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는 인간을 가두고 압살한다.'

아베 코보, <모래의 여자>를 읽고.

by 이효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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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는 인간을 가두고 압살한다. p.91

기다리는 시간은 고통스러웠다. 시간은 뱀의 뱃살처럼, 깊은 주름을 그리며 몇 겹으로 접혀 있었다. 그 하나하나에 들르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p.115

그는 모래 속이서 물과 함께 또 하나의 자기 자신을 발굴해 냈는지도 모른다. p.221




<모래 속 곤충이 되어버린 한 남자의 자화상>


'모래와 곤충채집'을 위해 홀로 휴가를 떠나 한 마을의 모래 벽 속에 갇혀 매일 모래를 퍼내야 하는 한 남자'에 관한 이야기다. 사막 가운데 자리 잡은 모래 가득한 마을. 온갖 구멍이 가득한 모래 속에 인간이 살고 있다. 호기심에 이끌려 집을 구경하던 중 마을 주민에 의해 구멍 속 한 집(여자 홀로 살고 있는 집)에서 하룻밤만 자고가기로 한다. '하룻밤'만 지내다 가려했던 남자는 점점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기괴하고 미묘한 한 여자의 행동과 모래 구멍 속의 삶에 불안과 위기를 느끼고 탈출하려 애쓰지만 모래 구멍 벽 속에 갇힌 남자는 자신의 무력함만 느끼며 결국엔 정신적인 공포와 불안으로 점칠된다. 40일이 지나 탈출에 성공하지만 모래 구덩이에 빠져 결국 마을 사람들에 의해 구출되어 다시 원래 있던 곳으로 내려진다.


그는 그렇게 또 다시 하루 하루 모래를 퍼내지 않으면 안되는 모래에 잠식되고 압살되어 살아갈 수 밖에 없는 매일의 삶의 반복에 순응한다. 하루의 시작과 끝을 모래 퍼내는 일이 전부인 일상. 모래를 퍼내야지만 물과 음식 그리고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처음에는 자신을 갇히게 했다는 마을 사람들에 대한 부당함과 분노, 적개심을 가지고 대항하며 맞서지만 모래 속에 갇힌 그는 힘이 없다. 끝내 자신을 둘러싼 새로운 환경과 상황 그리고 모래에 의한 무력함에 그는 지칠대로 지쳐버리고 끝내 순응해버리고 만다.








자신의 일상을 잠시 탈피하려 떠난 곳에서 영원히 잠식 되어버린 한 남자. 결국 본인이 모래 속 곤충이 되어버린 한 남자의 자화상 이야기는 평소 일상의 굴레에 권태를 느끼던 나와 비슷하다. 때문에 책을 읽는 도중 몇 번이나 속에서 신물이 올라오는 듯 씁쓸하면서도 시큼했다. 매일 매일 모래를 퍼 내야지만 생이 유지되는 그 남자처럼 태어났기에 내게 주어진 일상과 생을 살아내야 하는 인간의 굴레는 매우 맞닿아 있다. 모래가 그 남자를 압살했듯이, 삶은 삶으로 잠식되는 건 아닐까. 살아내야 하는 책임과 의무를 짊어진, 마치 시지프스의 돌을 짊어진 것처럼 묵묵히 어떤 이유와 의미가 있어서가 아닌 그래야 하기 때문이라는 당위성의 반복. 그리고 이 속에서 좌절과 패배, 분노 그리고 원초적인 욕정에 충실하며 또 다른 '희망'을 꿈꾸는 모습은 확실하게 우리의 삶을 나타내고 있다. 끝내 그토록 갈망하던 탈출에 대한 자유가 눈 앞 있음에도 남자는 차후의 '선택'으로 변모한다. 없는 것에 대한 열망과 주어짐에 대한 상황. 그 남자는 정말로 순응되어 자유를 망각해 버린 걸까. 아니면 그 곳에서의 탈출이 더이상 무의미해 진걸까. 원래 그 남자에게는 삶에 대한 철학과 열망이 없었던 것은 아닐까. 아니면 인간이란 주어진 상황에 의해 쉽게 변모되며, 순응하는 존재일 뿐일까.



책을 읽는 내내 입 안 가득 모래를 씹고 있는 기분이었다. 까끌거리며 피부에 들러 붙어 잘 떨어지지 않는 불쾌함. 맹렬하게 내리쬐는 사막의 뜨거운 바람과 햇볕 그리고 모래의 뜨거운 고통. 매일 모래를 퍼내야 살 수 있는 뫼비우스의 띠같은 삶. 읽는 내내 나도 모래에 압살되어 들러 붙는 까끌함에 숨이 막혔다. 매일 주어진 일, 해야하는 일을 해야 삶이 영위되는 나도 매일 또 다른 모래를 퍼내는 생이구나-싶으니 입 속 가득한 모래가 마치 날카로운 생의 굴레 같았다.


내 주변의 환경과 상황에 의해 쉽게 순응하며 기존의 삶이 파괴되어도 여전히 우리는 살아가는 것. 삶의 허구성 속 또 다른 의미를 보여주는 이 책은 어쩌면 우리가 매일 모래를 퍼내야 하는 반복 속에 '희망'을 꿈꾸는 모습의 민낯을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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