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두 번째 감마나이프

2024년 하반기-2025년 6월까지-1

by 영원

6월부터 아팠다. 목이 아프더니 급기야 집에 돌아와서 사흘 넘게 먹지도 못하고 앓아누웠다. 그때부터 살이 쭉쭉 빠졌다. 기침은 집에 와서 더욱 심해졌다. 도라지즙, 배즙, 산초기름까지 기침에 좋다는 건 다 써봤는데 효과가 없었다. CT상으로도 별 이상이 없다 하니 기존에 하던 '알림타' 항암주사를 계속 맞기로 했다.


2024.8.

가을이 오기 전에 마지막 울음을 울던 매미가 일제히 합창을 시작했다. 8월 말, 석 달 만에 찍은 뇌 MRI에서 또 종양이 보였다. 그것도 여태처럼 하나가 아니라 대 여섯 개, 주르르 눈물이 흘렀다. 나는 큰일에 잘 울지 않는다. 2016년 폐암 선고를 받고도 의연했다. 뇌에 전이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친구가 훌쩍일 때야 조금 같이 울었었다. 흉수가 찼을 때도, 심장에 물이 차 죽음 직전까지 갔을 때도 아파서 울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괜찮을 거라는 남편의 말 한마디에 주르륵, 눈물이 떨어졌다. 이제 우리는 덜 싸운다. 서로 이해하고 조심하고 그리고 편해졌다. 그래서 욕심이 난 걸까, 조금 더 오래 살고 싶어진 걸까, 마음이 약해진 걸까. 감마나이프는 무사히 잘 끝났다. 이마에 작은 흔적 두 개를 남기고.


2024.10.

추석 즈음부터 갑자기 알레르기 증상이 생겼다. 주방 근처에 가면 발작적으로 기침이 터져 나오고 콧물이 주룩주룩 흘렀다. 기침이 너무 심해 잠도 못 잘 정도로 극심한 근육과 갈비뼈 통증까지 생겼다. 약 없이는 버티기 힘들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자고 일어나면 얼굴이 짱구가 되어 있었다. 눈이 사라질 정도로 퉁퉁 부었다. 선풍기 아줌마 같은 얼굴은 오후가 되면 점차 나아졌다. 가슴 양쪽으로 멍이 든 것처럼 혈관이 보였다. 항암 부작용인지, 종격동에 생긴 종양 때문인지 검색을 해도 원인을 알 수가 없었다. 희한하게도 진료를 가는 날엔 괜찮아서 교수님께 말을 하지 못했다. 9월 감마나이프로 입원을 했을 때도 간호사에게는 증상을 말했지만 입원한 동안은 괜찮아서 별 문제 아닌가 했다.


너무 힘들다 보니 생각이 원망으로 바뀌었다. 하루 종일 아파 잠만 자다 보면 이렇게 죽는구나, 이제 다른 선택지는 없는 건가, 그런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스스로 일어서서 걷고 뭔갈 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밖에만 나가도 터져 나온 기침과 다 사라져 버린 근육 때문에 몇 걸음 떼기조차 힘들었다.


좀 더 살아야겠다. 아직 하고 싶은 게 많다. 그동안 교만했었다. 좀 더 누려야겠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드디어 수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