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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정선 Jan 23. 2023

엉겁결에 떠난 겨울 제주여행, 또 다른 답을 찾다.



새벽비행기로 와서 밤비행기로 돌아가는, 짧지만 꽉 찬 3일간의 제주여행, 여행이야 너 나 없이  가는 것이니 별 이슈도 아니지만 매번 동행을 물색하느라 기껏해야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지인들에게 직, 간접적 프러포즈를 해야 했던 나에게 혼자 떠나는 여행은 하나의 사건, 이벤트감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어쩔 수 없는 혼행의 이유가 있었으니, 두 아들의 갑작스러운 여행으로 생긴 일주일간의 휴가로 인해 급조된 여행인데다 한겨울, 바람 부는 제주, 정해진 날짜에 맞출 사람이 있을 리 만무하다는 생각에 아무에게도 고지 없이 스스로에게 급벙(개)을 쳤다. 살짝 끼어드는 두려움과 외로움은 어딜 가나 붙어 다니는 반려그림이 분담해 주리라 믿고 호기롭게, 아니 호기로운 척 떠난 여행, ‘겨울 여행은 혼행’이라는 예상외의 답을 얻었다.

그러므로 여행에서 예상은 금물. 예상의 속성은 ‘보기 좋게 빗나가는 것’이니까.

           


잿빛하늘과 세찬 바람에 떠밀리듯 들어온 호텔, 호텔 2층 창밖으로 펼쳐진 풍경은 순간 계절을 잊게 하였다. 눈앞에 펼쳐진 푸릇푸릇한 마늘밭과 바다를 배경으로 서 있는 키 큰 야자수, 그 잎사귀들이 바람 따라 이리저리 휩쓸리며 시시각각 달라지는 모습은 3D 대형화면 앞에 서 있는 듯 한  착각마저 들었다. 검색으로 이미 알고 있었지만 사진으로 본 것과 실제 모습은 천양지차, 책에서 본 명화를 미술관에서 원화로 보는 느낌이 이런 것일까?

따뜻한 온천에 몸을 담근 듯 지금까지의 노고가 한순간에 스르르 녹는다.

그림멍 놀멍 쉬멍, 식당도, 카페도 생각나지 않게했던 숙소뷰는 이틀 내내 나를 창 앞에 묶어 놓았다.

호캉스는 여름에만 하는 줄 알았는데. ‘겨울 여행도 호캉스’라는 또 하나의 답을 얻었다.

어차피 겨울과 여름은 양 극, 극과 극은 통하니까.



제주, 강릉, 도시에 상관없이 이번 여행의 방점은 혼행, 하지만 ‘그림’이 있는 한 딱히 혼자라 할 수 없다.

어디를 가든 일단 동행을 생각하는 게 예의, 여행지를 제주로 정한 것은 선인장과 동백꽃그리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김없이  예상은 빗나가고 나의 주특기 뒷북치기는 이번에도 비켜가지 않았으니.. 월령리의 야생 선인장은 세찬 바닷바람에 사색이 되어 있었고 위미마을의 동백은 이미 자리를 바꿔 땅에 피고 있었다.

다행히 나무에서 땅에서 마음에서, 세 번 핀다는 동백의 마지막 개화를 마음에 담고 한여름 파릇히 살아날 선인장을 꿈꾸며 나도 모르게 새어 나오는 ‘미션 임파서블’에 실소.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고.. 헛헛하고 꽉 찬 삼 일간의 잔치는 끝났다. 선인장과 동백꽃이라는 숙제를 남긴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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