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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정선 Oct 22. 2023

비어있어 빛났던 존재감,
송현녹지광장이 채워지고 있다.

    

‘앗 서울에 이런 곳이?’ 송현광장을 처음 갔을 때 느낌이다.

경복궁, 안국, 삼청동을 내 집 드나들 듯하지만 서울토박이가 아닌 나에게 높고 긴 담은 원래 있던 것이니 특별히 그 안이 궁금하지 않았다. 아무리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라도 눈만 돌리면 보이는 세상의 모든 담벼락 안을 궁금해하지 않을뿐더러 대부분 의식조차 하지 않는다. 담이 없어졌을 때 비로소 ‘아 거기 담이 있었지’하며 그 존재를 인식한다. 사라져야 나타나는 존재의 아이러니, 이 담벼락도 그런 것이었다. 처음에는 궁금하지 않았는데 없어지고 나서, 더구나 금싸라기 땅이니 중요한 뭔가가 있을 줄 알았는데 허물고 보니 넓은 공터? 

그제야 이곳이 궁금해졌다.



서울 한복판에 이런 뻥 뚫린 공간이 있었다니, 하늘에서 뚝 떨어진 듯, 땅에서 불쑥 솟아오른 듯 신박하다 못해 반전, 게다가 해피엔딩이다. 광장이 생기면서 담에 가려 보이지 않던 건물들은 비로소 멋진 자태를 드러내고 맞은편 삼청동 골목길에 남아있는 오래된 한옥들과 이웃이 되는 시너지효과까지. 

이런 극과 극의 어울림은 서울에서만 볼 수 있는 묘미, 발 빠른 스케쳐스들이 놓칠 리 없다. 

    


그림도 그리고, 친구도 만나고, 모임도 열리고, 이런저런 이유로 요 몇 달 송현광장을 자주 찾게 되었다. 그런데 갈 때마다 풍경이 달라진다. 신혼집 살림살이가 늘어나듯, 광장은 뭔가로 하나, 둘 채워지고 있었다. 처음 갔을 때, 낮은 담에 앉아 그림을 그리면서 감탄을 연발했던 뻥 뚫린 시야는 이제 갖가지 조형물과 커다란 안내판으로 가려져 그림 속에만 남아있는 풍경이 되었다. 문제는 조화로움, 그 자체로 훌륭한 유명작가들의 작품들이 꼭 이 자리에 있어야 하는지. 그 자체만으로 힐링이었던 나지막한 꽃과 나무들은 키 큰 설치물들의 들러리가 되기도 하고, 누가 더 예쁜지 경연을 펼치는 듯 보이기도 한다.

 강대강의 대결에 피곤해지는 눈. 나만 그런가?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어딘가에 샘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다’(생텍쥐페리).

광장과 사막, 지나친 비약일지라도 사막을 가보지 못한 나는 광장에서 ‘비어있어 아름다운’ 사막을 생각했다. 사통팔달 막힘없이 넘나드는 바람과 햇살, 그 길 따라 저마다의 생각이 흐르는  광장. 2년여의 임시개장이라는데 그동안만이라도 비워두었으면 하는 바람은 지극히 개인적인 희망사항일 수도, 말로는 여백을 외치면서 매번 채우는 내 그림과 겹쳐지는 씁쓸함에 ‘그림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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