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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 Dec 02. 2021

D-11



12월 말쯤일 거라고 예상하던 일정이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진행이 되었다.

11일 뒤, 아버지와 동생은 간이식 수술을 한다.


주변에선, 네가 수술하는 것도 아닌데 너가 심란할게 뭐가 있냐고 말한다.

수술하면 좋아지는 거 아니야?라고도 말한다.


동생의 간은 희귀한 모양이라 수술 부작용이 높다고 했다.

차라리 내가 수술을 하면 좋겠다며 검사를 해보겠다고 했지만,

내 나이와 성별을 고려했을 때 아버지에게 떼어줄 수 있는 충분한 간의 크기가 아니라고 했다.


난 무서웠다. 내가 잘못되는 것은 괜찮지만 동생이 잘못되면 나는 견딜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어릴 때부터 나에게 동생은 애틋했다.

멀리서 맞벌이하시는 부모님 없이 나는 동생과 단둘이 많은 시간을 보내왔다.


그 시절, 내 동생은 참 예뻤다. 내가 12살 동생이 6살 즈음 이었다.

함께 손을 잡고 걸어가면 동네 아주머니들이 한 번씩 꼭 멈춰 서서는

볼을 만져보거나 손을 쓰다듬거나 하면서

너무 예쁘니 달력모델을 시켜보라고 말씀을 하기도 하셨다.


어린 내 동생은 너무 예쁘고 소중했다. 매일 무릎에 앉혀놓고 쓰다듬었다.

업고 다니고 손잡고 다니고 맛있는 것, 예쁜 것이 생기면 무조건 동생의 자그마한 손에 쥐여 줬다.


동생은 참 순한 성격이다. 성인이 되어서도 내게 화 한 번 낸 적 없다. 나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착한 동생은 나보다 한참 어리지만 장학금을 받으면 절반은 내 통장으로 보내줄 만큼 나를 챙기고 자상한 오빠 았다.


동생은 화를 내지 않는 만큼 아픈 것도 말하지 않는 아이였다.

병원 인턴을 하던 시절 동생은 하루에 한두 시간 자며, 하루에 한 끼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어느 날은 일을 하다 쓰러져서 응급실에 실려가 처치를 받고 다시 일어나 링거를 팔에 꽂은 채로 일을 했다. 물론 이런 이야기를 본인이 꺼내진 않는다.


연말정산 서류를 떼보던 엄마가 응급실과 병원 기록이 있어서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동생은 "아.. 그때, 그냥, 일하다가." 그렇게 얼버무리려다 왜 그렇게 미련하냐며 화난 엄마에게 된통 혼이 난다.


나는 그런 동생이 안쓰러웠고 하루에 한 끼라도 제대로 먹이고 싶어 이틀에 한 번, 새벽 4시 반에 출근하는 동생을 위해 이틀에 한번 동생 자취방으로 가 새벽 4시에 소고기를 구워먹였다.


명절 친척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야기를 하다가 동생 이야기가 나와서 '내가 키웠어'라고 하면 어른들이 핀잔을 준다.

"아이고, 남사스러운 소리 한다. 느그 엄마가 들으면 뭐라 한다잉"


그러면 엄마는

"그 말이 맞아, 진짜 쟤가 키웠어."라고 말한다.



더 마음 아플 엄마와 아빠 앞에서 내색할 순 없지만 내 마음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프다.

사랑하는 아빠가 큰 수술을 여러 번 하고 계신 것도 너무 안쓰럽다.

그렇지만, 내 손을 꼭 잡고 걷던 어릴 적 동생의 앳된 얼굴이 아직도 생생한 나는

나의 작은 동생이 함께 수술대 위에 올라간다는 사실이 너무 아프다.


하던 일을 서둘러 정리하고, 집의 물건도 정리 중이다.

수술 후 한 달 반 동안 나는 아빠의 병간호를, 엄마는 동생의 병간호를 맡기로 했다.

한 달 반 동안은 회사를 휴직을 하기로 했다. 남은 열흘 동안 두 달간 나눠 했을 업무를 모두 끝내야 한다.

한 달 반 동안 병원에서 지낼 짐을 미리 싸고 병원에서의 생활을 준비한다.


온 가족의 생활이 두 달가량 멈추게 된다.

부디 이 두 달로 지금까지의 우리 가족의 힘든 모든 시간들이 끝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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