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원 Sep 10. 2024

수술을 기다리는 동안

세 번째 감마나이프 2

지난번 항암 이후 계속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하루종일 누워있었다.

죽지 않을 만큼 밥을 먹고 죽은 것처럼 잠을 잤다.


그 와중에 동생 지인을 통해 패션쇼 초대를 받았다. 패션쇼 보다 이후 대도식당에 가기로 한 게

더 기대가 되었다. 2008년도에 처음 들어본 대도식당, 그 맛있다는 식당엘 드디어 가게 된 게 설렜다. 기력이 없는 나를 위해 남편이 예약해 었다.


그리고 또 그 와중에 벌써 1년,

1주년 결혼기념일이 9월 7일이란다.

리허설처럼 진행되어선지 결혼기념일도 잊고 지냈는데 남편이 알려주었다.

그날 명월관에 가자고, 둘이서 프라이빗룸에서 맛있는 걸 먹자고 했다.

좀 부담스러웠지만 먹고 죽은 귀신 때깔도 좋다는데 새삼 돈이 문제냐 싶었다.


간사하고도 치사한 사람 마음이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슬픔도 퐁당퐁당 건너가고 있었다.

문득문득 슬픔의 얼굴이 고개를 들곤 했지만

그래서 부모님이나 동생에게도 제일 친하다는 친구에게도 말을 하지 못했다. 어설픈 위로를 받고 싶지도 않았고 내가 절망하고 있다는 걸 들키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씩 흐르니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징징대는 약한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고, 내 앞에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당황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도 않아서 몇 개의 톡방을 덤덤하게 인사하고, 또는 인사 없이 조용히 나와버렸다. 나는 위로를 잘 못한다. 위로를 못해선지 위로를 받는 것도 편치가 않다. 

내가 없는 곳에서 맘 편히 내 얘길 해주길 랐다.


병이 도질 때마다 울어대는 엄마와 동생이 불편해서 눈물 금지령을 내렸었다.

두 사람은 내가 없는데서만 많이 울었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지만 보고 싶지 않았다. 그들의 슬픔을 보는 순간 나는 정말 슬프게 아플 것만 같았고 약하게 죽어갈 것만 같았기 때문에.


동생이 엄마와의 여행길에 전화를 걸어왔다.

검사결과는 어떠냐고..잊었다고. .

그제야 다음 주에 수술이라 알려주었다.

여행길이라는데 아차 했다.

다녀올 때쯤 말해줄걸.

엄마는 여행지에서 한숨을 쉬느라 한잠도 자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동생은 엄마의 즐거운 모습을 보내왔다. 우리는 울지 않으니 언니도 웃으라고..

평소와 다름없이 많이 자고,

자고 일어나 기력이 좀 생기면 밥을 해서 남편과 먹었다. 최소한의 도리는 하고 싶었다.

뒷정리는 남편이 해주었고

청소도 하는 둥 마는 둥 하며 시간을 보냈다.

 '밝은밤'읽으 밝지 않은 생을 들여다 보았다.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1년 만에 모지 원고청탁이 왔었는데 책이 나왔다.

[레후아꽃이 피었습니다]

열심히 썼지만 잘쓴 글은 아니라 부끄럽습니다.

동생은 요즘 코로나도 유행하는데 다음에 또 기회가 있으니 패션쇼는 가지 말자고 했다.(그래놓고 혼자 친구랑 갔더라만)


패션쇼는 취소를 하고 결혼기념일에 하기로 한 외식은 진행하기로 했다.

사실 오전 내내 기운이 없어서 가지 말까도 싶었다. 그래도 오랜만에 화장을 하고 이쁜 원피스를 입고 가방을 드니 사람 같았다.


요즘 잠을 많이 자선지 눈두덩이와 눈아래가

퉁퉁 부어서 살은 빠졌는데도

얼굴은 호빵맨처럼 부풀어 있었다.

누가 보면 성형수술 부작용이라도 있는 것 같아…

화장을 하고 예쁜 옷을 입어도 사진을 찍을 수가 없었다. 얼굴이…무기다.

오랜만에 서울 구경도 하고 세상 맛있는 음식을 먹으니 기운이 났다. 날씨는 흐렸지만 사는 것 같았다.

다녀오길 잘했다. 조금 더 씩씩해진 마음으로 월요일을 맞기로 했다.


사실…

두렵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