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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정선 Nov 10. 2022

여백의 도시 경주에서 어반 스케쳐들의 축제가 열렸다.

-경주 페스타2022

   

코로나에도 불구하고 2019년부터 4년째 열리고 있는 경주 페스타는 수백 명의 스케쳐들이 한 자리에 모여 그림을 그리고 공유하며, 새 이웃을 만들고, 좀처럼 드문 기회인 셀럽 스케쳐들의 강의도 들을 수 있어 매해 가을 스케쳐들의 마음을 들뜨게 하는 어반 스케쳐들의 축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분위기를 느끼고 즐기기 위해 일찌감치 예약을 하고, 수학여행을 앞둔 아이들처럼 그날을 기다리는데 나는 같은 이유로 엄두가 나지 않아 늘 망설이기만 했다. 아무리 넓고 느슨한 관계의 지향이 요즘 추세라 할지라도 몇백 명 사람들의 모임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비현실적이어서 스포트라이트는 커녕 모두는 한 점의 점으로 인식될것이다. 

그 상황에서는 그나마 알던 사람들도 만나기 힘들고, 눈인사만 나누어도 하루해가 모자랄 것이며, 들뜬 마음과 산만한 분위기에 그림은 자연히 뒷전이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까지.. 차라리 몇 명이 함께하는 스케치 여행이 오붓하고 효율적이라 생각했다. 물론, ‘그림’과 ‘관계(인간관계)’를 놓고 볼 때 ‘관계’를 우선하는지, ‘그림’을 우선하는지에 따른 개인적 성향에 따라 ‘모임’에 대한 호불호는 달라질 수 있다. 거기에 경험치는 또 다른 변수, 오랫동안 그림을 그리고 그림 여행을 다닌 내 경우에는 관계보다 그림에 비중을 둔다. 그 이면에는 너무 많은 것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나의 관계론도 깔려있다.

경주는 가고 싶은데 이런저런 핑계로 경주 경주 노래만 부르다 올해도 숙소 예약 시기를 놓치고 포기하고 있던 중, 일행의 취소로 한자리가 빈다는 지인의 제안을 하늘의 계시라도 되는 양 얼른 받아들였다.  

작전명, ‘다 차린 밥상에 숟가락 얹기’  



내 생각은 맞기도 하고 기우이기도 했다.

일단 내 생각과 달리 사람들은 질적, 양적 모두 최대치의 그림을 그렸다.

도서관에서 모든 사람들이 책을 보듯이 경주에서는 모두들 고개를 숙이고 그림을 그렸다. 슬슬 돌아다니던 사람들도 분위기에 전염된 듯 그림 도구를 펼쳤다. 그림을 위해 만사 제쳐두고 온 사람들답게 여기서는 ‘그림과 관광’이라는 두 마리 토끼 잡기는 통하지 않았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모인다고 서로 그림을 공유하는 것도, 새로운 관계를 맺는 것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다니며 자신들의 연대를 더욱 공고히 했다,

그럼에도 백미는 역시 사람 풍경, 드 넓은 들판에 흩어져있는 스케쳐들은 나무가 되기도 꽃이 되기도 하며 자연에 스며들어 또 다른 자연이 되는 매직을 만들고 있었다.

의도치 않는 이 풍경은 경주 페스타의 기억으로 오랫동안 남을 것이다.

     



경주는 40년 만의 방문이다.

부산이 고향인 나는 초등학교 수학여행을 시작으로 여고 졸업 후 처음으로 사복을 입고 갔던 친구들과의 여행, 그리고 신혼여행까지 3번의 경주 여행을 했다. 그 후 대학을 위해 서울로  면서  경주는 서서히 잊혀 갔다.

40년 만의 경주 방문이라고 쓰다 보니 1990년대 ‘잃어버린 30년’이라는 이산가족 찾기 프로그램이 생각났다.

그 당시 30년이라는 시간은 어린 내게 가늠 하기조차 힘든 긴 시간이었는데 40년이라는 시간이 그리 길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시간의 주관성과 객관성 때문일 것이다. 상상이 안 되는 타인의 시간에 비해 속속들이 내용을 아는 나의 시간은 40년 전을 엊그제처럼  돌려놓기도 한다.   사람들이 인생을 일장춘몽이 하는 것도 같은 이유가 아닐까.

이런저런 이유를 둘러대어도 4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우리나라 웬만한 도시는 한번, 때로는 두어 번씩 다녀오면서 유독 경주가 빠진 것은 왜일까. 아마도 너무 친근해서 소흘 해지는 고향같이 경주도 언제나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는 곳이라고 만만히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다 매스컴에서 새로워진 경주가 소개될 때면 당장이라도 달려갈 듯 일정을 짜다가도 어영부영 가고 싶지 않다는 욕심으로 경주는 늘 미뤄지곤 했는데 인생관조차 ‘미루지 말자’로 바뀐 지 오래이다 보니 더 이상 미뤄야 할 핑계를 찾을 수 없게 되었다.  

      


경주는 여백의 도시다. 여백은 그림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도시도 여백을 필요로 한다.  여백은 채우고 남은 공간이 아니라 또 다른 형태의 채움이다.

여백은 통로가 되기도, 숨 쉬고 쉬어가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도시의 여백은 고스란히 사람의 여백이 된다.

여기저기 무리 지어 흩어진 사람들은 경주의 여백에 스며들어 또 다른 여백을 만들고 있었다.

천년의 도시가 품은 천년의 여백, 그 여백 사이를 무단 횡단하는 햇빛과 바람은 숨겨진 이야기를 귀띔이라도 해 줄 듯  톡 톡 건드리며 사람들을 유혹한다.

눈앞을 가로막는 벽이 없는 경주는 그 흔한 스카이라인조차 보기 힘들다.



수학여행지가 해외를 비롯해 다양해진 요즘도 경주로 수학여행을 갈까? 그러고 보니 내 초등학교 수학여행에 유적지의 기억은 남아있지 않다 처음으로 입어본 분홍 나일론 잠옷을 자랑하고 싶어 잠옷 바람으로 한옥 여관 마당에서 놀았던 기억과 피부에 닿는 나일론의 부드러운 촉감만이 지금도 생생하다.

성인이 되어 떠나는 수학여행을 꿈꾸어 본다. 불국사, 첨성대, 황룡사지.. 그때는 듣지 못했던  천년 도시의 이야기를 이제 들을 수 있을까

잠옷을 사 줄 엄마도, 성인식을 치르던 친구도 없지만 그 장소와 시간을 소환해주는 ‘그림’ 친구를 데리고 여백이 품고 있는 이야기를 들으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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