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정선 Dec 04. 2022

출책신고 합니다!

   --브런치에 빚진 출간.

‘출판’이라는 한 계절을 보냈다.

우주인이 달에 첫발을 내딛듯 생소하고 두렵고 외롭기까지 한 출판이라는 땅.

그럼에도 물러설 수 없었던 것은 새로운 여행지의 호기심과 설렘 때문이었다.

그러나 너무나 방대한 여행지…. 탐색의 날들이 길어지면서 역대급 기상 이변과

감염병이라는 이번 여름의 서사마저 나는 침묵해야 했다.

그런 이중 삼중 잠금장치가 어쩔 수 없이 책상에 앉아야 하는 내게 적당한 구실이

되어준다는, 지극히 이기적인 생각이 당연시될 만큼 출판은 내게 절실한 문제였다.

산책하듯 시작한 출간은 어느새 전력 질주를 남겨놓은 마라톤 풀코스가 되어있었다.



10여 년 동안 차곡차곡 쌓인 글과 그림들은 이미 정리가 필요한 시점을 넘어서고 있었다.

옷장을 열면 쏟아지는 옷들처럼(『쏟아진 옷장을 정리하며』, 게오르크 피퍼),

달리기 출발선에 서있는 주자처럼, 글과 그림들은 앞다투어 튀어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요이 땅!’ 드디어 신호가 떨어지고 이제 출발선을 뒤로한다.

넘어지고 깨어지더라도 일단 나가고 볼 일, 글도 그림도 유효기간이 있다.


정리의 정석은 버리는 것이지만 차마 버릴 수 없는, 내 몸과 마음을 통과한 글과 그림들은

책이라는 타임캡슐에 봉인되어 이제 마음속 깊은 곳에서 휴지기를 갖는다.

시간이 흐르고 가끔 사는 게 시들해질 때, 또는 불현듯 지금의 열정이 그리워질 때

타임캡슐을 열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여고 시절의 일기장을 들추어보고 슬그머니

웃음 짓듯이, 과거가 되어버린 지금의 내 모습이 캡슐 속에서 부패도 발효도 되지 않는

날것 그대로의 부끄러움으로 남아있을지도 모를 일, ‘그땐 그랬지’ 슬쩍 얼버무릴

뻔뻔함도 한 조각 넣어둔다.

내가 나에게 하는 이야기는 결국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였다.

이런 소소한 이야기로 누군가와 닿을 수 있을까….

‘염려’는 ‘바람’으로 바꾸어 쓰고 가장 사적인 것이 가장 공적인 것이라고 억지를 부려본다.

이제 구구절절 넋두리를 접고, 출간을 준비할 때 천군만마의 힘이 되어준 현자의 글로

내 마음을 대신한다.


완성을 미루고만 있는 우리의 작품이 형편없으리라는 것을 알고있다.

하지만 아예 시작하지도 않는 작품은 그보다 더 형편없다.

무엇인가를 만든다면 적어도 남아는 있게 된다. 초라하지만 그래도 존재한다.

- 『불안의 책』, 페르난두 페소아

                                     

                                      에필로그 중에서..


3년 동안의 브런치 글쓰기가 책이 되었습니다.

그 소감을 에필로그로 대신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여백의 도시 경주에서 어반 스케쳐들의 축제가 열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