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 길을 잃다

-책 속에서 길을 잃다

by 한정선

입구도 출구도 없는 거대한 지하 도서관,

나는 오늘 책 속에서 길을 잃었다.

13m 높이의 벽을 마치 벽돌처럼 돌아가며 채운 책들.

고층 건물을 올려다보듯 고개를 치켜올려야 보이는 서가.

이 많은 책들은 real일까? fake 일까?

근접할 수 없는 높이에서 위엄마저 풍기며 나를 내려다보는

저 책들이 내 책상 위에서 주전부리처럼 뒹굴던 그 책들?



너무 많은 것은 없는 것과 같다?

‘좋아요’의 남발, 팔로우 중독, overtourism,

사람들은 웬만한 수치로는 감동하지 않게 되었다.

더 높이, 더 멀리, 더 많이, 욕망은 끝없는 허기를 부른다.

기록 경신을 위해, 성냥개비 쌓기를 하듯,

아슬아슬 높아만 가는 수치.



내 손과 시선이 닿을 수 있는 서가,

책상, 식탁, 소파, 여기저기서 나를 유혹하는 책들.

햇살 좋은 툇마루, 따스한 아랫목, 시원한 나무 그늘,

친구를 기다리던 대문앞 계단,

이런 도서관은 이제 옛날 책에서나 나오는 유물이 되었을까.

도서관이 내게는 또 다른 기록 경신의 장처럼 여겨졌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