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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 Nov 19. 2021

염원





출근길 버스정류장에 서 있는데 마주 오는 버스마다 처음 보는 흰 종이가 붙어있었다.

가까이 가 살펴보니 동성중, 혜화고 등 수능 시험장 이름이 적혀있었다.

2021년 11월 18일. 오늘은 대한민국의 대수학능력검정시험일이다.


버스는 텅텅 비어있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출근 시간이 10시로 미뤄졌더랬다.

난 아침 10시부터 원장님 보고가 있어 자료 준비를 위해 7시 반에 출근 중이었다.


이렇게 한산한 평일 아침 버스는 오랜만이다.

비어있는 뒷좌석에 앉아 평화로운 버스정류장과 버스 안 풍경을 바라보았다.

이상하게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내 일이 아니더라도 내 일처럼 마음 동해 돕는데 탁월한 능력을 지녔다.

버스에 깔린 사람을 구하기 위해 시민들이 다 같이 버스를 들기도 하고,

전복된 트럭이 도로에 물건을 쏟아내자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다 같이 뛰어들어 치우기도 한다.

국민청원 게시판만 봐도, 누군가의 억울한 사연을 보면 온 국민들이 달려가 서명을 해 10만 명을 넘겨낸다.


그런 대한민국에서 수능시험을 치르는 아이들이 혹여나 시험장에 늦게 도착하지 않도록, 전국의 국민들이 한 시간씩 하루의 일정을 미루어 하루를 시작했다.


그러고 보면 수능시험이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가지는 의미는 대단하다.

지금은 달라졌지만, 불과 십몇 년 전까지만 해도 집안을 일으키고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기회이자 인생의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첫발로 여겨졌다.


그 시절 우리는, 좋은 대학을 나와 인정받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 모두가 부러워하는 삶을 사는 그런 모습을 꿈꾸며, 수능시험을 준비했다.


대학이 우리의 삶을 좌우하지 않게 되면서,

오히려 다양성을 인정받고 새로운 기회를 얼마든지 가질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그 다양성과 새로운 기회라는 것이 일반 사람들은 가지지 못한 타고난 재능이라든가, 애초에 누군가에게는 영원히 주어지지 않을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저 밤낮으로 책을 붙잡고 열심히, 열심히 공부를 하면 높은 확률로 성공할 수 있던, 그러면 잘 살 수 있던 시대로는 돌아갈 없을 것 같다.


변화한 시대.

아직도 전 국민이 수능시험을 치는 학생들을 위해 배려하는 것은'좋은 대학'에 가라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이 '노력한 만큼 되돌려 받기를'바라는 마음인 것만은 분명하다.


시대가 변하더라도 노력한 만큼 돌려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노력한 것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오늘처럼 전 국민이 배려해 주는 그런 대한민국이기를 바란다.


- 다들 10시에 출근하는 날 아침, 7시 30분 출근길 버스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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