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어있어 빛났던 존재감,
송현녹지광장이 채워지고 있다.

by 한정선


‘앗 서울에 이런 곳이?’ 송현광장을 처음 갔을 때 느낌이다.

경복궁, 안국, 삼청동을 내 집 드나들 듯하지만 서울토박이가 아닌 나에게 높고 긴 담은 원래 있던 것이니 특별히 그 안이 궁금하지 않았다. 아무리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라도 눈만 돌리면 보이는 세상의 모든 담벼락 안을 궁금해하지 않을뿐더러 대부분 의식조차 하지 않는다. 담이 없어졌을 때 비로소 ‘아 거기 담이 있었지’하며 그 존재를 인식한다. 사라져야 나타나는 존재의 아이러니, 이 담벼락도 그런 것이었다. 처음에는 궁금하지 않았는데 없어지고 나서, 더구나 금싸라기 땅이니 중요한 뭔가가 있을 줄 알았는데 허물고 보니 넓은 공터?

그제야 이곳이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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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복판에 이런 뻥 뚫린 공간이 있었다니, 하늘에서 뚝 떨어진 듯, 땅에서 불쑥 솟아오른 듯 신박하다 못해 반전, 게다가 해피엔딩이다. 광장이 생기면서 담에 가려 보이지 않던 건물들은 비로소 멋진 자태를 드러내고 맞은편 삼청동 골목길에 남아있는 오래된 한옥들과 이웃이 되는 시너지효과까지.

이런 극과 극의 어울림은 서울에서만 볼 수 있는 묘미, 발 빠른 스케쳐스들이 놓칠 리 없다.



그림도 그리고, 친구도 만나고, 모임도 열리고, 이런저런 이유로 요 몇 달 송현광장을 자주 찾게 되었다. 그런데 갈 때마다 풍경이 달라진다. 신혼집 살림살이가 늘어나듯, 광장은 뭔가로 하나, 둘 채워지고 있었다. 처음 갔을 때, 낮은 담에 앉아 그림을 그리면서 감탄을 연발했던 뻥 뚫린 시야는 이제 갖가지 조형물과 커다란 안내판으로 가려져 그림 속에만 남아있는 풍경이 되었다. 문제는 조화로움, 그 자체로 훌륭한 유명작가들의 작품들이 꼭 이 자리에 있어야 하는지. 그 자체만으로 힐링이었던 나지막한 꽃과 나무들은 키 큰 설치물들의 들러리가 되기도 하고, 누가 더 예쁜지 경연을 펼치는 듯 보이기도 한다.

강대강의 대결에 피곤해지는 눈. 나만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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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어딘가에 샘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다’(생텍쥐페리).

광장과 사막, 지나친 비약일지라도 사막을 가보지 못한 나는 광장에서 ‘비어있어 아름다운’ 사막을 생각했다. 사통팔달 막힘없이 넘나드는 바람과 햇살, 그 길 따라 저마다의 생각이 흐르는 광장. 2년여의 임시개장이라는데 그동안만이라도 비워두었으면 하는 바람은 지극히 개인적인 희망사항일 수도, 말로는 여백을 외치면서 매번 채우는 내 그림과 겹쳐지는 씁쓸함에 ‘그림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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