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공항에서부터 시작된다. 방문지, 숙소, 티켓팅, 짐 꾸리기, 그간의 수고로움은 캐리어를 끌고 공항에 들어서는 순간 설렘으로 변한다. 보이지 않는 풍선이 떠다니는 듯 출국장의 공기는 축제장처럼 들떠있다.”
불과 3년 전 내 인스타에 올라와있는 글. 그때는 너무나 당연해서 식상하기까지 했던 그 글이 지금 보니 헤어진 옛 애인을 만난 듯 이상 야릇한 설레임마저 든다. ‘그때는 되었는데 지금은 안 되는 것’에 대한 아쉬움,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 이미 레트로가 되어버린 듯한 풍경을 보면서 당연히 옆에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과 의도치 않은 결별처럼, 생소하고 낯선 감정들이 예전 사진 속에 뒤섞인다.
당연하게도 이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당연한 것이 아니라 감사한 것, 그래서 '당연'의 반대말은 '감사'다
공항은 우리가 흔히 아는 것처럼 떠나는 곳만은 아니다.
다시 돌아오는 곳이기도 하고, 경유지가 되기도 하며, 드물지만 그 자체가 목적지가 되어 머무는 곳이 되기도 한다. 실제로 알랭 드 보통은 ‘공항에서 일주일을’이라는 책을 쓰기 위해 공항을 목적지로 삼았다.
거대한 공장처럼 밤낮없이 돌아가는 공항 시스템, 그 속에서 상주하는 사람들과 잠시 머무는 사람들의 애환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로 어우러져, 책 속에서 공항은 다른 무엇과도 차별화된 특별한 공간임을 보여준다.
또한 공항 하면 생각나는 영화 ‘터미널’은 우리에게 공항을 더 가까이 느낄 수 있게 한다. 어쩔 수 없이 9개월을 공항에서 머물게 된 주인공의 동선을 따라가다 만나는 공항은, 책과는 또 다른 공항의 생리와 속살을 보여주며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공항이 아닌 마치 낯선 세계를 탐험하는 느낌을 준다. 영화는 어느 곳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사람들 간의 관계와 감정이 주가 되지만 공항이라는 특수한 장소 설정으로 새로움을 더한다.
결국 공항은 비행기도 캐리어도 아닌, 흩어지고 모이는 사람들, 그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곳이다.
출발과 도착, 만남과 이별은 사람들의 일이므로.
어반 스케치를 하면서 공항은 내게 조금 특별한 곳이 되었다.
일탈, 자유의 느낌과 함께, 공항에서만 그릴 수 있는 비행기, 캐리어, 카트 등의 매력적인 소재들 때문이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해외여행을 갈 수는 없는 노릇, 마침 공항에서 스케치 정기 모임에 있었고, 여행을 하지 않아도 공항에 갈 수 있고 비행기를 그릴 수 있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내 머릿속 생각과, 현실의 괴리는 언제 어디서나 존재한다는 경험적 사실, 비행기가 빼곡히 차 있으리라 생각한 공항 주차장(?)에 비행기는 몇 대뿐이었고, 카페, 식당, 벤치, 정자, 쉼터를 갖춘 공항 4층은 마치 거대한 실내 공원 같았다.
어르신들은 더위를 피해, 젊은 부모들은 아이들의 현장 학습장으로 4층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출발지, 도착지, 경유지였던 공항은 공캉스라는 이름으로 어느새 여행의 목적지가 되었다.
여행을 하기 위해 공항에 올 때는 언제나 그림도구를 챙긴다. 그 이유로 시간을 나름 넉넉히 두고 오지만 체크인, 통관, 검색에 면세점까지 한 바퀴 돌다 보면 그림은커녕 탑승시간도 빠듯하다. 결국 펴보지도 못하고 들고만 다니다 마는 경우가 대부분. 공항의 시간은 왜 그리 빨리 가는지.(나만 그런가?)
비행기는 탈 수 없지만, 마치 여행을 가는 척 캐리어를 끌고(이동 거리가 긴 공항 철도는 캐리어가 제격이다.) 공항으로 여행을 가야겠다. 그리다 보면 어느새 움직이는 비행기가 야속했던 예전과 달리 요즘은 주기장을 채우고 있는 비행기들을 맘껏 그릴 수 있을 것 같은데, 마냥 좋을 것 같지는 않다.
어쨌든 지금은 공항 어반의 틈새시장, 하지만 캐리어를 끄는 사람들도, 그들의 이야기도 없는 공항은 별이 없는 밤하늘처럼 쓸쓸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