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 표

-세상과 나의 끈

by 한정선

길치, 방향치, 게다가 안테나까지 거꾸로 되어있어 한때 별명이 뉴턴이기도 했던

나에게 이정표는 '키다리 아저씨'같이 고마운 존재다.

어쩌다 낯선 곳에 들어서면 두려움으로 온몸이 경직되는 나에게, 눈앞에 서있는 이정표는

확고한 신념으로 무장한 일종의 종교와도 같았다.

요즘은 네이버나 구글 지도로 세계 어느 곳이나 다니지만, 불가 10여 년 전만 해도

종이지도를 들고 길을 찾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다.

그래도 긴가 민가 할 때에는 길 가는 사람을 붙잡고 물어보는 것이 상책이지만 ,

때때로 잘못 가르쳐주는 사람 때문에 이중으로 고생을 하기도 했다.

추수가 끝난 들판, 허수아비 대신 서있는 푯말

추수를 마친 황량한 들판 허수아비 대신 푯말이 서있다

나가는 곳. 친절한 이정표를 따라가면 길을 잃지 않을까?

살다 보면 때때로 입구와 출구가 헷갈릴 때가 있다.

분명 화살표 방향으로 갔건만 어느 순간 길을 잃고 여기저기 헤매고

기웃거리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일 또한 얼마나 많았던가.

이럴 때 출구와 입구는 두 개가 아닌 하나의 단어가 된다. '출입구'라는.

돌아올 때는 출구가 입구가 되므로.


대부분 극명하게 다른 것은 근원이 같은 것이다.

사랑과 미움, 빛과 어둠, 자유와 고립, 고통과 쾌락..

두 낱말은 같이 있을 때 최대치의 시너지를 낸다.

하나가 없으면 나머지 하나도 설명되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한때 이정표에 꽂힌 적이 있었다.

이정표를 그리고, 특이한 이정표를 찾아 인터넷을 뒤적이고,

우리의 삶에도 이정표가 있어 가리키는 방향으로 가기만 하면

찾는 곳이 나온다면.. 그런 생각을 하면서.



스마트폰의 '길 찾기'로 길을 잃으래야 잃을 수 없는 요즈음,

소임을 다한 이정표는 인테리어로 변신 중이다.

상징과 장식을 겸비한 화살표는 언제 어디서나 눈길을 멈추게 하는 매력적인 장식이기 때문이다.

한 때 이정표를 짝사랑했던 나는 가끔씩 보이는 거리의 이정표가 우연히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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