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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정선 Dec 28. 2022

때늦은 크리스마스 후기.  크리스마스는 계속되니까..


12월, 이맘때 세상은 가장 찬란해진다. 세모와 맞물린 성탄절은 축복과 아쉬움으로 빛의 물결을 만들고 휘황찬란한 빛 속을 유영하는 사람들 또한 크리스마스 장식이 된다.

서양에서 처음 시작된 크리스마스는 지금은 국적 불구, 세계의 명절이 되었지만 내게 크리스마스는 휴일이라는 것 외에 여느 날이나 다름없는 하루일 뿐, 별다른 감흥이 없지만 그냥 지나치기에는 서운하여 괜스레 주변을 서성거리게 된다. 왜 그런지 누군가 물어보면(그럴 리 없겠지만) 기독교인도(불교 신자도) 아니고, 제 주변 사람 생일도 못 챙기는 내가 예수님 생일을 챙길 만큼 오지랖이 넓지 않아서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엄마 크리스마스는 종교에 상관없이 그냥 명절 개념이에요” 10여 년 전 영국에서 공부하던 아들이 크리스마스시즌이면 크리스마스와 아무 상관없는 집으로 오며 했던 말이다. 학교도, 거리도, 세어 하우스 친구들마저, 모든 내, 외국인이 제 집 제나라로 돌아간 텅 빈 도시가 텅 비어버린다는 이유였다. 이런 유감 아닌 유감 표명에 혹자는 “그냥 즐기면 되지 웬 사족?” 할 수도 있지만 사연이 없는 축제를 즐길 연배는 지난 지 오래. 그러나 남의 잔치를 곁눈질하는 쏠쏠한 재미까지 놓칠수는  없다.

나무 현실적이어서일까, 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신(절대자)이라는 거창함이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차라리 아이들의 입학, 졸업식 날이 더 각별하고 우리나라의 24 절기가 더 피부에 와닿는다. 매일매일 일어나는 크고 작은 문제들은 신이 아니라 내가 해결해야 할 일, 나에게는 따로 교회나 절에 가지 않아도 집이 곧 도량이고 수행처다.

하지만 동서양을 떠나 살신성인 예수님의 메시지를 탄생일에 되새기는 것은 내게도 유의미한 일, 분위기에 휩쓸려 감사와 축복의 인사를 나누고 싶어지는 것은 가히 크리스마스의 기적(?)이 아닐까. 구두쇠 스크루지 영감이 회개하는 날도, ‘크리스마스 선물‘같은 아름다운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것처럼.

    

지금은 냉담 중이지만 생각해보니 나에게도 다른 사람들과 비슷한, 크리스마스의 기억이 있었다. 나의 맨 처음 크리스마스의 기억은 동심과 연결된다.

예나 지금이나 아이들에게 호감을 받는 가장 좋은 방법은 먹을 것이나 용돈을 주는 것,

간식거리가 귀했던 예전에 일 년에 한 번 교회에서 주는 과자와 빵, 초콜릿등을 받는(게다가 연극관람까지) 크리스마스는 아이들에게는 명절만큼 기다려지는 날이었다.

초등학교 고학년쯤, 산타의 정체를 알게 되고 루돌프 사슴코, 썰매의 환상이 깨어지면서 크리스마스는 동화가 되었지만, 그 후로도 청소년기, 청년기 내내 크리스마스는 추운 겨울을 견디게 하는 축제로 되었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며 카드를 만들고, 거리에 울려 퍼지는 캐럴을 들으며 친구들과 거리를 쏘다니고, 결혼 후 아이들과 트리를 장식하며. 유년과 젊은 날의 기억 속 성탄절은 마치 오래전 헤어진 친구처럼 달콤 쌉쌀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크리스마스도 진화하고 있다.

성탄절의 백미인 캐럴, 거리와 상점이 떠나갈 듯 울려 퍼지던 캐럴송은 저작권 문제와 개인적 취향의 존중으로 볼륨을 줄였지만 코로나로 숨죽여야 했던 3년을 만회하듯 크리스마스트리는 더 휘황찬란하게 몸집을 불린듯하다. 누가 누가 더 화려한가 내기라도 하듯 자태를 뽐내는 트리를 보니, 반짝이 색종이로 만든 별, 종, 양말, 지팡이, 선물상자. 꼬마전구 그 정도로 충분했던 예전의 소박한 트리가 생각났다. 요즘 크리스마스는 기념일이라기보다 거대한 시장 속 하나의 상품이 되어가고 있지만, 각자의 방식과 볼륨으로 캐럴을 즐기고 좋아하는 장식으로 트리를 꾸미며 나름의 크리스마스를 느끼는 것. 크리스마스의 기적뿐 아니라 크리스마스의 악몽까지 껴안는, 크리스마스의 본질은 그런 것이 아닐까. 예전의 소박한 트리를 그리면서 떠들썩한 축제가 되어가는 크리스마스가 안따까워 버릇처럼 '그림을 쓰다'보니 이미 크리스마스는 지나버렸다. 하지만 크리스마스는 끝나지 않고 계속되는 것이라고.. 습관성 핑계대기로 마무리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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