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시간이 두 시간 안 밖이라 당일치기도 가능하고, 유명 관광지에 비해 관광객이 적어 한산한 데다 특히 서해안 쪽의 도시들은 바다와 내륙을 같이 끼고 있어, 하루는 바다 쪽, 하루는 마을 쪽을 돌면 같은 도시지만 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그런 범주 내에서 뽑힌 이번 여행지는 서산. 요 며칠 서산을 생각하다 보니 옹알이처럼 ‘서산 갯마을’이라는 음절이 입속에서 맴돌았다. '굴을 따랴 전복을 따랴 서산 갯마을~' 생각나는 건 딱 여기까지.
긴가 민가, 인터넷을 찾아보니.. 있었다. 우리 엄마 세대의 가수 조미미의 노래였다. 한글도 제대로 모르던 유년기, 노래를 좋아하는 엄마의 영향으로 라디오에서 나오던 온갖 노래를 따라 불렀는데 그중의 하나가 수십 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기억 속에서 튀어나온 것이다. 서산은 예나 지금이나 바닷가 마을이지만 그때는 아무 생갹없이 흥얼거리다가 이번 여행을 계기로 서산은 바닷가 도시임을 알았다.
백문이 불여일견, 그래서 여행은 산교육이다.
그림을 통과한 여행은, 까마득히 잊고 지내던 기억의 조각을 하나씩 끄집어내어 생각의 퍼즐을 맞춘다.
역시 성급했을까. 그곳에는 아직 떠나지 못한 겨울이 서성이고 있었다. 이미 봄은 기세 등등한 점령군처럼 들판을 가로질러와 싹을 피우고 꽃대를 밀어 올리며 영토를 넓혀가고 있는데, 겨울은 무슨 미련이 남았는지 쉽게 자리를 내어주지 않고 있었다. 보내고 맞는 계절의 길목, 사람들은 따스한 햇살과 차가운 바람사이에서 옷깃을 여미기도, 풀기도 하며 혼란스러워 보였다.
해미읍성.. 작년 가을에 이어 두 번째 방문. 제각각 모양이 다른 돌로 쌓은 기다란 성벽, 그 성벽 위로 휘날리던 색색의 깃발들이 인상적이다. 평화로운 마을 속에 숨어있던 천주교 박해의 유적들로 예쁜 이름이 잠시 슬프게 느껴졌던 곳이다.
개심사.. 동네 뒷산을 오르듯, 꾸밈없이 소박한 언덕길, 나지막한 돌계단을 으르면 이런 곳에 과연 절이 있을까? 의구심이 들지만 이정표를 믿고 따라가다 보면 짜잔~ 숨겨진 보물같이 산아래 포옥 묻힌 절이 보인다.
세월에 바래어 더 독특해진 색감으로 우뚝 서 있는 범종각, 부석사 무량수전처럼 배흘림기둥으로 지어진 신검당, '상왕산 개심사'라는 현판을 단 이국적인 색의 기역자 한옥, 공룡의 화석같이 거대한 서까래로 바닥보다 천장으로 더 눈길이 가는 부엌,
돌담, 돌계단, 돌 화단, 개심사는 크고 작고, 둥글고 네모나고, 하나하나가 제각각의 모양을 가지고 있는 자연석으로 지어진 절이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단아하고 조그마한 절이 마음을 차분하게 한다.
유기방 가옥.. 후기에 제일 많이 올라왔던 말 ‘입장료 오천 원이 아깝지 않아요’
입장료는 아마 수선화 관람료인 듯. 아직 수선화가 반밖에 피지 않았으니 절반만 받아야 하는 건 아닌지 우리끼리 우스갯소리를 하며, 만개한 꽃 대신 한적함을 즐겼다. 어차피 꽃이 절정일 때는 꽃보다 많은 사람들의 물결로 노란색은 묻혀 버릴 테니까. 파아란 하늘 아래 푸르른 소나무, 그 아래 각기 다른 용도의 기와집들, 수선화가 피어있는 마당, 이런 곳을 보고 싶었는데, 주 객이 전도되어 가옥은 수선화에 묻혀 뒷전으로 밀려나고 앞마당, 뒷마당, 언덕 끝없이 심어지는 수선화에 동네는 수선화 왕국이 되었다.
너무 많은 것은 없는 것과 같다, 더 이상 귀하지 않다. 입장료도 주차비도 없는 개심사, 해미읍성의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겹쳐지는 것은..개인의 취향이라 할 수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