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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정선 Dec 30. 2022

'일본'이라는 선입관

-처음이자 마지막일 수도 있는 일본여행 후기.

 

전쟁터에 나가기 전 무기를 챙기듯이 약간의 경계심을 장착하고 만나는 친구가 있다.

그 이유는 가끔씩 튀어나오는 그 친구의 '옛날이야기' 때문이다. 옛날에 네가 이랬는데(나는 기억나지 않는).. 지금은 개과천선(?)했다는 식의 칭찬인지 흉인지, 묘하게 기분 안 좋아지는  말. 오래 본 사이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대표적인 예는 가족, ‘지난여름에 한 일’이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의 행적을 꿰고 있으니 말 한마디, 행동하나도 그 자체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 경우, '선입관'이라는 부정적 요소의 작용으로 억울한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드물게 반대의 경우도 다. 

이번의 일본여행이 딱 그랬다.

질서, 친절, 배려.. 훌륭한 국민성에 감탄하다가 어느 부분에서 탁 걸리는, 순간순간 찾아오는 급체의 느낌은 온전한 여행의 집중도를 떨어뜨렸다. 여행지, 매너, 음식의 수준이 높아질수록 그 느낌의 강도는 세어졌다. 과거사는 결코 과거지사가 될 수 없다는 생각.. 사과가 없는 과거사는 더더욱.

    


몇 번의 일본여행에서 언제나 맨 처음 느끼는 것은 조용하다는 것이다.

이번여행이 주로 교토에서 머물러서일 수도 있지만 예전에 다른 지방에서도 소음을 느낄 수 없었다. 돌비 시스템이 가동되는 것 같은, 결혼식 피로연에 온 듯 옆사람의 얘기 소리를 고스란히 들어야 하는 우리나라의 식당, 카페와 달리 일본에서는 주로 혼자가 많지만 가끔 들리는 이야기소리조차 소곤거리는 정도다. 낮시간 조용하다 못해 정적감마저 도는 동네는 얼마나 신기한지. 주택가의 호텔에 묵으면서 아침 일찍 동네를 돌다 보니 그나마 출근이나 등교하는 학생들을 몇 명 정도 볼 수 있었다.

아무리 인구밀도가 낮다 하더라도 골목골목의 많은 집들이 세트장은 아닐 텐데. 다 어디로 간 거야? 아니면 집콕? 생각해보니 6일 동안 경적소리도 들은 기억도 없다.(아예 경적장치가 없는 걸까?) 좁은 골목길을 걷다 느낌이 이상해 뒤돌아보면 어느새 왔는지 내 뒤에서 조용히 기다리는 차는 섬뜻하기까지 했다. 우리나라 버전으로 ‘말(경적)을 해야 알지’. 하지만 어디나 예외는 있는 법, 버스 안은 예외였다. 운전대 앞에 아예 마이크를 놓아두고 기사님은 마치 라이브방송을 하듯 쉴 새 없이 무슨 말인가를 하고 있었다. 정차역외 그 역의 안내, 좌회전, 우회전, 커브, 경사도까지 알려주는 걸까? (워낙 친절한 나라니까. 일본어를 모르는 내 생각.) 소음에 민감한 나로서는 대략 난감, 사람들은 익숙한 듯 그 와중에 졸기도 했다.

    


그다음으로 드는 생각은 작다는 것, 집도, 차도, 골목도, 카페도 식당도, 우리 기준에서 보면 스몰사이즈다. 그중의 백미는 집 앞 주차장. 30년 운전경력의 내가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답이 나오지 않는, 마치 기중기로 콕 집어 올린 듯 공간을 꽉 채운 주차, 이곳은 주차의 달인들만 사는 동네같다. 내가 묵었던 호텔방(비즈니스호텔) 또한 작음의 극대화, 침대는 키 큰 서양인은 아예 발을 뻗을 수 없을 정도. 조식 뷔페 음식들 또한 마찬가지. 빵, 과일 디저트가 담겨있는 작은 접시는 어렸을 때 소꼽장놀이를 생각나게 하였다. 돈가스를 먹으러 간 식당에서 잘게 다져져 나온 단무지 몇 조각, 다 먹은 뒤 습관적으로 접시를 내밀었더니 리필은 안된다며 울상을 짓던 종업원 표정에 나도 모르게 빵 터지고 말았다. 이게 리필운운 할 문제? 모르긴 해도 여기서는 아마 먹방은 없지 않을까? 먹방은커녕 소식가가 되어야 살 수 있는 곳, 그래서 일본이 장수국이 되었나 보다.

일본인이 큰 민족이 아닌 것을 감안하더라도 든 것의 작음은  사람들의 키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다.

역사적, 지리적, 문화적, 거기에 따른 검소하고 실용적인 생활습관등 여러 가지 요인으로 사람들은 최고로 효율적인것을 택했을 것이다. 오래전 어느 책에서 일본의 인테리어는 '최소의 면적으로 최대의 효용을 내는 것'이라는 글이 본 적이 있다. 변화에 호의적이지 않은 일본에서는  아직 그 말이 유용해 보였다.

     


마지막으로 줄 서기. 웨이팅을 빼고는 일본을 설명할 수 없다. 두 사람만 모이면 줄이 만들어진다. 식당은 물론, 카페에서 아침 일찍부터 줄을 서 있는 모습은 무척 생소했다.(카페가 워낙 작기도 하지만, 커피도 빨리 마시고 나가는 걸까)

조금 일찍 도착한 지하철역, 캐리어만 놓고 멀찌감치 서 있었는데 어느새 캐리어뒤로 길게 줄 서 있는 사람들. 거리에 모여있는 사람들이 궁금해서 가 봤더니 일 미터 폭의 횡단보도에서  보행 신호를 기다리며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몇 발짝도 안 되는 횡단보도마다 있는 신호등, 차도 없는데 건너지 않고 묵묵히 기다리는 사람들, 두 시간 거리의 시차도 없는 나라에서 이토록 다른 문화가 있다는 사실이 마냥 신기했다. 밥을 먹고 공기를 마시듯, 일본인에게 줄 서기는 자연스러운 일상인 듯 보였다.

    

출간 막바지, 인쇄 틈새로 떠난 6일간의 일본여행. 예전에 느끼지 못했던 혼란스러운 감정들은 나 스스로를 놀라게 했다. 외국에서는 애국자가 된다는 우스갯소리로 넘기기에는 힘들었던 감정들.. 우리네 인생처럼 여행에도 복병이 있음을 느끼게 해 준 일본 여행 후기는 여기까지. 호불호는 각자의 몫으로 남겨두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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