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동거

시래기와 빨래

by 한정선

울릉도.

바다를 마주한 아스팔트 도로변의 오래된 집, 담벼락,

빨랫줄을 빌려 시래기가 몸을 말린다.

해풍과 햇살의 샤워, 시원하고 따뜻한 가을볕의 호사를 누린다.


늦가을, 예전에는 집 담벼락이나 마당 빨랫줄에 시래기가 널려있는

풍경을 흔히 볼 수 있었다.

마당도 담벼락도 보기 힘든 요즈음, 우리 집 베란다 건조대에서

시래기와 빨래는 조금 어색한 동거를 한다.

햇빛과 바람은 기본 값, 널려야 하고 말라야 하는 공동의 운명을 아는지

빨래는 텃세 부리지 않고 한 켠 제 자리를 내어준다.

서걱서걱, 바스락바스락, 시래기들이 마른 몸을 부비며

한여름 품었던 햇살과 바람의 체취를 토해내어도,

그 시간과 소리를 공감하듯, 끄덕끄덕.. 빨래는 장단을 맞춘다.




빨래는 마르면서 새 삶을 시작하고

시래기는 마르면서 현생을 마감한다.

이 계절, 베란다 한 켠, 생과 사는 사이좋게 동거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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