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람에 맞춰 일어나고 빵을 굽고 커피를 내리고, 여느 날과 다름없는 아침인데 뭔가 다르다.
동트기 전 대기처럼 차분한 기운, 밤새 비몽사몽, 꿈에 시달렸으니 몸이 찌뿌둥해야 맞는데 이상하게 가볍다. 아들을 깨우는 내 목소리가 부드러워지고 시계를 흘끔거리는 빈도수도 줄어든다. 날씨 탓은 아닌 것 같고.. 탐정각을 세우니 가벼움의 주범은 몸이 아니라 마음이다. (운동회의 이인삼각 경주처럼 몸과 마음은 같이 간다.)
이번에도 원인제공은 아들이다. 두어 달 전 아들은 시험포기선언을 했다. 냉랭한 집안 분위기 탓인지 본인의 생각인지 일주일 후 결정을 번복하고 다시 시험준비를 하더니 며칠 전 떨어질 것 같다는 언질을 주었다.
그때와 뉘앙스는 다르지만 같은 결론, ‘기대하지 마세요’. 선심이라도 쓰듯 정주행은 하겠다고 한다. 내가 차선책으로 내세운 정주행의 내막은 ‘혹시나’였는데. 아들은 모르쇠작전으로 일관, 액면 그대로나마 받아들였으니 할 말은 없다. 조금씩 바람이 빠지던 풍선의 마지막 바람마저 빠져나가는 소리. 그 소리가 생각만큼 크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1차 예방접종의 면역 덕분이리라. (지금은 2차, 3차는 무증상으로 지나갈지도).
가벼움의 이유는 혹시나의 실종이었다. 혹시나가 사라진 자리는 의외로 편안하다. 그 빈자리에 다시 무언가가 채워지고 비워지겠지만 지금은 잠시 여백이 주는 여유로움을 즐긴다.
어차피 희망과 실망은 영원히 이인삼각경주 중, 휴식시간이 필요하다.
‘물컵 내려놓기’라는 강연을 본 적이 있다. 먼저 물컵에 들은 물의 양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에게 의외로 학자는 물컵의 무게를 묻는다. 100g,200g, 사람들의 대답에 학자는 실제 무게보다 얼마나 오래 들고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한다. 1분 동안 들고 있을 때와 1시간을 들고 있을 때의 무게차이는 상당할것이고 , 만약 하루종일 들고 있다면 팔은 마비상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물컵은 우리의 스트레스와 걱정, 들고 있으면 팔만 아프니 내려놓으라 한다.
스웨덴 스님이 쓴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는 물컵 내려놓기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무거운 짐을 잠시 내려놓듯 걱정근심이라는 짐을 잠시 내려놓으라고 한다, 걱정의 대부분은 쓸데없거나 일어나지 않을 일들, 거기에 시간의 힘이 더해지면 사소해지기도 아예 사라지는 행운이 오기도 한다. 그러므로 일단 내려놓고 시간을 벌고 볼 일이다. 그래도 그 자리에 있다면 다시 드는것, 이것이 내려놓기의 업그레이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