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정선 Dec 22. 2022

기대와 염려 속에서 ‘출간’이라는 늦둥이가 태어났다.

-출간이 내게 가르쳐준 것.-

     

변명 같지만, 우리 때는 그랬다.

결혼은 필수, 연애의 완성은 결혼, 결혼하면 아이를 낳아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 속에서 지지고 볶으며 살아도 ‘다 그런 거지 다 그런 거야’ 유행가 가사를 노동요 삼아 읇조리며. 하루하루 쌓인 시간이 태산이 될 수 있다는, 지금은 망치로 머리를 때리는 듯 맹렬하게 다가오는 진실을 알아차리기에는 몸도, 마음도,  연륜도, 어느 것 하나 받쳐주지 않았다.

그러나 그 상황 속에서도 자신을 챙긴 사람들도 있었으니, ‘뭐 때문’은 변명이고 핑계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부연하자면 인정받고 싶은 핑계.. 핑계는 핑계를 낳는다.

어쨌든 두 번의 출산 후 그 단어조차 희미해질 무렵, 느닷없이 출간의 꿈을 잉태하게 되었고 각고의 시간 끝에 책이 나왔다. 출생 신고 대신 출책신고까지 하고 나니, 출간은 영락없는 출산이다. 아무런 준비도 없었던 두 번의 출산과 달리 오랫동안 계획하고 준비한 출간이라 나름 기대가 컸지만 이번에도 비켜가지 않는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사’..

태교를 아무리 잘해도 유전자와 주변 환경은 극복할 수 없는 것일까.

     


하지만 태어나서 처음으로 받아본 수많은 축하인사는 ‘저자만 아는’ 쓰린 속을 풀어주는 명약이었다.

내가 좋아서 한 일이 이렇게까지 축하를 받을 일인지.. 그 마음들은 나를 감동시키고, 나를 다시 돌아보게 했다. 남의 잔치에서 뒷짐 지고 구경만 하던 나, 축하는 커녕 인사말조차 귀찮아하던 나, 마음은 표현해야 알 수 있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말조차 인터넷상의 가상 클라우드라  착각했던 나. 아이러니하게도 출간은 기고만장하던 근자감을 여지없이 깨부수고 나를 한없이 겸손하게 만들었다. 관심과 칭찬의 완장은 나를 조금 ‘의젓하고 책임감 있는 어른’이 되게 했으며, 나의  잘난 척은 더이상 통하지 않게 되었다. 지난여름(영화, '나는 네가 지난여름에 한일을 알고 있다'.)도 아닌, 나의 십여 년을 알고있는 책으로 금방 들통 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책 속의 나’와 ‘책 밖의 나’는, 내 책 속의 글과 그림처럼 시소 놀이를 하며 서로의 무게를 의식하고 감내하는 채찍과 당근이 되어 줄 것이다.

          

늦둥이 덕분에 집순이 엄마의 나들이가 잦아졌다. 아직 걸음마도 못 땐 늦둥이는 세상이 궁금한지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나를 밖으로 이끈다.

집 밖이 불안한 엄마는 안절부절, 하지만 낳는 것만으로 엄마가 되는 것은 아니다.

양육의 궁극점은 자립이지만 아직은 보살핌이 필요할 때, 원활한 세상과의 교신을 위해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며 얼굴을 보여줘야 한다. 내성적인 엄마는 조금 용감하고 뻔뻔해지기로  한다.

출간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의 예고편이었음을.. 출간은 나에게 생각지도 못한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 비록 이 가르침에 유효기간이 있을지라도 지금은 행복한 동거 중, 내일일은 매번 패러디되는, ‘내일의 태양이 떠오른다’로 잠시 유보할 수밖에.    

작가의 이전글 출책신고 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