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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원 Sep 11. 2024

붉은 해가 뜨는 병실 풍경

감마나이프 3/4

감마나이프 수술은 간단한 편이라 입원도 1박 2일이면 충분하다. 8년 전에는 계속 몸이 안 좋아 결국 하루 더 입원할 수밖에 없었지만

대개의 경우 하루 전 입원,

수술 후 상태를 보고 퇴원을 하게 된다.


월요일, 오전에 입원 안내 문자가 왔다.

나는 간호간병 2인실, 간호간병 5인실,

1인실, 특실 순서로 신청을 해두었는데

아쉽게도 간호간병 5인실로 배정이 되었다. 지난번에는 간호간병 2인에 배정되었는데 옆자리가 비어있어 호캉스 하는 기분으로 가볍게 다녀올 수 있었다.


간병이 가능한 5인실의 경우, 간병인이나 보호자도 같이 있으므로 기본적으로 시끄럽다.

대화소리도 많이 들리고

베테랑 간병인들의 수다도 많다.

옆자리 환자의 코 고는 소리, 신음

소리, 섬망에 내지르는 소리, 전화 소리,

티브이소리 온갖 소리들과의 전쟁이다.


그래도 지난 두 번의 입원 때는

계속 토하고 혼자 움직일 수 없는 상태여서 보호자가 꼭 필요했었다. 옆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알 수 없을 정도로 상태가 나빴던 적도 있었기에 괜찮았는데 상태가 호전이 되면 주위의 소리가 먼저 귀에 꽂히기 시작한다. 그래서 귀마개나 노이즈캔슬링 이어폰은 필수다.


방을 배정받고 입원 시간을 지정한 후 간단히 짐을 쌌다.

하루이지만 필요한 것들 위주로 꼼꼼하게 싼 후 동생이 사다 주고 간 귀마개와 이어폰도 챙겼다.

입원 수속을 밟고 간호간병 5인실로 입실, 처음 가본 5인실이었다. 내 자리는 우측 창가 쪽이고 바로 옆에 상주 간호사님이 있었다.

그리고 혼자 거동을 하지 못하는 환자를 위한 베테랑급 조무사 선생님도 계셨다. 내 옆자리 이천 할머니는 척추를 다쳐 두 달 동안 입원해 있었다는데 하루종일 티브이를 켜놓고 계셨다. 중간중간 우렁찬 목소리로 전화를 받으셨고 밤새 코를 골며 편히 주무셨다.


그 맞은편 할머니는 다리가 불편한지 하루종일 누워만 계셨다. 나중에 대화하는 걸 들으니.... 치매이신 듯.

-할머니 여기 어디에요?

-집

-여기 병원이잖아요.

-아까 집에 왔잖아.

-보세요. 병원이잖아요.

-집이야.

-할머니 이름이 어떻게 돼요?

-병원

-이름이 뮈냐구요.

-고순례

-오늘 며칠이에요?

-8월 8일?

-오늘 9월인데

-8월 9일

이런 대화가 오고 갔다. 치매.... 치매 환자를 눈앞에서 보는 건 처음이다. 몸을 계속 긁으셨다. 긁지 말라고 하니 안 그러겠다 하시고는 또 계속 긁으셨다.

그 왼쪽 분은 거의 못 봤고 그 오른쪽 자리는 나보다 한 시간 늦게 들어왔다. 부산에서 분서대로 처음 왔고 내일 나처럼 감마나이프를 받는다고 했다. 하루 더 입원하길 원했지만 병원에서는 안된다고 했단다. 감마나이프는 뇌종양만 해당되는 줄 알았더니 혈관조영술에도 감마를 하는지, 아주머니는 조영술을 받는다 했다. 고작 하루 있었을 뿐인데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8년 전 나는 병실에서 가장 어렸다. 8년 동안 많이 늙었는데 여전히 병실에서는 제일 어리다.

하루 만에 퇴원하는 나를 내 옆자리 이천할머니는 부러워했다. 나는 그녀가 더 부러웠다. 작년에는 협착증 수술을 했고 올해에는 척추수술을 했지만 그래도 그 병 때문에 죽지는 않을 것이니.


조무사 선생님은 바쁘더라도 창 밖의 붉은 해를 보라고 했다. 어둠이 짙은데 해가 붉다. 붉은 밤이다. 붉고 밝은 밤이다. 내일의 고통을 상상하면 마냥 밝지만은 않지만.

붉은 밤, 밝은 밤


남편을 보내고 저녁을 먹었다. 이천할머니는 분서대 밥이 맛이 없다고 투덜댔지만 나는 언제나 분서대 밥이 제일 맛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소고깃국에, 고등어조림까지 어쩜 내가 올 줄 알고 미리 준비된 듯한 식단이 마음에 쏙 들어 오랜만에 밥을 맛있게 먹었다.

맛있는 밥

그리고 포비돈으로 머리를 두 번 감았다. 내일 나사를 박아야 하므로 소독을.. 이마와 뒤통수에 구멍이 날 거라 뒤통수를 박박 감았는데 알고 보니 귀 옆쪽이라는.. 이마는 닦지도 않았는데..

머리를 감은 후에 mri 조영제를 투여하기 위해 혈관을 잡았다. 왼쪽은 지난번처럼 실패, 오른쪽도 간호사는 포기하고 주사전문 간호사님도 팔은 포기하고 (많이 아팠..) 결국 손등에 겨우 잡았다.


팔등 실패, 손등 성공

 밤새 심란하여 잠을 잘 못 잤다. 동생이 준 특급귀마개를 뚫고 들어오는 이천할머니 코 고는 소리와 아직 겪어보지 못한 고통을 상상하느라.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뜬다.

붉은 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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