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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덕주 Feb 18. 2022

내 친구가 너무 열심히 살아요

황새 친구 따라가려다 나는 가랑이가 찢어집니다.


열정의 화신 나의 친구


나에게는 존경하는 친구가 있다. 

그녀는 서초구 자기집 근처에서 수십 년 동안 국어논술학원을 운영해 온 원장님이자 그 학원의 유일한 강사님이다. 그의 23평짜리 학원에는 수천 권의 책이 온 벽을 둘러싸고 있다.     


그녀와 나는 사실 오랫동안 동창모임에서만 얼굴을 보고 안부를 주고받는 사이였을 뿐, 개인적으로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다.  

3년 전 내가 책을 출간하자, 평소 책을 낼 생각을 가지고 있던 그 친구가 출간 과정을 자세히 물어왔다. 그는 이미 수십 년 동안 논술학원 원장을 지내면서 수많은 제자들을 ‘논술’로 대학에 입학시켜왔고, 글쓰기 지도와 관련해서 박사과정을 이수한 전문가였다. 동시에 등단한 시인이었고, 영화 읽기 강좌나 글쓰기 강좌를 여기저기서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소설쓰기 강좌, 온라인 책 만들기 강좌 등 어디든 찾아다니면서 끊임없이 공부하는 열정의 화신이었다.     


나는 내가 책을 낸 출판사에 그녀를 소개해 주었다. ‘강남’의 학원 원장으로서 풍부한 경험을 가지고 있던 그녀의 ‘대입준비를 위한 글쓰기’라는 콘텐츠는 즉각 출판사의 흥미를 끌었고, 쉽게 첫 책을 내었다. 그러고도 그녀는 여기저기 책쓰기 강좌를 수소문해서 열심히 듣고 다녔고, 오래지 않아 한 강좌에서 만난 중견 출판사의 기획자를 통해서 ‘초중등학생을 위한 글쓰기’책을 또 출간했다. 

하지만 그녀의 목표는 책을 한두 권 출간하는 것이 아니라, 책쓰기 강사가 되는 것이었다. 틈틈이 여러 기관에서 글쓰기 강사를 하면서, 동시에 ‘책쓰기 강좌의 수강생’이 되어 갈고 닦던  그녀는, 코로나 시대를 맞아 온라인으로 ‘책쓰기 강좌’를 시작했다. 그리고 2022년 봄 그간의 공부와 경력을 가지고, 드디어 한 대학교의 사회교육원에서 개설한 고액(?)의 책쓰기 강좌를 맡아서 내로라하는 강사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경이로운 그녀의 시간 시작은 같았으나 하늘과 땅 차이


2년 반 전, 나는 이미 책을 출간한 작가였으므로, 브런치 작가 되기를 신청해서 한 번에 되었다. 그즈음 그 친구는 아직 책을 내기 전이었으므로, 두 번 시도해서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나는 글 몇 편을 달랑 올려놓고 개점 휴업인 상태로 2년 이상을 흘려보냈다. 

브런치 작가가 막 됐을 때, ‘매일 블로그 한 편, 매주 브런치 한 편’이라는 목표를 가진 사람들을 보았고, 잠시동안은 나도 그들처럼 열심히 글을 써 볼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고, 한 번 수정한 걸 다시 수정하기까지 금방 며칠을 훌쩍 보내면서 도무지 완성된 글을 만들지 못하는 ‘느림보 글쓰기꾼’인 나로서는 불가능한 목표였다. 글쓰고 싶은 소재는 끊임없이 떠오르지만(경험하지만), 완성하지 못한 글들의 파편을 잔뜩 쌓아두기를 반복하면서, 밀린 숙제 때문에 스트레스만 받다가 거의 손을 놓아 버렸다. (지금 쓰는 이 글도 맨 처음 아이디어 상태에서 한 달이 넘었다.) 

아무도 채근하지 않는, 그래서 마감이라는 것도 없는, 오직 나와의 싸움일 뿐인 글쓰기에 대한 압박감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약해졌다. 더 시간이 흐르자 ‘에라 맘 편하게 좀 살자’로 바뀌고 글쓰기를 하지 않는데 대한 초조함도 사라졌다. 마침 코로나 시국이 되어 온라인 강의가 넘쳐나고 있었다. 음악ㆍ미술ㆍIT 등 닥치는 대로 강의 찾아 듣기, 온라인 대학 등록해서 공부하기, 도서관이나 구술채록 등의 봉사 활동하기 등으로 시간을 보냈는데, 그것들은 ‘글쓰기’보다 훨씬 쉬웠고, 마음도 더 편했다. 과연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이다. 뭐가 됐든 강의라도 듣고 있으면,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글쓰기에 관한 한, 내가 이렇게 비생산적으로 어정쩡하게 시간을 보내는 사이에, 친구는 블로그가 아닌 ‘브런치에 매일 한 편’이라는, 나에게는 불가능해 보이는, 비현실적인 목표를 가졌고, 놀랍게도 그것을 실천했다! 매일은 아니더라도 일주일에 세 번 이상씩 꾸준히 썼고. 지난 연말 11월 22일 현재, 2년여 만에 ‘발행글 510개’ ‘누적뷰 13.3만’ ‘발행글에 대한 누적 라이킷 6,222명으로 상위 1%’가 되는 기염을 토했다.    

  

그녀는 브런치에 자기의 글쓰기만 하는 게 아니었다. 이런 저런 커뮤니티에 가입해 활동하고, 여러 곳의 강사를 하던 그녀는, 구성원 중 브런치 작가 등록 신청에 여러 번 떨어지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해주기 시작했고, 어느새 브런치 작가 입문 지도를 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유료로! 제자들(?)의 브런치 합격율은 100%라고 한다. 그녀는 이번 봄에 시민대학 등에 ‘브런치 등단작가 만들기’ 강의도 개설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이런 와중에도 그녀의 본업인 논술학원의 학생 지도를 게을리하는 것도 아니다. 학원을 찾는 학생들에게 여전히 매우 성의있는 (필요하면 학생에게 무한 시간을 내 준다) 논술 지도와 자기소개서 지도를 하면서 대학교에 합격을 시키고 내신점수 쌓기를 도와주고 있다.      

위에서 말한 그 모든 활동을 더 잘하기 위해서 그녀는 쉼없이 책을 읽고 유투브의 관련 강의를 듣고 밤늦게까지 영화를 본다. 똑같이 하루 24시간을 살건만 나로서는 그의 종횡무진하는 활약이 경이롭기 짝이 없다. 그녀를 보면 무협영화에서 대나무숲 위를 샥샥 날아다니며 휙휙 검을 휘둘러대는 여성 전사가 떠 오른다. 그 배우 이름이 장쯔이였던가...?        


감히 넘볼 수 없게 된 그녀


그녀를 만나면, 자기가 시간을 쪼개서 하고 있는 그 많은 일들과 거기서 만난 고수들에 대해 이야기 해주고, 그 중 많은 일들에 대한 정보를 나에게 아낌없이 나눠 준다. 너는 글솜씨가 있으니 어떤 어떤 책을 써 봐라, 어디 어디 강사에 지원해 봐라, 어디 가면 이런 좋은 강의가 있으니 들어봐라.... 하고 계속 부추긴다.      


                                                                                           (픽사베이 사진)

그녀는 나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고 열정을 되살리게 해주는 인도자이기도 하고, 실용적인 정보를 주는 유익한 선배이기도 하다. 그녀의 열정과 도전 의식과 추진력을 존경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의 넘치는 에너지와 건강까지도 존경한다. 그녀는 나로선 따라갈 수 없을 정도의 거리, 저 멀리 앞서 나가고 있고. 그녀와 나의 격차는 너무나 커 보여서 경쟁심이나 질투심조차 생기지 않는다.      


잠시도 멈추지 않고 새로이 배우고 새로이 도전하여 눈부시게 성장하고 있는 그녀를 보면, 나는 한없이 작아지는 느낌이 든다. 이렇게 게으르게 살아서는 안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자극을 받는다. 그녀를 만나고 오면, 그녀의 의욕에 물들어서는 나의 계획은 더 많아지고, 머리는 더 복잡해진다. 

문제는 정작 내 몸은 이전과 별로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카페나 도서관에서 몇 시간 앉아서 머리를 쥐어짜고 있으면, 머리보다 목과 어깨와 등과 허리가 아파 온다. 그걸 핑계 삼아 이삼 일에 한 번 정도나 노트북 앞에 간신히 앉는다. 대신 운동하러, 산책하러, 여행하러 여기저기 돌아다닌다. (아, 걷는 건 얼마나 쉬운지!) 아침에는 집안일 핑계로 미적거리고, 오후에는 TV와 OTT와 핸드폰 등의 동영상에 매진하는 버릇도 여전하다.     

분발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가랑이가 찢어진다


급기야 악몽을 꾼다. 넓은 주차장에서 자동차를 찾지 못해 애타게 헤매는 꿈, 지금은 성인인 아들이 9살짜리로 등장하는데, 그 아들을 잃어버려서 울며불며 찾아다니는 꿈 등. 심지어 잠꼬대까지 하고 소리소리 지르다가 놀라서 깬 적도 있다. 잠에서 깨어나 찜찜한 기분때문에 무료꿈해몽을 검색해 보면, 하고 싶은 일이 잘 안 풀려서 불안하고 답답해서 꾸는 꿈이라는 해석이 공통적이다.      

죽을 때까지 성장하는, 의미있는 삶을 살려면 그녀를 벤치마킹하고, 부지런하게 살아야 할 텐데, 그녀를 따라해 보려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황새 쫓아가려다 가랑이 찢어지는 꼴이다. 나는 곧잘 ‘쉬어 가자’, ‘쫓기며 살지 말자’, ‘비교하지 말자’, ‘스트레스 받지 말자’ 하며 내 스스로를 위로하며 달래보는데, 그러자 악몽을 꾸지 않게 되었다.      


육체의 노화는 어쩔 수 없지만, 정신적으로는 제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고 계속 성장하고 싶다. 죽을 때까지 뭔가를 배우고 내가 몰랐던 새로운 세상과 만나고 싶다. 그렇게 사는 것이 곧 내 삶의 이유라고 말하고 싶다. 그것이 곧 내가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되는 길이라고 믿는다. 그러려면 그녀를 좀더 자주 만나고 조언을 듣고 나를 가다듬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편 ‘최선을 다해서 살기’에 못지 않게 흔한 ‘느리게 살기’, ‘소박하게 살기’, ‘소소한 일상에서 행복 찾기’ 등의 단어들을 접하면, 내가 너무 과한 욕심을 부리는 건 아닌가, 내 스스로에게 너무 채찍질하고 심지어 가혹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마음의 평화를 얻으려면 너무 열심히 사는 그 친구와의 만남을 줄여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드는 것이다.      


이렇게 나에게 양가적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그 친구는 오늘도 쉬임없이 저만치 달려가고 있다. 지친 기색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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