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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덕주 Jan 20. 2022

강남 사람이 무슨 죄?

집값을 올린 건 강남 사람이 아니다

※ 여기서의 강남은 서울시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 일대를 말합니다.     


강남이 뭐가 좋냐고?

언젠가 강남 사는 지인이 말했다. 강남이 뭐가 좋다고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그러는지’의 내용은 ‘모두가 강남에서 살고 싶어 한다’, ‘그래서 강남 집은 끝 모르게 오른다’ 등의 내용이 담겨있다고 해석해 본다. 그 지인은 말하기를 바둑판 모양의 모든 도로가 꽉꽉 막혀서 어디 다른 길로 돌아갈 뒷길도 없다고. 답답해서 못 산다고. (그런데 그 바둑판 모양의 도로는 다른 지역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점이기도 하다.) 아이들 다 크고 나면 다른 지역으로 갈 거라고. 

평소에 강남 사는 사람들을 그다지 부러워한 것도 아니었지만(그렇게 생각하며 살고 있다), 막상 강남이 뭐라고 그렇게 오려고 하냐는 강남 주민의 말을 들으니, 의외의 일격을 당한 기분이 들었다. 강남에서 살고 있는 다른 지인들이 여럿 있는데, 그들 대부분은 강남에 살고 있는 걸 만족스러워했기 때문이다. 대부분 선량한 사람들이므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부자 동네에 살고 있다는 자랑스러운 마음이 있더라도 내색은 잘 안 한다. 

가끔 그 만족스러움을 대놓고 드러내는 사람도 없는 건 아니다. (물론 그 사람도 선량한 사람이다.) 강남 주민들의 자랑 리스트에는, 자기 집 주변에 전철역이 몇 개나 둘러싸고 있어서 너무나 편리하다는 점이 첫째일 것 같다. 실제로 강남에서 길을 걷다 보면 한 블록을 사이에 둔 각기 다른 전철역을 만날 수 있다. 

     

모든 교통수단은 강남으로

지난 연말, 한 신문의 제목이 눈을 끌었다. “수원 호매실서 강남까지 40분대 진입” 

내용을 요약하면 ‘지하철 신분당선이 수원 광교에서부터 호매실까지 연장된다. 완공 후 호매실에서 신분당선을 타면 강남까지 40분대에 도착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신분당선을 연장할 노선은 광교에서 수원 화서를 거쳐 호매실까지의 약 10km이다. 호매실에 사는 사람들이 모두 다 강남에 갈 일이 있는 건 아닐 것이다. 그 노선이 완성되면 화서나 광교, 분당에 볼일이 있는 사람도 편리해지는 거다. 

그런데, 꼭 강남을 들먹여서 모든 사람들이 오로지 강남에 빨리 못 가서 환장한 것처럼 제목을 뽑는다. 기사 조회수를 늘리려고 그러는 건 다 아니까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수도권에 사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서울에 사는 사람들도 강남 접근권이 거주지 선택에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그건 꼭 강남에 출퇴근을 안 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강남으로의 손쉬운 연결은 집값 상승에 막대한 영향을 주니까.

이렇게 모든 지역에서 강남에 빨리 가기를 원하고 그 열망을 담아 정부는, 또는 건설사들은 모든 지역을 강남으로 강남으로 연결해 준다. 그건 곧 강남에서는 그 어떤 지역을 가더라도 최상의, 최단 시간의 교통수단이 확보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돈이 없어 외곽에 사는 사람들은 전철 이용이 불편해서 자동차를 몰아야 하는 반면에, 부자들이 사는 강남에서는 승용차를 타지 않아도 어디든지 쉽게 갈 수가 있다.    

  

지하철역 강남구 33관악구와 금천구 각각 4

강남에는 지하철 노선이 거미줄처럼 촘촘히 놓여 있다. 걸어서 10분 안에 갈 수 있는 전철역이 두세 개씩 된다. 역과 역 사이도 매우 짧다.

KB부동산 리브온(Liiv ON)이 수도권 지하철 노선도를 바탕으로 2020년 1월 현재 서울 25개 자치구별 지하철역 및 지하철 노선을 조사했었다. 강남구가 총 33개로 가장 많은 지하철역을 보유하고 있다. 그 뒤로 총 29개의 지하철역이 있는 송파구가 차지했으며, 중구 24개, 강서구 23개, 마포구 22개, 서초구 19개 순이다. 양천구 6개, 서대문구 7개, 도봉구 8개 등 총 5개 자치구의 경우 10개 미만의 지하철역이 있다. 그중 금천구와 관악구는 총 4개의 역만 위치한다. 

(참고로 인구는 1위 송파구 28만 2천여 명, 2위 관악구 27만 6천여 명, 3위 강서구 27만여 명, 4위 강남구 23만 4천여 명 순이다. 이하 노원구, 은평구, 강동구의 인구수가 20만을 넘는다. (서울시 통계 2021.11.2.)



강남에 전철역이 많은 줄은 알았다만, 33개라니! 관악구 주민이 아닌데도 은근 부아가 치민다. (금천구도 있지만 관악구 주민수가 2위이기 때문에 더 언급할 의미가 있다.) 단순하게 말해서 관악구 주민이 낸 세금으로 이렇게 강남 부자들을 편하게 해 주고 강남 집값을 오르게 해 주었구나!!! 아니, 사실은 지방 사는 사람들의 세금으로 강남 사람 편리하게 해 주고, 강남 집값 오르게 해주는 거라고 해야 더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부동산 시장에서는 ‘교통길이 돈길’이라는 말이 있다. 33개 역을 보유하고 있는 강남구의 집값이 가장 비싼 건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집값이 비싼 상위 3위(강남구, 서초구, 송파구) 지역이 보유하고 있는 지하철역 개수는 81개로 전체(389개 역) 대비 21%가량 차지하고 있다. 반대로 집값이 하위권을 형성하고 있는 지역은 노원구(16개 역), 중랑구(16개 역)를 제외하면 대부분 지하철역이 많지 않은 곳이다.     


김부선(김포~부천)에 대한 반발

작년 5월, 애초에 강남까지 연결할 것처럼 했던 서부권 광역급행철도(GTX-D노선)가 김포 장기에서 출발해 검단신도시~계양역~대장 신도시~부천 종합운동장까지로 확정되자 인천과 경기 김포시민들의 반발이 거셌다. GTX-D 노선이 ‘김부선(김포∼부천)’에 그쳤다며 강남 직결과 서울 지하철 5호선 김포 연장을 촉구하며 차량 시위를 벌이기도 하고, 지역구 국회의원 사무실 등에 근조화환도 보내기도 했다. (경향신문 2021.5.7.)     

국토부는 최종적으로 “GTX-B노선 사업자와의 협의를 거쳐 부천종합운동장역에서 GTX-B노선을 같이 이용해 용산역 등 서울 도심까지 열차 직결 운행을 추진한다”라고 밝혔다. GTX-B노선은 인천 송도에서 출발해 부천 종합운동장~여의도~용산~서울역을 거쳐 마석까지 연결된다. 용산으로 연결되는 것으로 최종 결정되면서 ‘김부선’은 ‘김용선’이 됐다. GTX-B노선을 활용해 직결 운행하게 되면, 장기역에서 여의도역까지 24분, 장기역에서 용산역까지 28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조선비즈 6.29)     

김포시에서 김포와 서울 강남의 ‘직결’을 요구하는 목소리의 주된 근거는 서울로의 출퇴근 문제다. 그렇다면 김포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수요는 얼마나 될까. 교통연구원은 김포를 드나드는 차량(승용차 등), 버스, 지하철 등 출퇴근 시간대 교통 총량을 분석했다. 그 결과 김포에서 서울로 향하는 출퇴근 시간대 교통량은 전체의 약 20%, 김포에서 강남을 오가는 교통량은 전체의 약 6%로 집계됐다.

작년 4월 기준 국내 경제활동인구 비율은 약 55%다. 단순비교로 김포 인구수(약 48만 명)에 이를 적용하면 26만 명가량이 경제활동인구다. 이들이 모두 출퇴근을 한다고 가정하면 교통연구원 교통량 분석을 기준으로 서울로 가는 인구는 약 5만 2천 명, 강남으로 가는 인구는 약 1만 6천 명이다. 강남으로 가는 ‘GTX-D 원안’의 건립 비용은 6조 원 내외, 부천까지 가는 ‘김부선’의 건립 비용은 2조 1천억 원이라고 한다. (경향 5.23.)

1만 6,000명의 출퇴근 시간을 조금 줄여주기 위해 3조 이상의 비용을 쓰는 건 아무래도 무리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런 식의 요구는 김포시민만 하는 건 아니다. 특별히 김포시민이 더 이기적이라고 할 수도 없다. 수도권 천만 도민이 모두 강남으로 강남으로 노선을 놓아달라고 하고 있으니까. 그 좁은 강남에 회사가 많으면 얼마나 많다고 모든 도민이 강남 연결을 원할까 이상해 보인다. 강남까지의 왕래의 편리성보다는 집값 때문에 강남 연결을 요구하는 사람이 더 많다고 보는 게 정확한 지적일 것이다. 

하지만, 강남 가는 철도가 생기면 그 외곽 지역의 집값만 오르나? 그 철도로 외곽 어디든지 편하게 갈 수 있는 강남 집값은 더 오른다.     


강남을 위한 고속철도역 SRT

강남 집값을 올려주는 결정적인 교통인프라는 또 있다.

수서역 출발 SRT이다. 고속철도 KTX를 타기 위해 강남에서 서울역까지 가는 불편을 줄여주기 위해 수서역에서 출발하는 고속철도가 하나 더 놓인 것이다. 물론 지방에서 강남으로 볼 일이 있는 사람의 불편도 덜어주는 것이기도 하다. 아무튼 대한민국의 교통이 ‘강남’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는 결정적인 증거이다.  

한 도시에 두 개의 고속철도역이 있는 경우는 세계적으로도 찾아보기 힘들다고 한다. 고속철을 우리보다 훨씬 먼저 운행했던 일본도, 우리 서울보다 더 큰 면적의 도쿄에 제2의 고속철도역과 노선을 만들지는 않았다. 강남 주민과 강남에 볼일이 있는 극소수의 사람들을 위해 막대한 나랏돈을 사용한 것이다. (민자도로나 민자철도에도 많든 적든, 보이든 보이지 않든, 세금이 쓰이고 있는 건 사실이다.)     


강남 사람은 죄가 없다

나랏돈으로 강남의 집값을 올려놓고는 누구 탓을 하는가? 강남 사람 잘못인가? 강남에서 살고 싶은 사람이 잘못인가? 이렇게 끊임없이 강남에 편리한 교통인프라를 쏟아부으면서, 강남이 부동산 폭등의 원흉인 것처럼 말하고, 강남에 진입하고 싶은 사람을 속물인 것처럼 말하는 자 누구인가?


지도를 펼쳐놓고 선을 찍찍 그으면서 도로를 만들고 철도를 만들 계획을 세우고 그걸 허가해주는 사람들, 그 공사로 돈을 벌어대는 사람들 중 압도적인 비율이 강남에 살고 있다는 소문이 있기는 하다. 그렇다면 강남 집값 상승에 강남 사람 책임도 있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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