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선의 미
‘직선은 인간의 선이고 곡선은 신의 선이다’ 가우디의 말처럼 나도 곡선을 사랑한다.
또 다른 한 명의 예술가로 자연을 닮은 곡선과 나선을 사랑한 훈데르트 바서가 있다.
바르셀로나를 여행하면 만나게 되는 비교적 많이 알려진 가우디와 달리 우리나라의
전시장에서 처음 만난 바서는 강렬하고 화려한 색과 이미지로 충격을 주었다.
그에게 나선은 달팽이처럼 회전을 거듭하는 회귀성이며, 삶과 죽음의 메타포였다.
그는 니체의 ‘영원회귀’와 일맥상통하는 철학에 예술적 상상력을 더하여, 나선도 그림과
건축의 선이 될 수 있다는 새로운 사실을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풀리지 않는 내 머릿속 실타래 같은 나선은 익숙지 않다.
내 인식은 아직 곡선의 이미지에 친근하다.
아스라이 멀어져 가는 시골 신작로, 산허리를 휘감아 도는 좁다란 둘레길,
낮게 흐르는 시냇물의 완만한 커브, 동그스름한 큰 원을 그리며 살짝 허리를 비트는 기차.
곡선은 산문보다 시, 직설보다 은유에 가까우며 빡빡한 생활 속에 한 템포 쉬어가는 여유를 준다.
한복, 기와, 처마,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한국의 미 또한 곡선의 미학이다.
수직강하 하는 폭포나 나뭇잎조차 직선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힘을 뺀 상태에서는 중력조차 부드러운 선을 그린다.
나는 그림에서 선과 각(기울기)을 중요시한다.
복선, 단선, 삐뚤어진 선, 휘어진 선, 겹쳐진 선, 두꺼운 선, 가는 선, 어떤 선을 사용하고, 어느 정도의 기울기로 그리는 가에 따라 때로는 과장되기도, 때로는 축소되기도 하며 그림은 다양하게 변주된다.
내가 원하는 선은 곡선과 삐뚤어진 선이며, 그 선들은 그림은 재해석하는 중요한 도구가 된다.
어차피 그림은 사진이나 설계도면이 아니니까.
건물에 들어서는 순간 가슴이 뛰었다.
가우디나 바서의 작품처럼 거창하지도 화려하지도 않지만
이토록 부드럽고 따스한 곡선의 공간이라니..
아직 물러갈 생각이 없는 겨울의 막바지,
스케치를 시작한 지 한 시간도 되지 않아 손, 발의 감각이 둔해진다.
일단 후퇴, 카페로 옮겨 작업을 마무리했다.
오늘 못다 한 이야기는 따뜻한 봄날에 다시 하는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