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 속 스포일러.
-스포일러는 영화나 책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스포일러’는 영화나 소설의 리뷰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결말을 미리 알려주는 장치로, 스포일러 포함, 스포일러 조심등, 대체로 부정적 의미를 띠지만 가끔 유용하게 쓰이기도 한다. 오래전에 본 것이라 결말이 잘 생각나지 않을 때, 맥락이 헷갈릴 때, 스포일러(줄거리)는 기억을 되살려주고 부분을 전체와 연결시켜 준다. 하지만 스포일러가 영화나 책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일상생활 속에서 나타난다는 것, 내 경험상 가장 빈번히 모습을 드러내는 곳은 인간관계다. 상대방과 내가 공유하는 관계가 있을 때, 또한 공유하는 관계가 많을수록 스포일러도 많아진다. ‘있잖아~’ ‘너만 알고 있어’, 비밀스러운 이야기는 대체로 험담의 성격을 띠지만 교묘하게 포장되어 선물처럼 주어진다.
사실 남의 이야기는 재미있다. 나만 몰랐던 것 같아 억울(?) 하기도 하던 참에 처음에는 알려줘서 고맙기까지 하다. 하지만 자꾸 듣다 보면 속이 더부룩해진다. 먹을 때는 맛있었는데 왠지 소화가 되지 않는 느낌? 그 체증은 이유 없이 그 사람이(스포일러 된 사람) 싫어지고 멀리하게 되는 심각한 후유증을 불러온다. 내게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았고 사람마다 케미가 다르니 나는 그 사람과 잘 맞을 수도 있는데 스포일러로 인해 시작도 하기 전, 또는 중간에서 끝장이 나버린 묘한 관계가 된다. 둘 다 스포일러의 피해자, 생각하면 세상 억울한 일이다,
물론 ‘그래애?' 하며 쉽게 공감해 버린 내 잘못도 있지만, 은밀한 대화는 무의식에 새겨지고 이성을 마비시킨다. 이름 지을 수 없는 함정에 빠진 느낌, 그 후유증에 시달리다 결국 한 사람을(스포일러를 한 사람) 손절한, 이것은 나의 경험담이다. 그 사람은 자기가 알고 있는 사실을 아낌없이 방출하는 것이 친밀함의 표시라 생각했을 수 있지만 궁금하지 않은 사람들의 개인사를 듣는 것은 고역이었고 오늘은 또 누구의 얘기를 들어야 하나, 만남이 트라우마로 다가왔다. 더 무서운 것은 나도 그 사람을 통해 스포일러 될 수 있다는 사실, 내가 그 화살을 비껴가리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 것인가.
공유된 인간관계 속에서 스포일러는 백해무익, 그녀는 결국 내게 훌륭한 반면교사로 남았다.
스포일러와 비슷하게 쓰이는 말로 선입관이 있다. 스포일러는 타자에 의해 생기고, 선입관은 스스로 만든다는 차이점이 있지만 미리 알고 있다는 사실은 같다.
스포일러와 마찬가지로 긍정적 보다 부정적으로 많이 쓰이는 선입관은 인종, 직업, 국가, 지역, 어떤 대상에도 적용되지만 이 또한 인간관계에서 많이 볼 수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사이인 가족은 선입관으로 똘똘 뭉쳐진 집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네가 지난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 ‘라는 영화는 제목만으로도 섬뜩하게 다가온다.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은 요즘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스토킹의 일환이다. 하물며 가족은 지난여름이 아니라 수십 년 동안, 부모, 자식 간은 태어날 때부터 서로를 알고 있다. 일거수일투족, 서로의 마음속까지 꿰뚫어 볼 수 있는, 생각하기에 따라 무서운 관계지만 애정이라는 방패막으로 가려진다. 문제는 애정의 얼굴을 한 애착처럼 선입관은 편견을 낳는다는 것이다. 애정과 애착의 경계가 모호하듯 선입관과 편견은 가족 간 상처의 도화선이 된다. 예를 들면 선생님께 칭찬받았다고 자랑하는 아들에게 '설마 네가?'
오랜만에 시험을 잘 본 아들에게 ‘웬일이야?' 칭찬에 앞서 김빼기 멘트가 일발되고 어쩌다 한 실수에도 '네가 그렇지 뭐', 묵은 잘못까지 줄줄이 소환되는.. 이것 또한 (지금도 진행 중인) 나의 경험담이다.
선입관은 오래된 친구 사이에서도 나타난다. 그 친구에게 지금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은 옛날과 결부된다. 단골메뉴는 내 기억에도 가물가물한 '예전'시리즈, '예전엔 너 안 그랬잖아'는 칭찬인지 흉인지 헷갈린다.
사람의 본성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환경과 시간에 따라 어느 정도 바뀔 수는 있다. 드라마 '웰컴투 삼달리'의 한 장면으로 바다를 바라보고 나란히 앉은 삼달이와 용필이, 자신을 자꾸 옛날과 비교하는 어린 시절 친구 용필에게 삼달이는 조곤조곤 말한다. '용필아 십여년동안 만나는 사람도, 사는 곳도 바뀌고 연봉도 열 배가 오르면 사람도 달라져'라고.
반대의 경우도 (예전엔 잘했는데 지금은 못하는) 마찬가지로 좋은 말을 듣기는 어렵다.
개인이든 국가든 과거는 중요하다. 옛것이 바탕이 되어 새것을 익힌다는 ’온고이지신‘은 나를 뒤돌아보게 하는 휼륭한 덕목이다. 하지만 타인에 의해 나의 과거와 현재가 끊임없이 비교되는 것은 억울한 일이다. 법적으로 치더라도 공소시효가 한참 지난 일이 아닌가. 아이러니한 것은 선입관은 가장 가까운 관계에서 생기고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선입관은 가족 간 불화나 오래된 친구와의 절연에 일조를 한다.
일상생활 속 스포일러와 선입관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을 터, 우리는 피해자가 되기도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일방적인 거래는 없다. 모든 관계가 쌍방 거래라면 스포일러와 선입관은 인간관계에서 주지도 받지도 말아야 할 청탁금 같은 것이다. 대안은 현상을 뭔가와 연결시키지 않고 그 자체로 보기, 그야말로 미션 임파셔블이다. AI라면 이 미션을 수행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