면서 부모도 함께 성장한다는 말이 빠지지 않는다.
맞는 말이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고, 힘들고, 매번 해결해야 할 미션의 연속이지만 그 안에서 나를 돌아보게 만든다. 지하바닥까지 내려간 내 본성이 무엇인지 보여주었고, 내가 어디까지 나쁜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 얼마큼 내가 포용이 가능한 인간인지 확인시켜 주었다.
굳이 보고 싶지 않은 나의 못난 부분을 만났을 때 나는 나 스스로를 이해해 가고, 내가 가야 할 방향과 지침을 새로 만들어 나가며 단단해지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앞으로도 모든 것이 완벽할 순 없고, 우리는 매번 또 싸우게 되겠지만 오늘보다는 한 번 더 너를 이해하고, 두 번 더 너를 기다려주고, 세 번 더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엄마가 되리라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