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반스케치 겨울 특수.
집, 건물, 거리, 산, 들, 강, 도심의 자연물, 인공물들은 그림의 모델감으로 딱이다. 눈만 돌리면 보이고, 움직이지 않으니 스케쳐스의 시작점이자 먹잇감(우리의 은어, 그려 먹자), 나 또한 빚진 바가 크다. 문제는 너무 오랫동안, 많이, 그렸다는 것, 물론 같은 장소에서 같은 소재를 여러 번 그릴 수도 있다. 전번 실수를 만회하고 싶을 때, (그 욕심으로 더 망치는 경우가 많지만), 모임에서 어쩔 수 없이 또 가게 되는 경우( 다른 컨셉 다른 버전으로 그리기도 한다). 그조차 식상해질 때, 뭐 삼빡한 게 없을까 새로운 소재를 찾아 기웃거린다. 누드크로키, 코스츔, 얼굴 그리기, 식물, 동물 그리기.. 굳이 분류하지 않아도 그림이라는 공통분모 안에서 대안은 수두룩하다. 보이는 모든 것이 그림이다. ‘세상은 넓고 그릴 것은 많다’. 이것은 내가 만든 어반스케치 9번째 강령이다. 물론 어반스케치 8개 공식 강령에는 없다.
그 삼빡한 대안을 찾으러 늘 상 다니던 카페나 대형쇼핑몰 대신 올해는 식물원, 자연사박물관을 기웃거렸다, 따뜻한 온실에서 크고 진귀한 식물들을 그리고 (열대관은 너무 더워서 한바탕 사우나), 박제된 동물들을 그리는 신선함에 취해 물고기를 그리고 싶었는데, 검색해 보니 대형 아쿠아리움은 비싼 입장료에 거리도 멀고, 무엇보다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되어있다. 그냥 어류도감 보고 그려야 하나 하는 참에 정모 장소로 아쿠아 카페가 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수족관 앞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물고기를 그릴 수 있다니, 하지만 들뜬 마음과는 달리 현실은 녹록지 않았으니.. 모델들이 너무 나댄다. 그나마 천천히 움직이는 덩치 큰 상어나 가오리들조차 초 단위로 움직이고 작은 물고기들은 날개가 달린 듯 마치 날아다니는(?) 것 같다, 단 몇 초도 우리를 위해 포즈를 잡아주지 않는다, 수족관에 손가락을 두드리며 룩엣미를 외치고, 집 나간(내 시야를 벗어난) 물고기를 하릴없이 기다리다 실소, 우리가 우리의 일을 하듯 그들은 그들의 일을 하고 있을 뿐이라는 당연한 사실.
예전에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책을 읽었다. 제목만으로는 분류학 성격을 띤 과학책 같지만 사실 한 생물학자의 전기에 가까운 책이었다. 어쨌든 어류는 잘못된 분류라는 학설에 그때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지금 내 생각은 아니다. ‘물고기는 존재한다’. 내 눈앞에서, 내 그림 속에서 뿜뿜 존재감을 내뿜는 이것이 물고기가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그리면서 잠시 물고기에게 감정이입이 되는 것은 덤, 눈에 보이는 세상을 그리면서 그 속의 보이지 않는 세상을 갸늠한다. (졸저 ‘그림을 쓰다’의 이유). 어반스케치는 계절을 타지 않는다. 성수기, 비수기 대신 겨울(여름) 특수가 있을 뿐. 겨울도 막바지, 요즘 내 마음은 방학은 끝나가는데 숙제가 밀려있는 아이들 마음 같다. 문제는 급한 마음에 따라가지 못하는 몸, 그것 또한 ‘어쩔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