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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정선 Mar 06. 2021

생애 처음, 짧고 강렬했던 자유.

-자유의 대명사..대학.

나의 대학시절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자유'라고 할 수 있다.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4년 동안 배운 교양, 전공과목들은 어렴풋한 기억으로 남아있지만, 짧고 강렬하고, 짜릿하고 달콤했던, 생애 처음으로 맛 본 자유의 느낌은 뼛속 깊이 각인되어, 힘들고 지칠 때 가끔씩 떠올리는 위로가 되었다.

그때 나를 들뜨게 했던, 보이지 않고 잡을 수도 없는 그 기류는 무엇이었을까.

'자유'보다 '자유의 느낌'이 아니었을까. 발이 지면 위에 살짝 떠 있는 느낌, 솜털같이 가벼운 무언가가 가만히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느낌.


내게 있어  ‘자유’는 '대학에 가기 전''대학을 간 후'로 나뉜다.

처음으로 집을 떠나 혼자 살게 된 낯선 도시. 낯선 사람들. 사투리를 쓰는 내겐 말씨조차 낯선 곳, 혼자 해결해야 하는 의 식 주.

초, 중, 고 12년을 학교, 집, 도서관만 오가던 범생이었던 내게 하루아침에 바뀌어버린 세계는 숨어있던 자유의 욕망을 맘껏 펼칠 수 있는 터전이 되어 주었다.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해야 한다는 두려움과 자유에 따르는 책임조차 일종의 자유였다.

교과서나 소설책에서나 보던 자유, 확대해 봐도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 영화 '빠삐용' 정도에서 머물던 피상적 자유는, 내 피부에 와닿아 세포 속 깊숙이 자리 잡는 실체가 되었다.

그때 사진 속, 꾀죄죄하고 까무잡잡한 시골 유학생의 얼굴에 반짝거리던 것은 ‘자유의 빛’이 아니었을까.

그 얼굴에 쓰여있는 ‘나 범생’ 대신 ‘나 자유’는 자유가 주는 자신감이 아니었을까.

언젠가, 그 시절 얘기를 하던 내게 아들이 말했다. 자기의 4년 런던 유학은 엄마가 서울에서 느꼈을 자유의 10배는 된다고. (아들아, 그 당시에는 서울로 유학 간다고 하였단다). 모전자전일까. 아들도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자유’만 배우고 왔나 보다.

자유의 작용인지 부작용인지, 졸업을 두 달 앞두고, 캠프스 커플이었던 우리는 학내 ‘결혼 1호’가 되었고,

나의 짧고 강렬한 자유는 막을 내렸다.

.


그토록 가고 싶었던 모교, 천리만리 먼 곳도 아니건만 스케치 장소로 공지되고서야 가게 되었다.

그러나 소풍 가는 아이 마냥 잠을 설치고 찾아간 모교에서 나는 마치 집을 잘못 찾은 손님처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마침 미리 와서 그림을 그리고 있던 회원의 인사로 정신을 차리고, '여기 맞지요?' 재차 확인을 하고 주위를 다시 둘러보았다..

우람한 정문도, 정문을 따라 길게 이어지던 좌, 우의 정원도, 정원 입구에 세워져 있던 ‘생각하는 로댕’상도 사라지고, 그 자리에  넓은 광장과 그 광장을 삥 둘러 낯선 건물들이 들어서 있었다. 큐브의 퍼즐을 맞추듯 이리저리 돌려봐도 도무지 맞춰지지 않는 기억 속의 풍경들을 뒤로하고  교정을 돌아다니다 보니 드디어 낯익은 장소가 나타났다. 우뚝 솟은 시계탑이 상징인 문리대 건물과 그 아래 청룡 연못.

차고 넘치던 ‘자유에 따르는 책임’을 수행하느라 4년 내내 오르락내리락하던 문리대 건물은 숲이 더 우거진 것 외엔 옛 모습 그대로였고, 만남과 정담이 무르익던 연못의 청룡은 세월에 퇴색되어 흑룡이 되어있었다. 그 연못 옆에 작은 문이 있었고, 그 문을 나서면 몇 걸음 안 가 골목이 나오고 그 골목 끝에 내가 처음 자취를 했던  집이 있었다. 그 후로 친구와 함께 살았던 언덕 위 개나리 연립, 계단을 한참 올라가야 했던 주택.(그 동네는 주인이 방 1칸이나 2칸을 학생들에게 세를 주었다.) 모두 흔적조차 찾을 수 없지만, 슬리퍼를 끌고 하루에도 몇 번씩 그 문을 들락거리던 촌스러운 여학생은 내 눈앞을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잃어버린 인형을 다시 찾은 아이 마냥, 연못 벤치에 앉아 나 홀로 감개무량에 젖었다.


 반짝반짝 빛나던 그 시간들, 먹먹한 그리움으로 남아있는 그 공간, 그 모습들.

대학은 사랑과 상실, 우정과 낭만, 그리고 자유의 대명사로 남았다.

림은 언제나처럼 그 시절을 소환하고 나를 잠시 그 시간 속에 머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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