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12월
2024.11.
방사선 치료는 처음이었다. 방사선 치료를 하기 일주일 전쯤 CT를 찍고 방사선을 쏠 위치를 펜으로 표시한다. 지워지지 않게 조심하라 했다. 씻는 것도 고역이었다. 첫 방사선을 끝낸 후 아침 첫 시간으로 시간이 옮겨졌다. 5분이면 끝나는 치료가 기침이 멎을 때까지 기다려야 시작하니 방사선사들이 아침 첫 시간으로 바꾼 것이다. 대기실에서도 괜찮다가 방사선실로 들어가 똑바로 눕기만 하면 또 시작되는 기침, 기침, 망할.
오래 앓았다. 10회 방사선을 마치고서야 컨디션이 돌아오는 듯했다. 방사선 후 후유증도 없었다. 폐렴이 오기도 하고 방사선 쏜 부위가 까매지기도 한다고 해서 로션도 미리 사두었는데 이상 증상 없이 잘 치유되었다. 기침도 줄었고 미칠듯한 알레르기 증상도 좋아졌지만 너무 오래 누워만 있어서인지 조금만 걸으면 허리가 끊어질 것 같고 등 날갯죽지가 아팠다. (이 통증은 나중에 알고 보니 기침 때문이 아니라 뼈전이 때문)
림프절, 양폐, 뼈전이, 좌측 흉수, 갑자기 전이가 많아졌다. 언젠가 그날이 오면 담담히 받아들이려 했지만 사람이라 두려운 건 어쩔 수 없나 보았다. 좀 덜 아프길 바랄 뿐.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생각만 간절했다. 그리고 식욕이 돌아오길 47kg, 늘 배가 고팠다. 밤새 배가 고파 속이 쓰렸다. 평생 식욕이 없다는 말의 뜻을 몰랐다. 이별 후에도 밥은 먹었었다. 한 끼만 굶어도 손이 떨리고 어떤 날은 수업 중에 주저앉기도 했었다. 그럴 때 아이들이 가방에서 초콜릿을 꺼내주기도 했었는데, 그러던 내가 먹지를 못했다. 먹을 수 있는 것도 복이구나, 아픈 후에야 깨닫게 되는 것들이 참 많다. 건강해지면 또 잊히겠지만. 볕살 좋은 어느 날, 간들바람을 맞으며 아파트를 내려다볼 때, 나만 건강하면 세상에 못할 것이 없겠구나 싶었다. 그러니 얼른 건강해지자고.
기다렸던 변이는 이번에도 나오지 않았다. 다음은 독성항암 뿐이라 일단은 변이가 없지만 표적치료제를 써보기로 했다.
2024.12.24.
2024년 마지막 진료, 다행히 머리는 이상이 없었고 한 달간 복용한 표적치료제가 효과가 있었던지 좌측에 생겼던 흉수가 사라졌다. 지난달 보였던 암들도 사이즈가 좋아졌다. 약이 능력을 발휘하나 보았다. 이대로 3년만 버텨주면 좋겠다. 지난달 삽입한 스텐트가 비뚤어져서 재시술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전신 마취도 없이 진행되는 스텐트 삽입술을 또 해야 한다니, 일단 부종이 심하지 않으니 조금 더 지켜보기로 했다.
요즘 나는 참으로 건강하다. 일주일에 두 번은 필라테스를 하면서 체력을 키우고 있다. 나름 세끼 밥도 챙겨 먹는다. 그런데도 살은 점점 빠져 44kg, 다행히 얼굴살은 안 빠져서 엄마와 동생은 좋아 보인다고.. 그럼 됐지.
2025년이 되면 더 건강해지겠지. 마지막 액땜이라 생각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