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하고 강렬한 기억으로 남은 첫 광주 여행

by 한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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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는 처음이다. 오며 가며 거쳐가기도 한 도시들과 달리 광주는 내 차의 주행 동선상에도 없다. 병적인 길치인 내가 그렇게 확신하는 것은 지형지물에 특화된 남편 때문이다. 지방은 주로 남편과 자차 여행을 하는데 차 안 풍경은 동상이몽이다. 남편은 지나치는 도시나 새로 생긴 도로, 연결망 등을 운전 내내 말하고 나는 매너상 귀는 열어둔 채 눈은 창밖 풍경을 보느라 여념이 없다. 비록 내 안테나는 거꾸로 되어 있지만 기억력은 정상임을 감안해 볼 때 남편 입에서 광주가 언급된 적은 없으니 광주는 스쳐 지나가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5.18, 민주화, 전두환, 광주는 누구나 익히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로 유명세는 높지만 사실 그 이유로 찾게 되지는 않는, 내게는 신문이나 뉴스, 책에서 접한 머릿속의 도시였다

그림을 그리느라, 또는 남편과 여행 삼아 여기저기 도시와 지방을 가리지 않고 다녔는데 광주가 목록에 없었다? 생각하면 새삼스럽고 이상하고 미안하기도 하지만 그 생각조차 이제야 드니 광주의 입장(?)에서 보면 서운하기도 한심하기도 할 터, 그래서 친구의 목록을 빌려 내 옆구리를 찔렀는지 모른다. 여행의 배경은 모녀가 급 일본여행을 가는데 같이 갈려냐는 동생의 전화. 해외여행을 같이 간 전적도 있고 다음에 갈 때 같이 가자고 여러 번 당부해 놓은 터라 대답은 ‘당근이지’. 자유여행은 언감생심인 내게 조카 가이드는 놓칠 수 없는 기회다. 조카와 나의 일정을 맞추다 보니 3일 뒤 출발해야 하는 상황, 당장 여행지, 항공, 숙박을 잡느라 전화기에 종일 불이 났다. 하지만 이 호사의 유효기간은 저녁 식사 시간까지, 거기에 왜 끼냐며 얼굴을 찌푸리는 남편에 의해 만료의 낌새를 보이기 시작했다. 기분은 찜찜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어차피 갈 건데 흔쾌히 보내주지’ ‘이건 허락이 아니고 통보라고요’했는데 늦은 시간 책상에 앉으니 갑자기 마음속 기류가 흔들린다. 생각해 보니 뉴질랜드 여행에서 돌아온 지 겨우 일주일 남짓, 인터벌이 너무 짧아서인지 여행의 설레임보다 여행의 피로감이 먼저 다가온다. 게다가 일본은 자주 가서 식상한데 또 일본? 시계를 보니 12시가 코앞, 부랴부랴 동생에게 전화를 거니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사태의 급함을 파악하고 자는 조카를 깨워 다행히 최소의 위약금을 물고 예약을 취소했다. 형부 편을 들며 자기들은 괜찮다고 했지만 문제는 내가 괜찮지 않다는 것, 겉모양새는 남편의 반대 같지만 본질은 나에게 있었다. 자유여행에 꽂혀 종일 검색하고 예약하더니(정신이 나갔다가) 한밤중에 다시 취소하는(제정신이 돌아온), 자괴감은 이럴 때 쓰라고 나온 말이다. 해프닝이라고 웃어 넘기기엔 사태가 심각해서 노화현상으로 돌리니 그것 또한 위로가 되지 않고, 흔쾌히 승낙했으면 별생각 없이 갔을까? 남편 탓으로 돌려봐도 아니고. 해프닝, 노화, 남 탓, 3종 세트를 다 적용해 봐도 씁쓸하고 울적하기는 마찬가지.


며칠 후, 전말을 들은 친구는 잠시 뜸을 들이다 “그럼 너 마음도 꿀꿀한데 가까운 데라도 갔다 올까?” 내 맘을 콕 집는 폼새가 족집게도사가 따로 없다. “광주 어때?” 이 상황에 ‘여긴 들 어떠하리 저긴들 어떠하리’. 광주는 그렇게 수면 위로 떠올랐다.

친구도 나도 광주는 처음이라 살짝 들뜬 기분, 친구의 목록에 저장되어 있던 숙소사진을 보며 그 자리에서 전화 예약을 하고 기차표를 검색하고 일박이일 여행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풍경에 대한 기대보다 내 보따리를 잠시 내려놓는다는 홀가분함이 우리 여행의 컨셉인데다 별책부록 어반스케치도 끼워주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광주는 내가 태어나고 자란 부산과 늘 오버랩되곤 했다. 평상시 대화도 싸우는 것 같은 말투, 상황 불문하고 치고 들어오는 오지랖, 두세 번 대화로 금방 본 사람도 십년지기가 되는 이상한 관계법, 광주도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선입관이었다. 광주의 첫인상은 따뜻하고 친절했다. 왜 이곳에서 군대가 동원되고 무고한 시민들이 죽고 저항해야 했는지, 좁은 내 소견으로는 알 수 없는, 한강의 ‘소년이 온다’에서의 먹먹함과는 다른 활기찬 분위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걷고 쉬고 그림을 그렸다. 문제 발생은 밤, 누웠는데 잠이 오지 않는다. 원래 불면증도 있는 데다 잠자리도 바뀌었으니 평상시처럼 뒤척거리다 자겠지 했는데 설상가상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계속 화장실을 들락거리니 역시나 잠 못 자고 있었던 친구(우리는 각 방 선호)가 무슨 일인가 하고 나왔다. 친구가 준 약을 먹고 뜨끈뜨끈한 온돌에 배를 깔고 누웠지만 오라는 잠 대신 이상한 생각들이 드나들기 시작했다. 영화 ‘파묘’에서 터가 센 곳이 있다는데 광주도 그런 곳? 따스한 남쪽 햇살과 친절한 사람들에 취해 금남로, 민주화거리, 시민항쟁의 보루였던 전남도청을 패스한 죄? 광주가 지금 나를 나무라며 거부하는 것일까? 100년 전 선교사 사택이었던 이 숙소의 음침한 지하실에 억울한 원혼이라도?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로 꼬박 밤을 새웠다. 아침 식탁에서 친구에게 얘기하니 친구도 밤새 똑같은 생각을 했단다. 친구는 남편과 다시 와서 찬찬히 둘러보고 싶다고 했지만 나는 ‘글쎄요..’. 광주에서 날 밤 세운 기억과 소화불량으로 이튿날 종일 굶었던 기억이 트라우마로 남을 것 같다. 어쨌든 광주는 새로운 기록을 두 개나 세운 여행지로 등극(?) 되었다. 생전 처음 날 밤 세운 곳. 그리고 약을 사기 위해 약국을 찾아다닌 곳. (장기 외국 여행에서도 바리바리 싸간 응급약을 그대로 가져오는 나는 자타공인 건강체였으므로).

여행은 예측하지 못한 변수들의 극복담으로 기억된다. 행복했던 기억보다 더 강렬히 남아있는 불운의 기억도 시간이 지나면 그리움이 된다. 새옹지마 같은 우리네 인생과 닮아있는 여행, 그래서 모든 여행지는 잘 다녀온 곳이 된다. 광주도 그런 곳이다. 기록적인 고생이 에피소드가 된 지금, 슬며시 드는 생각, 다시 가볼까.. 너무 광주 탓만 해서 미안하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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