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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원 May 31. 2022

4기 암환자가 되다

암환자가 되기까지 4

나는 한 번도 울지 않았다. 폐암이라는, 이름도 칙칙한, 이미지도 안 좋은(왠지 그런 느낌) 암에 걸렸지만 수술도 잘 되었고 2기라니 그만하길 다행이다 싶었다. 얼마 전 돌아가셨을 때 우리 할아버지 연세가 아흔둘, 환갑 무렵 위암 수술을 하셨지만 30년을 건강하게 사셨다. 수술을 한 이후에도 계속되는 기침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지만 폐 기능 호전을 위해 꾸준히 운동을 해야 했다. 매일 마스크를 쓰고 엄마와 호수를 산책하며 할아버지처럼 90은 아니더라도 50은 가뿐히 넘길 거라 생각했다. 폐암을 2기에 수술하다니, 정말 운이 좋다는 말도 들었었다. 한 번도 절망하지 않았다. 감마나이프가 뭔지는 몰라도 잘 받으면 괜찮겠지 싶었다.      


아니, 사실 나는 절망했다.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화가 났다. 이제 10년은 고사하고 당장 내년 봄을 볼 수나 있을까. '왜'에 대해 오래 생각했다. 왜 이 병에 걸렸을까, 이유가 원인이 뭘까. 생각해 보니 늘 공사 중인 동네에서 살았다. 8차선 대로 옆 아파트에서도 살았다. 모래 먼지 가득한 운동장에서 스포츠클럽 수업을 하기도 했다. 사람들에게 받은 스트레스를 풀어내지 못하고 속으로 삼킨 날들도 떠올랐다. 가슴이 답답해서 터질 듯할 때에도 그저 참기만 했던 날들이 스쳐 지나갔다. 비염으로 가습기를 쓰던 내게 '가습기메이트'라는 게 있다며 친절하게 써보길 권했던 J가 떠올랐다. 하나하나 떠올려보면 모든 것이 원인이었다. 나만 그렇게 사는 건 아니었다. 누구나 직장에서 가정에서 때로는 즐겁지만 때로는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적당히 화를 내거나 적당히 취미생활을 하며 풀어내며 살아가고 있다. ‘날씨가 좋으면 찾아갈게요.’라는 드라마에서 주인공의 이모는 지은 죄를 법으로 심판받지 못하자 스스로에게 형벌을 내리며 고통을 겪는다. 죄든 스트레스든 제 때 적절하게 풀어내지 못하면 병이 된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지금도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그 방법을 잘 모르겠다. 아무튼 2016년 9월, 그때는 그 모든 것이 원망스럽고 후회되었다.     


암에 걸리면 환자도 가족들도 여러 가지 심리적 변화를 겪는다고 한다. 보통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과 같은 감정이 순차적으로 또는 동시에 나타난다는데 나 역시 다르지 않았다. 아닐 거라 부정하고 화도 냈다가 수술만 잘 받으면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가 슬퍼지기도 하고. 몸의 고통은 시간이 지나면 금방 사라지지만 심리적 고통은 생각보다 깊었다. 이 고통과 아픔은 가족과는 절대 나눌 수 없었다. '다 지나간다.'고 믿어왔지만 이번에는 그리 호락호락하게 내 인생을 가로막고 있는 돌덩이가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았다. 아무리 용을 쓰며 꼭대기까지 밀어 올려도 바위는 계속해서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나는 시지프스였다. 큰 잘못을 저지른 것이 틀림없다.   

   


나는 단지 남들처럼 살고 싶을 뿐이었다.

내 꿈은 그저 평범하게 행복하게 사는 것.

지금 나는 너무나 다른 길을 걷고 있다. 다들 앞을 향해 걸어가는데 나 혼자 삐뚤삐뚤. 주위에 사람도 없고 길도 없다. 없는 그 길을 나만 혼자.

단지 평범하게 살고 싶었을 뿐인데, 남들처럼 사랑하고 사랑받고 살고 싶었을 뿐이다. 큰 욕심도 없고 큰 잘못도 저지른 적 없는데, 많은 걸 바란 게 아닌데......

그리운 사람 하나 생각나지 않는다.

나 때문에 우는 친구, 나도 처음으로 울었다.

평범하게 살고 싶었을 뿐인데 5년이라도 살 수 있을까.     

- 2016년 9월 19일 모든 게 어그러졌다 중-     





*다른 암은 잘 모르겠지만 폐암은 보통 3A기 정도까지는 수술을 진행(암의 위치나 크기에 따라 달라짐)하고 4기는 수술하지 않는다. 이미 혈액을 타고 원격 전이가 이루어졌으므로 폐에 있는 악성 종양만을 제거하는 것이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다른 암에 걸렸다가 폐로 전이되는 경우는 많이 있으나 폐암이 위나 유방 등으로 전이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가장 많은 것은 늑막 전이와 뇌전이, 뼈 전이이다. 그래서 폐암 진단을 받으면 보통 뇌 MRI를 찍고 PET-CT를 통해 다른 곳의 전이 여부를 판단한다. 지인의 아내는 허리가 아파 오랫동안 정형외과에서 물리치료를 받았지만 호전되지 않아 큰 병원에 가서야 폐암을 진단받고 몇 달 만에 유명을 달리했다고 한다. 이런 경우는 이미 많이 보았다. 뼈 전이라면 이미 4기이다. 폐나 간 등 장기는 소리 없는 장기라고 하여 암에 걸렸어도 초기에는 직접적으로 통증을 느끼지 못하지만 뼈는 대부분 고통으로 직접 다가온다. 허리나 골반이 치료를 해도 낫지 않는다면 흉부 검사를 해보기를 조심스럽게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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