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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원 May 31. 2022

뇌 MRI를 찍다.

암환자가 되기까지 3

수술이 끝났으므로 흉부외과는 정해진 날짜에 가서 검사하고 진료를 보면 되었다. 항암치료는 종양내과에서 담당하기 때문에 나는 새로운 교수님을 배정받았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채송화' 선생님의 친절함과 섬세함 뿐 아니라 외모에서 풍기는 이미지마저 닮은 교수님이었다. 그땐 내가 운이 좋았다는 사실을 몰랐는데 많은 환자들이 질문조차 잘 받아주지 않는 까칠한 교수님 때문에 힘들어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뚝뚝하고 친절하진 않아도 실력이 좋으면 그만이라는 사람들도 있지만 불친절하고 질문에 대답도 하지 않는, 때로는 하지 말아야 할 말까지 하는 의사 선생님 때문에 상처를 받아 병원을 바꾸거나 담당의사를 바꾸고 싶다는 환자나 보호자들이 많았다.(그래서 처음 선택이 매우 중요하다. 다른 병원에서 항암치료를 시작한 이후에는 받아주지 않는 병원도 있고, 병원 내 같은 과 내에서 담당 교수를 바꾸는 것도 쉽지 않다.) 비염도 감기도 아니고 암이라는 질병은 동네 내과 선생님도 잘 모를 정도로 어려운 질병이다. 그래서 '고객님~ 커피 나오셨습니다.'와 같은 문법에도 맞지 않는 표현의 과도한 친절은 아니어도, 적어도 환자나 보호자의 질문에 답변은 해주었으면 좋겠다고들 한다. 의사 선생님께 묻지를 못해 카페나 블로그를 뒤적거리며 잘못된 정보를 얻기도 하므로. 나는 거의 질문하지 않는 환자이긴 하다. 교수님이 해주신 말 이외에 별로 궁금한 게 없다. 가끔 궁금한 건, 진료실을 나오고 나서야 떠오르기도 한다.   

  

수술 후 조직검사 결과 임파선 전이로 2기 판정을 받았다. 1기이면 수술로 종료, 2기는 예방적 항암치료를 해야 한단다. 항암치료는 우리가 익히 아는 그런 것이다. 주인공이 자고 일어나 베개를 보면 머리카락이 우수수 떨어져 있고, 그걸 주워 뭉치면 한 주먹이 된다. 그리고 절망하며 운다. 모를 때는 그런 장면이 ‘암’ 때문인 줄 알았는데 ‘항암주사’때문이었던 것이다. 세포독성 치료(항암주사치료)는 암세포만 죽이는 것이 아니라 빠르게 분열하는 정상세포까지 죽이기 때문에 설사, 탈모, 구토, 피로감, 점막염 등의 부작용이 나타난다. 또한 면역력이 엄청 떨어지기 때문에 주의해야 할 것이 많다. 항암치료 중에는 날 것도 먹어선 안되고 물도 생수만 먹어야 한다. 염색이나 펌도 해서는 안 되고 샴푸도 순한 것을 써야 한다. 감염의 위험이 있으므로 손도 자주 씻고 사람들이 많은 곳도 피해야 한다. 외출 시에는 마스크를 착용하는 게 좋은데 한쪽 귀라도 마스크를 내렸다면 이미 오염이 된 것이므로 새것으로 바꿔야 한다고 했다. 이러한 내용의 항암치료 전 교육을 받았다. 말만 들어도 머리카락이 빠져 절망하는 드라마 속 비련의 여주인공이 된 기분이 들었다. 두건이나 가발을 사야 하나.     


그리고 뇌 MRI를 찍었다. 폐암은 뇌전이, 뼈전이가 많기 때문에 보통의 경우 CT로 폐암 진단을 받으면 PET-CT, 뇌 MRI도 찍는데 나는 좀 늦어졌다. (처음부터 암인지 여부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그리고 항암주사를 맞으러 병원에 간 날 뇌 MRI 결과를 들었다. 자세한 건 신경외과 교수님께 들으라 한다. 긴 터널을 지나 작은 빛에 도달했다 생각했는데 다시 터널을 만났다.


작은 종양이 보인다고 했다. 신경외과 교수님은 MRI 사진의 종양은 위치나 모양으로 보아 폐에서 전이된 악성 같다고 했다. 악성이면 4기이므로 예방적 항암은 필요가 없고 작은 종양 하나이기 때문에 감마나이프를 통해 제거하자고 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엄마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만원인 엘리베이터처럼 가슴 속도 답답함, 서러움, 괴로움과 고통으로 꽉 차 버렸다. 이제 어째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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