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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정선 Apr 25. 2022

섬 여행, 숙소의 새 판을 짜다.

남해 다랭이 마을과 민박.

    

남해 다랭이마을.

평상이 놓여있는 민박집, 옥상에 꽂혀 지내던 요즘,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마당은 내겐 그냥 옥상이었다. 카페의 루프탑이 아닌 제대로의 옥상, 숙소는 자연히 옥탑방이 되었다.

옥상엔 역시 평상, 넓은 평상에 마음껏 그림도구를 펼치고 바다가 심심할까 뜸뜸히 떠있는 배도 그리고, 베이스음의 뱃고동 소리에 화들짝 놀라기도 하며 눈호강에 귀호강까지.

이런 수지맞는 장사가 어디 있으랴~ 싶다.

옥상에서 내려다보이는 이 마을의 예쁜 풍광은 온전히 바다에 빚지고 있다.

바다를 품고 있는 마을, 아니 마을을 품고 있는 바다.(여기서 주어와 목적어는 호환 가능.)

언덕 위, 산속, 들판, 마을은 어디에나 있지만 그림에서 바다가 있는 마을은  절반승 이미 따놓은 당상이다.

쉽게 말해서 못 먹어도 고! 무조건 그려야 한다. 어쩌다(자주) 그림이 어수선해(?) 지더라도 바다의 파랑이 들어가면 깔끔하게 정리되는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나기도 하니까.

이럴 때 바다는 주연의 허물까지 잡아주는 맛깔스러운 조연 역으로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감이다.



가천 다랭이 마을에는 관광지 어디에나 볼 수 있는 벽화 대신,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다랭이논이 있다.

산기슭을 따라 바다로 끝없이 이어지는 계단식 논, 선은 휘어지고 꺾어지며 제멋대로의 춤을 추다 어느 지점에서 만나고 다시 헤어지며, 바다의 교황곡에 맞춰 멋들어진 곡선의 연주를 .

곡선과 나선의 예술가 훈데르트 바서도 울고 갈 이 풍경이, 지독한 가난과 궁핍이 만들어낸 작품이라는 아이러니. 그래서 극과 극은 서로 통한다고 했던가.

그 시절 생계를 책임지던 다랭이논은 이제 경작을 멈추고 존재 그 자체로 마을의 효자상품이 되었다. 기계를 쓸수없는 지형으로, 힘든 벼농사 대신 유채와 보리, 마늘로  초록과 노랑의 파노라마를 만들며 그 시절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촌부들은 꼬부랑 할아버지가 되고 마을은 민박촌이 되었지만, 산과 바다와 가난이 만들어낸 작품은 이제 더 이상 늙지 않는 아름다움, 문화재가 되었다.

낮은 곳에서 시작된 봄이 꾸불꾸불한 논두렁, 밭두렁을 타고 올라오며  영토를 넓혀가고 다.



숙소의 새로운 패러다임, 민박.

호텔을 선호하는 내게, 민박은 불편하지 않을까 하는 기우로 늘 뒷전으로 밀리곤 했다.

민박은 처음이라서..라는 핑계를 대다, 생각해보니 오래전이라 잊어버리고 있었을 뿐, 우도, 청산도, 울릉도, 섬 여행의 숙소는 모두 민박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조그만 섬에 호텔이나 리조트가 없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그때와 달라진 것은 민박집에 예전에 없던 체크인, 체크아웃이 생긴 것이다.

주인이 일 나간 빈 집, 낮은 창문턱에 앉아 그림을 그리다 심심하면 마을을 돌아다녔던 청산도 민박집, 관광객이 떠난 저녁나절, 창문으로 새어 나오는 불빛을 따라 마을을 산책하면서, 잠시 다른 세상에 와 있는 듯 묘한 기분을 느꼈던 우도의 민박, 이렇듯 민박은 집에서 머물면서 잠시나마 현지인의 기분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숙소였다. 시간이 흐름에 어쩔 수 없이 여느 숙소와 비슷해졌지만 그럼에도 섬 여행의 필수는 민박이다.

마당과 옥상이 있는 집, 마을이 끝나는 곳에 펼쳐지는 바다를 볼 수 있는 집이라면 ‘이 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체크아웃을 하고 아쉬움에 마을을 다시 돌다 보니 앗! 마당 빨랫줄에  이불이 널리고 있었다. 마치 내 여행이 봄볕과 해풍에 보송보송하게 말려지는 기분.

이번 여행으로 숙소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숙소의 새 판은 민박으로 짜여질것이다.

         


낮은 곳에서 먼저 시작된 봄은 이미 절정을 지나고, 노랑, 하양, 분홍, 갖가지 색들로 물들었던 들판은 연두와 초록으로 옷을 갈아입고 있다. 봄꽃이 진자리를 잎들이 채우고 있다.

차창밖으로 끝없이 겹쳐지고 펼쳐지는 산들은 딱 지금 이맘때의 모습을 보여준다.

대지의 간질거림에 웃음을 참고 있는 개구쟁이 같은 나무들이 울룩불룩 솟아오르고,

온 산은 동글동글 웃음꽃이 피었다.

시선을 뗄 수 없는, 차창 밖으로 휙휙 지나치는 짧은 봄이 아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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