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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정선 Jan 29. 2023

덧셈보다 어려운 뺄셈, 빼기는 겨울을 닮았다.

  

색 쓰는 여자, 색을 잘 써야지. 색에 너무 빠지면 안 돼

20여 년 전, 그림을 그리면서 화우들과 깔깔대며 하던 말이다.

요즘 생각하면 픽 웃음이 나오지만 나이의 앞자리 숫자가 3에서 4로 바뀌어갈 혈기왕성(?)했던 그때는 그 말이 왜 그리 신박(‘색’이라는 이중적 의미로)하고 재밌던지. (‘낙엽만 굴러도 웃는 사춘기’라고 누가 규정지었을까. 우리는 누군가 뱉은 별스럽지 않은 한마디에 웃음이 터지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말장난을 치며 지칠 때까지 깔깔거리곤 했다.)

우스개 소리로 시작했지만 그림에서 색은 만고의 진리, 최후의 만찬이다.

그림을 처음 배울 때 패키지처럼 들어있는 선긋기, 데생, 스케치는 색을 올리기 위한 선행작업일 뿐, 독자적인 그림이 될 수 없는 줄 알았던 그때,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모든 그림은 색칠로 통한다’로 패러디되었다. 실제로 초보시절 어설픈 스케치에 색을 입히면 칙칙해 보이던 그림이 화사하게 생기가 들며 그럴싸하게 보였던 경험을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색을 입힌다’라는 말처럼 그림의 옷을 입히는 ‘색’, 어떻게 하면 세련된 옷을 만들까 고심하는 디자이너처럼 화가들은 치열하게 조색, 혼색, 발색을 연구한다.

     


하지만 색이 그림의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다. 작용이 좋으면 부작용도 큰 법, 색은 그림을 살리기도 죽이기도 한다. 색의 충성과 배신은 당연히 개인의 역량에 달렸지만 우리는 애꿎은 색 탓으로 돌리며 자기를 위안한다. 색의 과용과 남용에 지치고 식상할 때, 봄, 여름, 가을, 자신이 만들어낸 색을 스스로 내려놓고 잠시 휴식하는 자연처럼 나 또한 색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가 있다. 이럴 때 무채색의 겨울은 휴식과 위안으로 다가온다.

어차피 겨울은 색이 숨어있는 계절, 빼기 연습을 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다.

    


빼기는 더하기보다 어렵다. 나에게 있어 빼기는 극복의 대상이자 최고난도 미션이다.

“외출하기 전 거울 앞에서 무엇을 더할 것인가 보다 무엇을 뺄 것인가를 생각하라”던 샤넬의 미학은 패션에만 통하는 것은 아니다. 디카페인, 탈지분유, 무광 도색, 논알코올, 상품에서도 빼기가 대세다. 하지만 빼기는 추가공정이 필수, 아이러니하게도 뺐는데 더 비싸진다.

그림도 마찬가지, 색이라는 구원투수 없이 오로지 선, 면, 각만으로 그림을 완성하기는 생각만큼 쉽지 않다. 처음 의도와 달리 단색의 지루함과 단조로움을 대체할 무언가를 찾지 못해 어느새 물감을 칠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도 있다. 그럴 때 차선책은 ‘미니멀’, 최소한의 색, 또는 비슷한 계열의 색은 빼기에 한걸음 다가갈 수 있게 도와준다.   

빼기는 겨울이 주는 특권이자 겨울에만 할 수 있는 유희다.

단순함에서 오는 편안함 또한 포기할 수 없는 겨울의 미덕일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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