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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두근2

2025. 3월의 기록

by 영원

2025.3.11.


하루종일 누워만 있다. 누워있으면 숨이 가쁘지 않으니까. 커피를 안 먹어선지 두통이 심하다. 필라테스도 치과진료도 미술전 관람도 다 취소하고 누워서 드라마만 본다. 이제 볼 게 없어서 뒤늦게 '선재 업고 튀어'를 봤다.


나도 과거로 갈 수 있다면, 좀 더 나를 위해 살 걸, 상처 준 타인을 미워하며 내 속을 태우지 말 걸, 내 것이 아닌 것에 마음 주지 말 걸, 화나면 소리 지르고 떠나면 보내주고 그렇게 쿨할 걸, 운동하고 명상하며 나를 살피며 살 걸, 외로움, 그리움, 기다림, 그런 것들 하지 말고 바람 없이 사랑할 걸..


누구라도

나를 업고 튀어주렴


2025.3.14.

내 상태가 좋을 때, 신경외과 교수님은 방긋 웃으며 나를 맞아주신다. 어제는 오랜만에 방긋 웃으시기에 괜찮은가 싶었는데 MRI 사진을 보여주시며 화살표를 가리켰다. 영상의학과에서는 전이의 가능성이 더 있다고 했지만 교수님이 판단하기에는 혈관 같다고 했다. 그러니 잊고 두 달 후 다학제 진료에서 보자고 하셨다. 원래는 석 달마다 찍었던 것을 두 달로 당긴 것이다. 혈관 같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이겠지, 그래도 안도했다. 당장 또 감마를 하게 될까 봐 아주 조금 걱정했었다. 꽃을 보러 가기로 했는데 그럴 수 있을까 싶어서.

며칠 살림을 안 한 티가 팍팍 났다. 주방도 엉망이고 냉장고엔 사다 두었던 채소들이 녹아가고, 쓰레기통에 쓰레기들이 넘쳐흘렀다.

여전히 숨이 차지만 그래도 해야 한다.


“부정맥인가, 아니면 약 내성일지도.”

내성 때문이면 약을 바꿔야 할지도 모른다. 지금도 힘들게 구해 먹는 중인데 내성이 아니라 부작용이면 좋겠다. 독성항암인 도세탁셀이나 젬자 같은 건 아직 아직 하고 싶지 않다.


기침도 심해지고 나날이 체중이 줄면서 겨울나무처럼 메말라만 가고 있다. 며칠 동안 누워만 있으니 등이 결렸다. 오랜만에 똘망이 배변 산책에 동행, 날은 꽤 풀렸지만 아직 나무들은 벌거벗었다.

“봄꽃은 잎보다 꽃이 먼저 펴.”

“왜?”

“경쟁 때문이지. 벌들한테 잘 보이려고.”

그런가. 남들보다 이쁘게 꽃을 피워 벌들을 불러들여 수분을 하기 위해서 잎보다 빨리 꽃이 핀다고. 봄꽃에는 꿀이 거의 없고 향기도 약하다. 장미나 아카시아, 밤꽃 하면 향부터 떠오르는데. 그래도 좋다. 어서 피어 눈을 사로잡으면 좋겠다.


겨울 끝에 피어나는 목련처럼, 개나리처럼 나도 피어나고 싶다. 꿀도 향도 부족하지만, 봄이 오고 있으니.


2025.3.27.

같은 기전의 다른 약 복용을 시작했다. 두근거림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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