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수술 시간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6시 50분에 감마실로 내려가라고 했다. 이송기사가 데리러 올 거라고.
맨 정신에 이송기사님에게 실려가는 건
참으로 어색하다. 그래서 정신이 멀쩡할 때는
눈을 꼭 감고 아픈 척을 하곤 한다.
6시 30분경 출근길에 들른 동생이 사온
빵을 먹고 수다를 떨었다.
-근데 갑자기 귀마개 왜 사다준 거였어?
그 덕에 잘 잤어. 좋더라.
-언니가 전에 사달랬잖아.
-내가?
-응. 울 남편거랑 두 개 샀어.
머리에 종양이 생겨선지 기억이 안 난다.
물론 핑계이고 내가 아마 그런 말을 했을 것이다. 사달라고는 안 했겠지만 이거 어떨까 하고 물었겠지. 그걸 기억하고 있던 동생이 사다 준 걸 거고. 고맙다 늘.
감마나이프실로 내려가니 지난번과는 달리 대기자가 많았다. 6월에는 나랑 다른 남자 하나뿐이었는데 이번에는 이미 한 명이
틀을 고정 중이었고 내 옆에 여환자,
또 베드에 대기 중인 여환자 총 네 명이나 있었다. 내 옆자리 젊은 여자환자가 먼저 틀을 고정하고 나왔고 바로 내 차례였다.
병실에서 마취크림을 듬뿍 바르고 왔는데도 마취주사를 맞는데 엄청난 고통이 몰려왔다.
이마 두 곳과 뒤통수 두 곳에 놓은 주사,
치아의 잇몸에 놓는 주사와는 차원이 다른 고통이었다.
기억을 잃었던 8년 전이 좋았다. 그때는
하나도 안 아팠는데, 이번에는 많이 아팠지만
손도 다리 위로 가지런히 놓아두라 해서
주먹만 움켜쥐었다. 왼쪽 이마가 특히 아팠다. 주사가 끝나자마자 거대한 틀이 이마를 뚫고 들어오는데 이번에도 다른 쪽보다는 왼쪽 이마가 많이 아팠다. 벽에 콘크리트못을 드릴로 박을 때나 나는 소리, 소음, 진동이 머리에서 울려 퍼졌다. 이를 꽉 깨물고 숨도 안 쉬고 참았다. 이 모든 괴로움이 어서 지나가기만을.
사진을 찍었지만 올리진 않으려 한다.
조금 멋지게 표현하면 고대 이집트 영화의
투구를 쓴 여전사 같기도 하지만
사실 좀 끔찍하다.
다시 대기실로 돌아와 잠시 쉬고 있는데 바로 내 이름이 불렸다. 다른 사람들보다 설계가 빨리 끝났다며 다행히 사전에 찍은 MRI에서 보다
더 많은 종양은 발견되지 않았기에
54분 정도면 감마나이프가 끝난다고 했다.
감마나이프 통으로 밀려 들어갔다.
30분은 상상을 하고 20분은 잤다.
끝난 후 틀을 빼고 나니 또 고통이 밀려왔다. 병실에 올라오자마자 진통제를 먹고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고
이천할머니와 대화를 한 후 퇴원을 했다.
퇴원 후에도 오심이 밀려와 약을 먹고 쉬고 자고 또 깨서 글을 쓴다. 일주일 동안 스테로이드를 먹어야 하고 하루에 두 번 이마와 뒤통수 소독을 해야 한다. 상처에 물이 닿으면 안 되므로 이마를 피해 조심해서 세수를 해야 하고 3일쯤 지나면 조심스레 머리를 감을 수 있다. 그리고 2주쯤 지나면 미용실에도 갈 수 있다고 하니 그땐 머리를 해야겠다. 1년 동안 파마를 하지 않았더니 사자가 되고 있다. 여름이 가고 있으니 가을을 맞을 준비를 해야겠다. 매미 소리가 끊어진 지 꽤 된 것 같은데 왜 아직도 열대야인지, 왜 아직 에어컨을 끄지 못하고 콜록이는지 모르겠다.
모두 건강하시기를.
슬픔으로 시작했다가 고통을 지나와 지금은 안정을 되찾았다.
사람이란 이런 것, 사람의 마음이란 이런 것. 이렇게 간사하고 한없이 가벼운 것.
-나랑 혼인신고 해도 되겠어?
우리는 아직 이런저런 이유로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다.
-호적에 기록이 남는다는데, 다음 혼인신고 때 지장이 있을 거 같은데... 전처 리스트 쫙 뜨면 앞으로 결혼 어떡해?
-뭐야? 결혼 또 안 하면 되지. 아니 네가 먼저 죽을 거란 생각을 하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